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지금, 세계 보건기구 WHO는 이렇게 외쳤다.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 그런데 영국은 이렇게 외쳤다 “집에 있어, 집에 있어, 집에 있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방지를 위한 WHO의 메시지는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영국 정부의 답은 “우린 장비도, 인력도 없다”였다.

영국이 자랑하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NHS(국가 보건 서비스)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앞에 무력했다. 지난 3월 12일, 긴급대책 회의 후 기자회견장에 선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겐 대책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에 걸린 것 같으면 최소 일주일은 그냥 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긴급콜센터(111)에는 전화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들은 당신보다 더 심각한 환자를 돌봐야 하니 방해하면 안 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을 이용해 주세요.”

안토니 카스텔로(Anthony Castello) 런던대 전염병 전문의는 ‘가디언’에 탄식을 쏟아냈다. “중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은 집중적으로 진단하고, 접촉을 추적하고, 격리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한다. 그렇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문제는 겨울이 오기 전에 백신을 개발해 집단면역체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영국 정부는 국민이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려버린 듯하다.”

안토니 교수의 탄식을 부른 건 총리뿐이 아니었다. 요즘 맹활약하고 있는 정부의 과학자문위원장 패트릭 발란스 경 (Sir Patrick Vallance)이 이런 주장을 했다. “정부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걸려 아플 테지만 모든 국민의 60% 정도가 바이러스에 걸리고 나면 면역력이 생겨 ‘집단면역체계(Herd Immunity)가 구축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젊은이는 코로나에 걸려도 면역력이 좋으니 경미한 통증만 느낄 것입니다.”

▲JTBC 보도화면 갈무리.
▲JTBC 보도화면 갈무리.

물론 그의 생각은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 총리의 ‘대책없는 대책’, ‘무력하기 짝이 없는 대책’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안토니 교수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막지 않고 키워서 집단면역체계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현명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고 비난했다. 패트릭과 함께 정부의 의료자문 위원장으로 코로나 대응책을 주도하고 있는 크리스 위티(Prof Chris Whitty) 교수의 계산법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환자의 사망률은 1%다. 그걸 적용하면 영국 정부는 6백만 명 입원과 2백만 명의 집중치료, 40만2000여명의 사망을 감수하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40만명이 넘는 인명손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과학 자문 위원장에게 안토니 카스텔로 교수는 인구의 60%가 감염되면 집단면역체계가 구축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예일대 아키코 이와사키(Akiko Iwasaki) 교수도 집단면역은 백신에 의해 생기는 것이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전염 균이 만드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레이엄 메들리(Graham Medley) 공중보건의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목표는 감염을 억제해 희생을 줄이는 것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부수적인 성과물로 집단면역체계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집단면역체계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코로나가 확산 될 만큼 확산되면 인간의 몸속에 면역체계가 생겨 확산이 중지될 것이라는 패트릭 교수의 대책 같지 않은 대책은 비공식적인 정부 대책으로 존재하다 논란이 커지자 슬그머니 버려졌다. 그런데 그런 버려진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옥스포드 대학교 전염병 진화 생태학(Prof Gupta) 연구팀은 영국과 이탈리아의 사례와 사망자 보고서를 중심으로 분석 연구한 결과 “영국인의 반이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됐을 수 있다”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1000명 중 한 명 미만이 병원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증상을 앓고. 대다수는 아주 가볍거나 무증상에 머문다는 말이 된다. 

연구팀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영국에 상륙한 시기도 지난해 12월 초부터 1월 중순 사이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첫 감염자가 2월 말에 발견되었으니 바이러스는 그전부터 한 달 넘게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영국이 부지불식간에 상당한 집단면역 체계를 구축하고 말았다는 말과 같다. 옥스포드 대학 연구팀은 켄트 대학과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구 결과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고 결과는 실험이 끝나면 바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옥스포드 대학팀의 이같은 발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신반의’, ‘설왕설래’ 중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일찍부터 영국은 WHO의 권고와는 다른 길을 택할 것 이라면서 의심되는 모든 사람을 추적하지도 않고 진단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검사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니 경미한 환자는 집에 머물러라. 통행 제한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통행 제한과 같은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경우 피로감이 빨리 와서 시민들이 비협조적인 행동을 보이고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심도 낮아질 것이라는 게 주변 과학자들의 조언을 받은 그의 생각이었다. 400명이 넘는 영국 면역학회 회원과 500명 이상의 행동과학자 (UK Behavioural Scientists)가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이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결정된 것인지 묻는 항의서한을 보냈으나 답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투명하지 못한 정부라며 불만을 토했다. 

3월 23일, 정부는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고 사망자 숫자도 가파르게 증가하자 그제서야 프랑스, 이탈리아를 따라 모든 공공장소와 학교, 상점, 식당의 문을 닫고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그러면서 장비와 인력을 보충해 검사를 늘리겠다고 했다. 다른 길을 가겠다면서 대한민국의 대응책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3월 29일 현재 영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은 시민은 우리나라에 1/4인, 10만 8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확진자가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 1만9000여명, 사망자는 7.5배가 넘는 1200여명에 이른다.

영국 정부는 각자 조심하고 죽을 것처럼 아프면 그때 도움을 청하라고 한다. 시신만 거두어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계조차 신뢰할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의료진을 우선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사이에 무증상자나 경증환자, 의심환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통계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는 최선의 대응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 집에 가두기’다. 정부는 이 통행 제한 조치가 6개월간 혹은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발표했다. 6개월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석기시대로 돌리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옥스포드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믿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허황한 바람은 그래서 더 간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패트릭 교수의 말대로 인구의 반 이상이 걸려서 면역력이 생기고 그래서 확산과 희생이 중지된다면, 그것이 똘똘한 사람은 다 모여있다는 옥스포드 연구팀의 결과대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구현돼버린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위아래도 몰라보는 바이러스는 왕세자도, 총리도 감염시켜 버렸고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는 속절없이 늘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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