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시작 

군인 장○○(당시 20세)씨는 휴가 중이던 2015년 9월24일 새벽 4시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헤어진 이후 남의 집을 돌아다니며 이상행동을 보였다. 새벽 5시경 공릉동에 위치한 최아무개씨 집 작은 방 창문 유리를 깨고 침입하려다 발각돼 도망쳤고, 5시20분경 방아무개씨 집 앞 현관문으로 침입했다가 방씨에게 발각되어 쫓겨났다. 마지막은 양석주씨(당시 36세)의 집이었다.

장씨는 운동화를 신은 채 현관문을 열고 침입했다. 경찰이 확보한 골목 앞 CCTV 영상에 따르면 장씨가 양씨의 집에 들어간 시각은 5시28분이었다. 장씨는 자고 있던 양씨의 약혼녀 박○○(당시 33세)씨의 가슴을 찔렀다.

이상한 낌새를 느껴 일어난 양씨가 장씨와 마주쳤다. 격투가 이어졌다. 칼로 장씨를 제압한 양씨는 골목으로 나와 살려달라고 외쳤다. “여자 친구가 죽게 생겼다”며 119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이때가 5시34분 경이다. 장씨는 5시30분 경 사망했다. 그의 흉강 혈액에서 검출된 에틸알코올농도는 0.191%로, 만취 상태였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었다.  

현장감식 결과 약혼녀 박씨의 오른쪽 손톱에서 군인 장씨의 DNA가, 장씨의 오른쪽 손톱에서 양씨의 DNA가 검출됐다. 박씨와 장씨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섬유 올이 서로 유사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범행도구였던 칼에선 장씨, 박씨, 양씨의 DNA가 발견됐다. 안방·작은방·거실에서 장씨의 혈흔이 고루 발견된 반면, 박씨가 있던 안방에서 양씨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15일 후, SBS의 등장 

양씨는 묻지마 살인으로 9년간 만난 약혼녀를 잃은 피해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약혼녀를 살해하고 약혼녀를 도우러 온 군인마저 살해한 가해자였다. 그를 향한 의심과 이중적인 시선은 커져만 갔다. 발단은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궁금한이야기Y’의 2015년 10월9일자 ‘노원구 살인사건, 군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가리키는 것은’ 편이었다. 

SBS 제작진은 인근 주민 오○○씨의 증언을 인용해 “살려주세요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27분이었다”고 내보냈다. 오씨 증언이 맞다면 비명 소리 이후 장씨가 양씨 집에 들어간 셈이었다. CCTV상 이 사건은 양씨 또는 장씨 둘 중 한 명이 박씨를 죽인 범인일 수밖에 없는 밀실 살인이었다. 방송 이후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던 양씨를 살인자로 의심했다.  

▲ 2015년 10월9일자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한 장면.
▲ 2015년 10월9일자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한 장면.

그의 살인이 정당방위냐를 두고서도 세상의 관심은 뜨거웠다. 경찰은 2개월 만에 박씨의 살해범으로 장씨를 지목하고 양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에서 그의 무죄를 인정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2017년 10월, 언론은 27년 만에 정당방위로 인정된 살인사건이라며 떠들썩했으나 정의는 ‘지연’되었고, 생존자의 삶은 망가졌다. 

양씨는 지난해 3월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8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2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사실상 첫 공판기일이 열렸다. SBS는 “방송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고, 원고(양씨)가 범인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원고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없다”며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쟁점 1, 장○○의 왼손 상처 

양석주씨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장○○씨 부검감정서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국과수 감정서에는 “왼손 엄지손가락 아래쪽에서 약 3.6cm의 절창을 봄”이라고 적혀있다. 시체 사진에도 왼쪽 엄지손가락에 자창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SBS는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체의 검안 결과, 스무 차례나 피해 여성에게 칼을 휘두른 장 상병의 손에 칼로 인한 상처가 전혀 없었답니다.” 

▲ 군인 장아무개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
▲ 군인 장아무개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

그 증거로 SBS 방송에 등장한 사체 검안서는 사망자의 직접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내용만 적혀있고, 장씨의 손 상처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SBS가 국과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방송을 미뤘다면 정확한 부검감정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시체 검안서를 토대로 무리하게 방송을 내보냈다는 게 양씨 측 주장이다.

이에 SBS측은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왼쪽 엄지손가락 자상은 장씨가 박씨를 칼로 찌르다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원고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원고에 의해 베어진 상처”라고 반박했다. 약 3.6cm 절창은 공격이 아닌 방어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의 소견이 있다는 게 SBS측 입장이다. SBS는 “부검감정회신을 통해 칼을 찌르는 과정에서 발생할 만한 상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장씨에게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상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장씨 유족과 군 관계자 발언을 소개한 방송 부분은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SBS는 또한 당시 법의학자 인터뷰를 통해 “칼로 찌르게 되면 손을 다치는 것이 통상적이나, 전문적으로 훈련된 경우 등 예외 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방송했다고 밝혔다. 손 상처 여부와 상관없이 장씨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 2015년 10월9일자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한 장면.
▲ 2015년 10월9일자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한 장면.

