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증거 없이, 반론을 마주해도 기존 취재 방향을 유지하는 언론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오는 28일 방영할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제작진이 A씨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주범인 ‘박사(조주빈)’의 공범자로 확정해 강압적으로 취재를 끌어간 사실을 보도했다. A씨는 제작진에게 수차례 해명했지만 제작진은 10일 이상 A씨를 범죄자로 봤고, 이런 내용의 방송 예고편을 공개했다. 

A씨가 억울한 마음에 지난 25일 오후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26일 오전 미디어오늘이 그알 제작진 취재를 시작하자 돌연 1시간 뒤 담당 PD는 ‘A씨를 공범자(가해자)가 아닌 암호화폐 지갑주소(은행계좌에 해당)를 도용당한 피해자로 방송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10일간 A씨는 성착취 범죄자로 오해 받으며 일상을 잃었다.

[관련기사 : [단독] SBS ‘그알’ 때문에 ‘N번방 공범자’ 낙인찍혔다]

▲ 지난주 방송 이후 공개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8일 방송 예고편. 암호화폐 주소를 도용당한 A씨를 그알 제작진이 박사방 공범자로 보고 미행하는 장면. A씨는 예고편에서 특이한 색상의 자신 차량과 아파트 단지 등이 나와 이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 지난주 방송 이후 공개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8일 방송 예고편. 암호화폐 주소를 도용당한 A씨를 그알 제작진이 박사방 공범자로 보고 미행하는 장면. A씨는 예고편에서 특이한 색상의 자신 차량과 아파트 단지 등이 나와 이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결론만 보면 그알 측은 A씨를 성착취방 공범자로 방송하지 않을 예정이다. 방송에 나가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언론인의 취재 태도만으로 끔찍한 피해를 준 그알 취재 과정을 보도했다. 그알이 취했던 다음과 같은 질문방식으론 의혹을 확인하기 어렵다. 

“당신이 박사방에 암호화폐 주소 올렸냐.”
“그렇지 않다.”
“아니란 증거는?”
“…”

존재하는 사실은 실체를 보여주면 입증이 되지만, 없는 사실은 입증할 방법이 없다. A씨가 박사방에 자신의 암호화폐 주소를 올렸다고 생각하는 쪽은 SBS다. SBS가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한다. 그전까진 A씨를 범인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A씨 해명에 귀를 열었어야 한다. SBS는 일주일 넘게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 28일 방송 예정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 - 텔레그램 ‘박사’는 누구인가' 사진=SBS
▲ 28일 방송 예정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은밀한 초대 뒤에 숨은 괴물 - 텔레그램 ‘박사’는 누구인가' 사진=SBS

뒤늦게 A씨 주장 취지로 각본을 바꾼 뒤에도 무리한 요구는 이어졌다. 제작진은 오히려 A씨에게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나는 주소를 도용당한 조주빈의 피해자다’라는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범죄자라던 A씨에게 ‘암호화폐 전문가로서 그알 방송에 나오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A씨는 어떤 상태였을까. 그알 제작진은 A씨 사무실 옆방을 얻어 잠복하는 등 4일간 A씨를 미행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씨는 미디어오늘에 “엘리베이터 올라가면 누가 서 있을 것 같고, 누가 공구상자를 들고 가는데 그게 카메라로 보인다”며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PD가 A씨에게 말했듯 “폭력적일 수 있는” 모습이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다 SBS 취재 일주일 만에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방송 이후 비난과 신상노출 등이 두려워 SNS에 꾸준히 기록해온 아이들 사진을 백업도 못한 채 다 지웠다”며 “지우면서 이걸 왜 하는지 참 초라했다”고 말했다. 

며칠 남지 않은 방송을 방어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A씨는 부인 명의로 카드론까지 받아 변호사를 선임해 방송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이미 자문료 수백만원을 지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알 PD는 A씨에게 “가처분을 취하해달라”고 했다.

그알 PD는 18일 A씨 취재 당시 경찰의 압수수색 가능성을 거론하며 자료를 서울지방경찰청에 넘기면 곧 수사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A씨는 서울청을 찾아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했는지 물었다. 23일 수사관과 A씨 통화 내역을 보면 서울청은 A씨를 수사 대상으로 보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압수수색’, ‘수사 가능성’이 모두 근거 없는 협박이었던 셈이다. 그알이 한 사람과 일상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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