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이들은 기성 언론이 아니었다. ‘추적단 불꽃’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대학생 기자 2명이었다.

지금이야 언론 인터뷰 등으로 ‘추적단 불꽃’의 저널리즘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지난해 11월 한겨레 보도가 있기 전까지 레거시 미디어들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추적단 불꽃의 취재물은 지난해 9월 뉴스통신진흥회(이사장 강기석·연합뉴스 대주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 30일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 화면.
▲ 30일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 화면.

뉴스통신진흥회는 이보다 앞서 5월 일반 시민과 언론인 대상으로 ‘탐사·심층·르포 취재물’을 공모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룬 추적단 불꽃의 취재물(“‘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텔레그램’ 불법 활개”)은 우수상에 선정됐다.

당시 뉴스통신진흥회는 “아동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 익명 채팅방의 문제점을 파악해 공론화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피해 불법 음란물들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실태를 폭로했다”고 평가했다.

의문은 왜 연합뉴스가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느냐에 있다.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가 공모한 사업인데, 정작 의제 설정과 심층 보도는 지난해 말 한겨레가 주도했다.

뉴스통신진흥회는 지난해 4월 공고에서 “수상작은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 연합뉴스 등 매체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연합뉴스를 통한 전면적 취재물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탐사 취재물 공모 전부터 뉴스통신진흥회는 연합뉴스 홈페이지에 기사화하거나 수상작을 게재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으나 연합뉴스 측에서는 게재 시 보도 책임 문제 등을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양쪽은 연합뉴스가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취재물 시상 결과를 보도하되, 수상작을 볼 수 있는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 링크를 기사에 소개하는 것으로 조율했다.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흥회가 처음 이 사업을 벌이기로 한 것은 기존 신문 방송사 정규 기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는 저널리즘을 대학생,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인터넷 기자들에게도 확대하자는 의도였다”며 “‘추적단 불꽃’의 ‘n번방 사건’ 보도는 정확히 그 의도에 맞아 떨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강 이사장은 “그러나 그뿐이었다. 기사는 완벽한 특종이었으되 특종기사가 누려 마땅한 사회적 파급력은 너무 지체됐다”며 “그때 만일 내가 ‘첫 회인데도 참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흡족해하지 말고 진흥회가 관리 감독하는 연합뉴스만이라도 간곡히 설득하고 부탁해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후속 보도했더라면 최소한 ‘박사방’ 피해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자책했다.

강 이사장은 30일 통화에서 “뒤늦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연합뉴스 기자들은 수상작을 보고 문제를 느껴 취재에 돌입했어야 했고, 나 역시도 심층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하게 제안하고 설득했어야 했다”고 개탄한 뒤 “나 자신도 취재 현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됐고, 디지털 성폭력 실태에 무지한 기성세대라는 걸 새삼 깨닫고 반성한다. 지난해 말 한겨레 보도를 보고도 (공모 사업의 결과란 생각에) 흐뭇하기만 했지, 그때까지도 이 사안이 무슨 맥락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이성한 연합뉴스 편집총국장은 30일 통화에서 “주의 깊게 보지 못했던 면이 있다”며 “진흥회가 공모한 탐사보도 수상작이 여러 건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한 국장은 “경찰 수사가 이뤄지면서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이른바 연합뉴스를 포함한 기성 언론들은 이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적단 불꽃은 30일 미디어오늘에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 수상 후 연합뉴스에서 추가 취재 등을 통해 우리 기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워낙 취재할 사안이 넓어 시간이 걸리는 줄로 알았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 기사는 ‘사건’이 아니라 단순한 ‘기사’로 소비되는구나 싶어서 낙담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와 언론들이 앞다퉈 단독 보도를 내놓는 걸 보면 그때는 왜 취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추적단 불꽃은 지난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진행자가 지금에서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터진 이유를 묻자 “언론 잘못이 크다”며 “작년 11월 한겨레에서 보도가 크게 나갔는데도, 다른 언론사들은 아무도 보도하지 않았다. 저희는 작년 9월 보도했는데 ‘박사방’ 피해자는 그 이후 생겼기 때문에 언론이 제때 보도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언론은 이 사건에 반성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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