쟁점 2, “5시27분” 증언 

양씨측은 SBS가 사건 당시 카카오톡을 하고 있던 인근 주민 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한다. 오씨는 SBS 제작진을 만나 첫 진술에서 비명 소리를 새벽 5시27분에 들었고 3분쯤 지나 5시30분에 정확히 신고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경찰에 신고한 시점은 정확히 5시33분44초였다. 확신을 갖고 말한 첫 진술 당시와는 약 4분가량의 오차가 발생한 셈이었다. 

양씨측은 “SBS는 오씨가 들었다는 비명 소리가 27분이 아니라 30분경에 있었고, 이후 3~4분 뒤 오씨 일행이 112에 신고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SBS가 “오씨측 주장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장씨는 박씨를 죽일 수 없었고 결국 박씨는 원고가 죽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한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방송에서 양씨를 의심하게 만든 결정적 장면도 “5시27분” 증언이었다. 

이에 대해 SBS는 “오씨의 발언을 조작하거나, 허위의 내용으로 방송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SBS는 “오씨가 두바이에 있는 아들과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카톡을 보낸 직후에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27분경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고 밝혔으며 “오씨의 위와 같은 진술은 4차례 이상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동일하게 유지되었다”고 주장했다. 

SBS는 “오씨의 일부 진술 중에 ‘27분에서 30분 사이에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본인이 비명 소리를 들은 시점을 ‘30분’으로 진술했다는 경찰의 주장에 반박 내지 해명하는 취지였을 뿐, 종전의 입장을 변경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씨의 경찰 진술조서에는 여자 비명 소리를 들은 시간이 5시30분 경이라고 적혀있다. 서울북부지검은 SBS에 대한 불기소 이유서에서 “경찰은 27분에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에 대해서는 확인이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2017년 10월 JTBC 보도화면 갈무리.
▲ 2017년 10월 JTBC 보도화면 갈무리.

쟁점 3, 손해배상 소멸시효 

SBS는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가 사건 발생으로부터 3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SBS는 “원고는 유일한 생존자다. 살인사건의 진상은 원고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방송이 허위라면 원고는 이 사건 방송을 인지한 시점에 곧 이 사건 방송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방송 시점부터 손해의 발생을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양씨 측은 “보통의 소송이라면 소멸시효 기산점을 (방송 시점인) 2015년 10월경부터 산정하겠으나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처분이 이뤄져야 했다”며 검찰이 2017년 10월23일에서야 원고에 대한 불기소처분(정당방위)을 내렸고, 그전까지는 원고가 피의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원 존재 여부 자체가 현실적·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SBS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는 2017년 10월23일 이후로 기산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하지만 SBS는 양씨측이 언급한 2017년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두고 “박씨를 살해한 사람이 장씨인가 원고인가의 사실인정에 관한 것이 아니며, 방송이 원고의 정당방위 성립 가능성에 대해 다룬 것도 아니므로, 불기소처분이 원고의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이 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부가 소멸시효 시점을 방송 직후로 본다면 양씨는 방송에 문제가 있었다는 판결이 나와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 

▲ 2015년 당시 공릉동 살인사건 현장. ⓒ 연합뉴스
▲ 2015년 당시 공릉동 살인사건 현장. ⓒ 연합뉴스

양씨 “억지로 끌어내 만든 3분 때문에…”

앞서 이 사건은 2016년 1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 불성립됐다. 양씨가 SBS와 제작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형사고소의 경우 2018년 5월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서울북부지검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오씨가 인터뷰 과정에서 비명 소리를 들은 시간에 대해 5시27분 경에서 5시30분 경 사이라고 번복했음에도, 방송에는 5시27분 경 비명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는 부분만 내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지만 “피의자들이 방송 내용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은 살인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아 언론 보도가 계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며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를 두고 양씨는 “억지로 끌어내 만든 3분 때문에 나는 약혼녀를 죽인 살인마로 몰렸는데, 이게 정당하다는 검사의 판단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라며 항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씨는 당시 고소장에서 “국과수 결과 발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비보도 약속을 어겨가며 나를 약혼녀를 죽이고 비명 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온 사람까지 살해한 살인마로 지목해 수사에 방해를 가하고 수없이 많은 조작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했다”며 “공익성을 빌미로 여론재판, 여론 살인을 가한 방송에 대한 엄벌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SBS는 “공릉동 살인사건과 관련해 범인으로 지목된 장씨의 살인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CCTV 영상, 관련 인물 행적과 주변인 진술, 인근 주민 진술, 전문가 진술을 방송한 것으로, 장씨의 범행 동기 등과 관련한 합리적인 의혹 제기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일 뿐이며, 원고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내용으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SBS 주장대로 방송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양석주씨가 방송으로 입은 고통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할까. SBS 방송이 없었다면, 그저 양씨는 약혼녀를 가슴에 묻고 조용히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27년 만의 정당방위 살인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유일한 생존자 양씨는 SBS의 ‘여론 살인’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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