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자신들의 100년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 5일 발간한 ‘민족과 함께 한 세기’의 부제는 ‘간추린 조선일보 100년사’다. 이 책은 각종 현대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평가와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발간사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를 가리켜 “점점 더 악화된 검열기준과 보도지침을 강요하는 총독부의 억압에 고통받으면서 민족의식의 보루 역할을 하려고 애쓰다 강제폐간의 쓰라림을 안았다”고 적었다. 광복 이후 조선일보를 두고는 “지역갈등과 이념분쟁에 시달리고 정권에 밉보여 시련을 겪었지만 할 말은 하는 신문으로 정론 직필과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왔다”고 자평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유신독재에 대한 언급이다. 조선일보는 “1972년은 한국정치사는 물론 한국언론사에서도 최악의 해”라고 평가했다. 1972년 2월 기준 3975명에게 프레스카드가 발급되었고, 여기서 배제된 1063명은 언론계를 떠났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을 소지한 기자만 취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레스카드 제도는 기자의 신분을 정부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발상이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최근 펴낸 '간추린 조선일보 100년사'.
▲조선일보가 최근 펴낸 '간추린 조선일보 100년사'.

조선일보는 이 책에서 “박정희는 초헌법적 조치인 10월 유신을 통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장기집권을 위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으며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10월 유신으로 한국 언론계는 보도 및 비판 기능이 사실상 마비 단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전 검열을 받아 신문을 만드는 계엄하에서 유신을 지지하는 내용을 게재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박정희 찬양 보도는 어쩔 수 없었으며, 조선일보는 유신독재의 피해자라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책에 빠진 ‘사실’이 있다. 뉴스타파의 ‘조동(朝東) 100년’ 기획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 이종식은 1973년과 1979년 유신으로 탄생한 유신정우회(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 선우여는 1971년 청와대 공보비서관, 1979년 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출신 박현서도 1979년 유정회 의원이 됐다. 조선일보 간부들이 유신독재의 친위대 역할을 한 셈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윤주영은 1963년 공화당 대변인, 1971년 문화공보부 장관, 1976년 유정회 의원을 거쳐 다시 조선일보로 돌아와 이사를 거쳐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같은 ‘조선일보맨’들의 행보에 비춰볼 때 조선일보는 유신독재의 피해자라기보다 공범자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조선일보 회장 방일영의 자서전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끔은 방일영 회장이 부러울 때가 있어.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 수 있고, 정부를 때리고 싶을 땐 마음껏 때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나도 대통령 그만둔 다음에는 신문사 사장이나 해볼까?” 이처럼 조선일보 사주와 박정희의 사이는 가까웠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독재 시절 정부의 지급보증 특혜로 일본에서 민간차관 400만 달러를 들여와 코리아나 호텔을 지었다. 조선일보가 100년사를 통해 진정 유신독재를 비판하고자 했다면, 유신독재 권력과 야합했던 선배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기록했어야 했다. 

▲코리아나호텔과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과 조선일보.

전두환 신군부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이 책에서 12·12사태를 가리켜 “군부의 하극상 사건”이라 명명하며 전두환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적 논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란 대목은 있어도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이 국보위원이었다는 대목은 책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해 신군부 언론인 숙정 작업으로 조선일보 사원 14명이 회사를 떠났다는 대목은 있었지만 같은 해 ‘인간 전두환’이란 특집기사를 통해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같은 문구로 전두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대목은 찾을 수 없었다.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1980년 당시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의 비서실장으로 언론 통폐합을 주도한 허문도가 1978년까지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사실도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허문도는 문화공보부 차관과 청와대 정무1수석 등을 거친 신군부 실세였다. 조선일보는 전두환 신군부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오늘의 ‘1등 신문’ 위치에 올랐다. 이 때도 ‘조선일보맨’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직무대리 출신 김윤환은 유정회 의원을 거쳐 신군부에서 민정당 창당발기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최병렬은 1985년 민정당 국회의원이 되었고,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문화공보부장관 등을 거치며 역시 승승장구했다. 

조선일보에겐 스스로를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정언유착 역사에 대해 짚고 성찰하는 면이 필요했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이 책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지만, 훗날 광주시민의 분노를 일으킨 김대중 사회부장의 광주 르포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상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조선일보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자신들을 군부세력의 피해자로 위치시킬 뿐이었다. 이러한 태도의 조선일보를 ‘피해자’로 생각할 독자가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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