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지난 28일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텔레그램 ‘박사’는 누구인가’ 편 방송 뒤 그알 시청자게시판, SNS 등에는 수많은 비판 글이 올라왔다. 방송방향과 구성, 표현 방식에 불만이 쏟아졌다. 그알 제작진이 처음 텔레그램 성착취방 운영자가 조주빈이 아닌 다른 인물이라고 가정했다가 방송 며칠 전에 변경한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선정성·가해자 옹호·불필요한 내용

이날 방송에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차례 나온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성착취방 운영·이용자들에게 ‘살려달라’,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절규하는 목소리를 추출해 반복 내보냈다. 피해자 인터뷰로 범행 수법과 범죄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최근 검찰에 넘겨진 조주빈이 실제 박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28일 그알 방송 화면 갈무리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최근 검찰에 넘겨진 조주빈이 실제 박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28일 그알 방송 화면 갈무리, 모자이크 추가=미디어오늘

 

방송 다음날 시청자 K씨는 SBS 시청자게시판에 “(해당 회차뿐 아니라)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 경우 (피해자가 애원하는 목소리가) 자주 등장한다”며 “‘전형적인 피해자상’을 만드는 것 아니냐, 과도하게 자극적 연출을 감행하면 남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지적했다.

제작진의 피해자 인터뷰는 “(조주빈이) 20대 중반일 것 같지 않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생각했다” 등 조주빈이 진짜 박사가 맞는지 초점을 뒀다. 흔히 성범죄 보도에서 ‘피해자 목소리’를 담으라고 하는데 이는 피해자 인터뷰 내용이면 충족하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이 공익적이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범죄자들이 반드시 처벌받고 범죄가 가능했던 시스템과 문화를 개혁하자는 메시지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이번 방송 비판의견 중 하나.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이번 방송 비판의견 중 하나.
▲ 28일 방송 이후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부적절했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 28일 방송 이후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부적절했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조주빈을 악마화하는 내용도 있었다. 범죄자만 ‘악마’ 만드는 보도 방식은 성범죄가 만연한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에 방해가 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 집단 성범죄가 가능했던 이유는 모든 남성에게 통제불가능한 성욕이 있다는 인식 탓이다. 이런 왜곡된 성인식을 바꾸지 않은 채 범죄가 벌어지면 피의자만 악마로 만들어 강하게 처벌하라는 보도는 모순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해자 서사를 만들어주고 범행을 합리화하는 내용도 문제다. 경찰이 그알 측에 “엄청난 아이입니다”라고 한 부분을 방송에 내보냈고 조주빈이 자서전을 썼는데 그 내용과 문체가 어떠한지 자세히 전했다. 평소 이성친구에게 접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가 편입을 준비한다거나 어렸을 때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등의 조주빈 신상정보를 자세하게 알렸다. 특히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도덕 개념이 없어졌다는 분석을 전문가 입을 통해 전했다. 

시청자들은 ‘조주빈의 서사를 끌어내는 것이 범행을 합리화할 수 있다’, ‘불우한 가정사를 조명하는 게 불편했다’고 비판했다. 정작 어떻게 집단 성착취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 이미 퍼진 영상들을 처리할 방법이나 국민청원에서 나온 26만명 신원정보가 가능한지 등 알권리를 충족하는 내용은 없었다. 

보도방향 바꾸면서 채우지 못한 범죄자 자리

그알이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선정적이고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은 반복해왔다. 제작진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번 방송의 허점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 방송 며칠 전 수정하면서 벌어진 문제이기도 하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그알 제작진은 처음에 암호화폐 전문가 A씨를 진짜 박사로 간주하고 그의 사무실 옆방을 얻어 A씨를 4일간 잠복·미행했다. 기존 예고편에서 마치 범인을 추적하듯 A씨의 차량을 따라가고 제작진이 달려가 A씨를 잡아 인터뷰를 요청하는 과정을 내보냈다. 그알 제작진이 A씨에게 한 질문을 보면 제작진은 A씨의 해명을 무시한 채 A씨를 ‘박사’로 추정하다가 조주빈이 검거돼 범행사실을 인정하자 A씨를 조주빈의 공범으로 몰아갔다. 

[관련기사 : [단독] SBS ‘그알’ 때문에 ‘N번방 공범자’ 낙인찍혔다]
[관련기사 :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만으로 그를 무너뜨렸다]

이번 방송을 보면 박사가 조주빈이 아닐 수 있다며 40대의 경제·암호화폐 전문지식이 있는 인물을 진짜 박사로 추정했다. A씨를 범인으로 보고 방송을 만들다가 A씨가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하고, 미디어오늘에 제보해 취재를 시작한 지난 26일 A씨를 범죄자가 아닌 ‘박사방 일당에게 암호화폐 주소를 도용당한 피해자’로 바꿨다. 방송 이틀 전 방향을 바꾸고 조주빈이 아닌 진짜 박사가 있을 가능성만 언급한 채 진짜 박사가 누군지 특정하진 못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경찰에 '현재 검거된 조주빈이 아닌 다른 박사가 있을 가능성'을 문의하는 장면. 사진=28일 그알 방송 화면 갈무리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경찰에 '현재 검거된 조주빈이 아닌 다른 박사가 있을 가능성'을 문의하는 장면. 사진=28일 그알 방송 화면 갈무리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7일 오후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예고편에서 A씨를 성착취범죄자로 설정한 것 때문에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제작진이 방송방향을 바꾸기로 했으니 당연히 가처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온라인상에는 시청자들이 A씨 사례를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를 공유하며 그알 측의 공식사과와 A씨에 대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 다음날인 지난 29일 그알 담당PD는 A씨에게 “(경찰과 통화로) 조주빈이 (A씨 등의 암호화폐) 주소를 도용해 경찰 수사망을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며 “그동안 의혹을 품고 의심해 죄송하다. 변명하지 않겠다. 공포를 느끼게 만든 내 책임”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이어 “피해회복에 도울 점이 있으면 연락달라”며 “팀이랑 상의해 피해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A씨는 미디어오늘에 “열흘간 나와 처는 만신창이였는데 저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고 말했다. 열흘 전 A씨 해명에 귀기울였다면 A씨를 범죄자로 특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착취범으로 방송에 나올 뻔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A씨는 전화를 받지 못할 만큼 심신이 불안한 상태다. A씨는 ‘향후 대응책’을 “변호사와 상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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