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여름 수원대 이원영 교수가 주도하는 생명·탈핵 실크로드순례단에 참여했다. 4주 동안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순례에 동참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나는 30세 터키 청년(Berker Ekmekci)을 만났다. 그는 터키의 북쪽 흑해에 있는 항구도시 트라브존에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 3년이 지난 1989년 태어났다. 그는 현재 터키 남쪽에 있는 안탈리아라는 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자라고 말하면서 주변 사람 누구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 체르노빌사고(1986년) 이후 유럽의 방사능 오염지도와 흑해(Black Sea)
▲ 체르노빌사고(1986년) 이후 유럽의 방사능 오염지도와 흑해(Black Sea)

그는 6세 때 고환암이 발견됐고 17세에 한쪽 고환을 제거했는데 아직도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방암과 자궁암에 이어 뇌종양으로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머니 암 역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문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우리에게 편지에서 자기 이야기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알려도 좋다고 했는데,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저는 지금 독신입니다만 언젠가는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제 아이도 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납니다. 저의 가족 암 문제 시작은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1986년 4월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104km 북쪽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4기 중 하나가 폭발하는 사고가 나면서, 방사능 물질이 대량으로 공기 중에 누출됐다.

폭발 사고로 주변 건물까지 30곳에서 화재가 발행했는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무려 10일이나 걸렸다. 그동안 방사능 물질은 끊임없이 대기권에 유입되고 기류를 타고 흑해를 넘어 남하해 터키 북동부 지방에까지 이동했다. 터키에서 4월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어서 방사능 낙진이 경작지와 초원과 바다와 호수를 오염시켰다.

▲ 좌측부터 이원영 교수, Berker Ekmekci, 필자
▲ 좌측부터 이원영 교수, Berker Ekmekci, 필자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자 터키 정부 반응은 무조건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터키는 세계에서 가장 홍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인데, 국민들은 터키 북부에서 재배하는 차나무 잎과 다른 견과류의 오염을 염려했다. 또한 아기가 먹는 우유와 흑해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 관리들은 국민 불안감을 해소시키려고 지나친 행동을 했다. 산업무역부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해롭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환경부 장관은 심지어 홍차를 얼굴에 문지르는 연출을 보여줬다. 이에 대해 핵무기를 반대하는 의사 모임의 회원인 독일 의사 클라우센은 “나는 정부 관리들이 흑해 연안에서 재배한 홍차를 왜 그렇게 옹호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많은 터키 국민들은 아직도 방사능 오염이 암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다. Kazim Koyuncu라는 인기 가수가 2005년 34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방사능으로 인한 암 때문에 죽었다고 믿고 있다. 터키의 일간지인 Daily Sabah의 2014년 4월27일자 보도를 보면, 트라브존 시의 한 시민단체 부회장인 Ayaz씨는 아버지와 친척을 암으로 잃고, 동생은 암 투병 중이었다.

그는 암 사망 통계를 찾아봤지만 정부 기관 자료에서는 찾지를 못했다. 그는 공동묘지 묘를 일일이 확인해 사망 원인을 조사했는데, 공동 묘지에 묻힌 사망자의 60%가 암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는 터키에서 체르노빌 방사능 노출로 인한 암 발생과 죽음이 계속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흑해의 방사능 오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학술잡지에 의하면 흑해 표층수에서 2013년 측정된 세슘(Cs)과 스트론튬(Sr) 방사능 농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전인 1986년에 비해 각각 3.5배와 1.5배로 높게 나타났다. 유럽의 독립적인 원전 전문가 모임은  2006년에 발표한 TORCH 보고서에서 체르노빌로 인한 암 사망자는 이후 3~6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터키 정부는 2010년 러시아 국영 원자력에너지사와 계약을 맺고 원전 3기를 아큐유에 건설 중(2023년 가동 목표)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UNSCEAR(United Nations Scientific Committee on the Effects of Atomic Radiation)이라는 유엔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유엔 산하 방사선 영향에 관한 과학위원회인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에 관해서 2008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사고 현장에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28명이었다. 복구 작업에 참여한 수십만 명 중에서 백혈병 및 백내장 발병률이 증가했으나 피폭으로 인한 건강상의 영향에 대한 증거는 없다. 일반 대중 건강에 영향을 줬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아마도 터키 정부는 UN 기구 발표를 인용하면서 원전 건설을 결정했을 것이다. 국민에게 유엔 기구 발표를 믿으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터키 국민들은 유엔 기구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유엔 기구 신뢰 문제는 터키 국민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생선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내 두 아들은 생선을 먹지 않는다. 왜 안 먹느냐고 물어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이야기한다.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 생선 오염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적정 처리한 후 바다로 방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 전력은 오염수를 처리하면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일본인 전문가에 의해 폭로됐다. 2019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탈핵 관련 세미나에서 일본의 과학저널리스트인 마키타 히로시 박사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에 삼중수소 외에는 다른 방사성 물질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핵종이 있음을) 숨겨 왔다는 사실이 2018년 8월 드러났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데다가 다른 방사성 핵종이 발견된 이상 해양 방출은 안 된다”고 말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일은 2020년 2월26일 발생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IAEA(국제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인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방안에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 방안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5대양 물은 해류를 통해 서로 섞인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고기는 국경을 무시하고 해류를 따라 이동할 것이다. 우리는 IAEA 사무총장 발언을 신뢰하고서 아베 정부에서 추진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안전하다고 믿어야 할까? 방사능으로 인한 해양 오염 진실은 누가 밝혀줄 것인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450개 원전의 가동을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각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구촌 원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제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강대국에 휘둘리는 현재 UN과 그 산하기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WHO 사무총장이 최대 후원국인 중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우리는 봤다. 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옹호하는 모습도 봤다. 게다가 10년 전에는 UNEP(유엔환경계획) 수장이 한국에 와서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공사를 편들어주는 것을 봤다. 현재 국제기구는 자본력을 앞세운 국가들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원전과 방사능 문제와 같은 근본적 문제에 걸맞은 지구촌 차원의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세계민중의 힘을 모은 제2의 UN 같은 장치가 절실하다. 이것이 우리가 34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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