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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의 꿈은 꺼지지 않았다
버니 샌더스의 꿈은 꺼지지 않았다
[ 기고 ]

요즘 보면 버니 샌더스의 대선 도전이 또다시 미국 민주당 내부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에서 노동당 제레미 코빈의 총선 패배에 이어서 국제적 좌파들에게는 우울하고 안 좋은 소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샌더스의 이번 도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고, 벌써 포기하자는 말도 아니다.

먼저 ‘샌더스는 민주당 언저리에서 머물러 온 재산도 많은 부자에다가, 제국주의에도 타협해 온 진짜 사회주의자도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와는 선을 긋고 싶다.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부터 틀려먹었다. 애초에 기대나 시도를 말 것이지’라는 식의 태도는 자기만족은 될지 몰라도 현실에 발을 딛고서 사람들과 함께 변화를 만드는 데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당연히 민주당의 계급적 한계와 역사적 문제점을 찾자면 끝도 없고,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방향이 옳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경로를 한가지로만 정해놓고, 그 외의 시도는 모조리 ‘원칙’을 져버린 ‘배신’ 취급하는 것은 동의되지 않는다. 전술(더구나 선거 전술)이란 모든 구체적 상황마다 구체적으로 고민돼야 하는 것이지, 언제 어디서나 미리 정해진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가장 비판하고 싶은 것은 민주당 주류, 그들과 긴밀히 연결된 대기업주와 권력자들, 주류언론들이다. 이들은 샌더스보다는 차라리 트럼프라는 심정인지, 바이든보다 그나마 낫다는 후보들까지 다 사퇴시키면서 필패의 카드라는 바이든으로 결집해 샌더스를 주저앉히려 해 왔다.

▲ 지난 3월3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버몬트주에서 유세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 연합뉴스
▲ 지난 3월3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버몬트주에서 유세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 연합뉴스

주류언론들의 샌더스에 대한 공격도 심각했는데, 특히 샌더스가 초기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샌더스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과 마녀사냥이 심각했다고 한다. 그들이 ‘증오와 광기에 휩싸여서 여기저기서 샌더스의 반대 쪽을 물어뜯고 괴롭히고 다니는 폭력적인 무리들’이라는 식이었다.(소위 ‘문빠’에 대한 조중동의 공격과도 유사성이 있었다.)

당연히 샌더스의 수많은 지지자들 속에서는 이상하고 과도한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몇몇의 사례를 가지고 샌더스 지지자 전체가 이상한 무리들인 것처럼, 나아가 샌더스 자체가 문제가 많은 후보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본질은 주류언론과 엘리트 전문가들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열정적으로 바닥에서 좌파 후보와 아젠다에 대한 바람을 일으켜가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런 아래로부터 열정적 흐름이 없고 주류언론들의 눈치만 봤다면 샌더스가 얼마 전 유세에서 ‘이란, 칠레, 과테말라 등에서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을 전복시킨 것에 책임이 있다'고 연설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자의 입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죄과를 인정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이제, 샌더스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초기의 흥분은 급속히 꺼진 상황이다. 냉철한 현실 직시보다는 과도한 기대와 섣부른 낙관이 있었다고 나부터 솔직하게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샌더스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중도표를 잃었다는 평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번에 민주당 경선에서 엘리자베스 워렌의 급속한 주변화는 급진과 중도 모두를 어정쩡하게 만족시키려던 시도의 한계를 보여줬다.

그보다는 기층과 현장 조직력의 한계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있다. 이것이 돈과 언론과 주요 네트워크를 다 쥐고 있는 민주당 주류에 맞설 유일한 무기였는데 여기서 힘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샌더스를 지지하는 DSA(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들)가 몇 년 만에 열배 가까이 성장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 규모는 아직 6만여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인구 규모나, 유럽의 진보정당 당원수에 비교하면 이것은 결코 과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특히 남부와 교외로 갈수록 현장 조직력의 열세는 두드러졌다고 한다. 히스패닉에서는 어느 정도 기층 조직화가 이뤄졌고 성과로 나타났지만 흑인에서는 기층의 교회나 동네에서 긴밀히 연결된 네트워크에 다가가지 못했고, 그것이 흑인 유권자 속에서 아쉬운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노조에서도 민주당 주류와 연결된 노조 상층부의 통제력을 충분히 넘어서지 못했다. 미국노총AFL-CIO, 자동차노조UAW, 서비스연맹SEIU, 운수노조Teamsters 등의 지도부는 샌더스 지지를 선언하거나 조직하지 않았다. 대학캠퍼스와 도시를 넘어서지 못한 조직력은 청년학생 속에서의 압도적 지지와 대비되는 50대 이상에서의 큰 열세에서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변수의 등장으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만약 결국 바이든이 승자가 된다면, 아마도 많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대선에서 기권하게 될 수 있다. 일부는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녹색당의 호킨스(Howie Hawkins)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DSA 등이 바이든을 지지하며 선거운동에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이라는 악몽이 너무 끔찍해서 바이든을 불가피하게 지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 조롱하거나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 투표 전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과도 손잡고 트럼프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하고, 그 운동을 좌파적 대안 건설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미디어를 소유합니까? 누가 경제를 소유합니까? 누가 의회를 통제합니까? 왜 억만장자에게는 세금 감면을 하고 최저임금은 인상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입니다. 미국을 기업과 엘리트들의 탐욕과 부패의 나라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나라로 만들 때입니다.”(얼마 전 선거유세에서 샌더스의 연설)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존재감이 갈수록 줄어드는 바이든이 아니라, 이런 가슴 뛰는 연설을 하던 샌더스가 ‘모두를 위한 무상의료’를 말하며 트럼프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기층 속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대안을 토론하고 새로운 희망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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