김대중 조선일보 고문(81)이 조선일보사에서 퇴임했다. 김대중 고문은 1965년 6월 입사해 올해 지난 3월31일 퇴임했다. 55년 10개월 동안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31일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김대중 고문 퇴임식이 열렸다. 이날 퇴임식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준호 발행인, 양상훈 주필 등이 참석했다.  

이날 김 고문은 “기자로 살아서 행복했다. 아부 안 하고 돈 안 밝히고 살아서 좋았다”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기자 정신’과 ‘글쓰기’의 중요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고문은 “용기 있는 비판 의식을 뜻하는 기자 정신이 아무리 투철해도, 글쓰기가 뒤따라주지 못하면 좋은 보도가 나올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며 “기자 개개인의 글쓰기와 완성도가 중요하며 기자가 완성도 높은 글을 신문에 파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방상훈 사장은 김 고문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김 고문은 퇴임 후에도 ‘김대중 칼럼’은 계속 쓸 예정이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사진=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김 고문은 조선일보 수습 8기로 입사해 주미 특파원과 외신부장, 사회부장, 정치부장을 거쳤고 출판국장, 편집국장, 주필, 편집인을 역임했다.

김 고문은 한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이다. 보수 진영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친미·반공주의에 기반해 세력을 결집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평가된다. 

그는 1980년 5월25일 르포 기사를 통해 "그 고개의 내리막길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광주'가 있다. 쓰러진 전주·각목·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보도했다. 

김 고문은 이후 1997년 ‘악연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광주’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고 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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