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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사건과 언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과 언론
[ 미디어오늘 1244호 사설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언론에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졌다. 범죄자를 소탕하고 제2의 범죄를 막는 것은 정치권과 수사 당국의 몫이지만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 범죄를 가능케 했던 사회 구조를 분석하는 건 언론 보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시킨 주역은 분명 언론이다. 엄밀히 따지면 대학생 기자단 ‘추적단 불꽃’이 지난해 사건을 공론화시킨 이후 한겨레와 국민일보가 후속 보도를 내놓으면서 사건은 분기점을 맞았다. 이들이 박수를 받을만한 것은 단순히 사건의 심각함을 알리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학생 기자단은 처음부터 수사 당국과 함께 잠입형식의 취재를 통해 불법 증거를 모았다. 기성 언론 역시 자칫 선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을 경계하면서 사건의 본질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파장이 예상된다’는 문구 아래 사건 알리기에 급급했던 보도 행태를 뛰어넘어 사건 해결로까지 나아간 ‘솔루션 저널리즘’ 단면을 보여준 것은 의미가 있다. 대학생 기자들이 향후 KBS 보도국에 취재 내용을 협조하기로 한 결정도 과거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수많은 기성 언론 중 KBS를 택한 이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KBS가 ‘성범죄 보도 준칙’을 지킨 것도 함께 하기로 한 이유”라고 밝혔다. 별문제 의식 없이 성(性) 관련 보도를 해왔던 언론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미지. 그래픽=안혜나 기자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미지. 그래픽=안혜나 기자

실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룬 많은 언론 보도는 실망스럽다. 여전히 가해자 중심 서사의 보도가 넘쳐나는 것은 물론 클릭 수를 유발시키기 위한 선정적 문구를 단 제목의 보도가 쏟아진다. 잘못된 방향의 텔레그램 성착취 보도는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언론 보도들과도 궤를 같이 한다. 당시 언론이 경계해야할 제언들이 많이 나왔지만 미투 운동 때문에 회식 문화가 사라졌다는 식의 보도들이 쏟아졌다. 가십성 보도로 치부할 순 있지만 위계의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내용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도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지 못한 보도가 나온다. 조선비즈의 28일자 “조주빈 휠라 맨투맨부터 최순실 프라다 신발까지… 블레임룩이 뭐길래”라는 제목의 보도는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이 매체는 “블레임룩은 비난(Blame)과 외모(Look)를 합성한 신조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입거나 사용한 옷이나 화장품, 액세서리를 모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며 조주빈이 검찰 송치 현장 때 입고 나온 옷에 주목했다. 관련 기사에선 조주빈이 입고 나온 특정 브랜드의 주가가 올랐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수준 미달이면서 성착취 사건을 조롱하고 있다고 해도 할말이 없다.

특히 영향력이 큰 방송 매체 보도들은 우려가 크다. MBC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이라고 명명하기로 결정하면서 범죄가 일어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26일 MBC 뉴스데스크는 조주빈이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쓰고, 조주빈이 일베 활동을 했다는 동창의 주장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관련 보도는 이번 사건을 자칫 일베 유저 만의, 혹은 조주빈의 잘못된 젠더 인식 때문이라는, 특정인과 개인의 탓으로만 가두는 효과를 준다. 

▲ 지난 3월2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경찰에 ‘현재 검거된 조주빈이 아닌 다른 박사가 있을 가능성’을 문의하는 장면.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갈무리
▲ 지난 3월2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경찰에 ‘현재 검거된 조주빈이 아닌 다른 박사가 있을 가능성’을 문의하는 장면.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박사방 편 방송도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방송에선 조주빈이 쓰는 특정한 문체에 주목했다. 키가 커지는 수술을 받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는 식의 심리 분석도 오갔다. 조주빈 주변 인물에 대한 증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 자연스레 가해자가 범죄를 일으킨 서사가 그려진다. 가해자와 범죄 사이 연결고리는 무수히 많지만 가해자 신상만을 쫓으면 범죄는 축소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결국 가해자 탓은 범죄가 일어난 구조적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여지가 크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알리기 위한 해시태그 운동에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마십시오”라는 문장이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가해자를 향한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쉽지만 다시금 성착취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언론이 줄기차게 해법을 따져 물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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