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창궐로 세계가 옷깃을 여미고 코끝에 스치는 따스한 바람을 외면하고 집 대문을 걸어 잠그는 2020년의 봄.

어느 나라는 국경을 봉쇄하고, 감염된 국민들을 외면한 어느 국가는 감염자 숫자만 줄이려 하고, 많은 곳에서 동양인이나 이방인들이 비난받고 차별받으며 병원균 취급을 당하는 슬픈 일들이 벌어지는, 겨울의 차가움이 가득한 봄이다.

온 세상이 옆 마을 마냥 가깝고, 세상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이웃인양 느껴지는 것을 보니 새삼 지구라는 별에서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이기 한 모양이다. 이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 바이러스인지 아니면 불신과 차별, 혐오와 가짜뉴스라는 인간 이기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위태로운 나날들이다.

국내 최고(最古)의 일관제철소 포스코.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콸콸 흘러 넘치는 80년대식 선전화면이 여전히 많은 사람 뇌리에 떠오르는 그곳. 그곳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붉은 쇳물이 흐르는 그 노동 현장에서 뜨거운 가슴을 가진 진짜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가 닥친 지구촌처럼, 그들의 봄 그리고 봄 같지 않은 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포스코에도 민주노조 탄생!”이라는 2년 전 가을의 뉴스. 

순식간에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 아래 모였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은 사람이 포스코 공장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조금의 실수에도 몇시간씩 이어졌던 반성회와 작업 현장에서 동료들이 수시로 죽어나가도 산재 처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던 지난 몇십 년의 현장 기억이 노동자들을 노조로 모이게 했다.

한 시간을 걸어가도 동료 한 명 만나기 힘든 드넓은 제철소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노조를 만드려는 채팅방에 속속 모여들어 병영 같은 회사 문화와 낮은 처우 등을 말하기 시작했다. 금세 1만7000명 노동자 가운데 3000명. 이때는 다들 포스코에도 노동의 봄이 오는 줄로만 알았다.

▲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 연합뉴스
▲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 연합뉴스

그런데 포스코 인사팀이 만들었다는 문건들이 발견됐고 회사 반격이 시작됐다. 문자와 SNS로 살포되는 관리자들의 메시지는 코로나의 가짜뉴스처럼 민주노조를 회사를 망하게 할 사회악처럼 매도하고 빨갱이로 묘사하고 있었다.

직원들의 익명 채팅방인 대나무 숲에서는 일반 직원임을 가장한 인사팀의 노조 비난 메시지가 도배되기 시작했고, 곧 포스코의 모든 공장에서 관리자들에 의한 대대적 직원 면담이 개시됐다. 승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미끼와 함께 제안한 민주노조 탈퇴 회유, 어떤 부서는 직원들을 ○, X, △로 분류해 민주노조 가담자를 밀착 감시하고 회유와 협박을 통한 설득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 텔레그램을 통한 관리자 방이 동원되기도 했다. 마치 N번방의 그것처럼 은밀히 가입된 포스코 관리자 방은 인사노무부서 고위자가 진두지휘했고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왜 그런 방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부당노동행위를 방지하는 안내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회사는 항변했다.

그 많은 사내 전산망과 내부 지휘 체계를 다 제쳐두고 갑작스럽게 텔레그램 방을 개설해서 말이다.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으면서 결국 포스코의 봄을 불러온 민주노조는 소수노조가 되고, 3000명을 넘어서던 조합원들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져 드넒은 공장 곳곳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적극적인 지원하에 더 많은 사람을 모은 기업노조와는 골프회동과 회식을 하면서도 회사는 소수인 민주노조에는 조합 활동을 할 차량도 제대로 내주지 않고 차별했다. 노동위원회는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판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2018년 가을에 도래한 봄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물어 갔다. 민주노조를 이끌던 포스코 노동자 대표들은 해고됐다. 부당해고라고 판정됐는데도 소송은 계속되고,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분노한 열혈 조합원들에게는 징계가 쏟아지고 있다. 통상대로라면 이 정도의 일은 징계위에서 시말서 감이지만 민주노조 조합원이니 중징계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얘기돼 신문 지면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바로 올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여전히 공장은 추운 겨울이고, 민주노조를 희망하는 포스코의 뜨거운 용광로를 지키는 노동자들에게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이 추위가 가득하다. 

가족이라서 일까? 이런 포스코식 민주노조 탄압 전략은 단지 원청 포스코 공장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 안팎의 수많은 하청 사용자에게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금속노조가 조직된 하청업체는 원청 포스코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고, 이를 근거로 하청 사장은 민주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망한다며 노동자들을 흔들어댄다.

노조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이 수개월 열심히 조합원을 모아 금속노조를 만들면 곧 기업노조가 생기고 노조 탈퇴 압박이 거세진다. 기업노조가 조합원을 모으는데 회사는 안팎의 지원을 다하고 이들이 대표노조가 되면 차별을 통해 금속노조를 고사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업노조들은 수시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위험한 용광로를 외면하고, 죽음 앞에서도 침묵한다.

포스코 회사가 생성하고 유통하는 가짜뉴스와 직원간 차별, 악성 비난은 마치 코로나의 그것처럼 포스코 노동자들을 갈라놓았고, 용광로의 뜨거움으로도 녹일 수 없는 기나긴 겨울을 계속 만들고 있다. 그것도 국내 최고라는 회사에서 누누이 가족이라고 말하던 자신의 직원들에게 말이다.

포스코라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생각해 본다. 개인이 소유한 기업이 아니라 한일 청구권자금이라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로 만들어진 국민 기업 포스코에서 왜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자들을 배척하는 것일까.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민주노조가 회사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차별과 혐오를 만들고 그곳 공동체를 깨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 직원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대우하는 건 상식이다. 민주적 직장 문화를 응원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많은 세계적 기업처럼 포스코가 최고(最高) 철강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 포스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것은 민주노조를 희망하는 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해 포스코 직원 모두를 얼어붙게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유대가 깨지고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곳에서 누가 희망을 이야기하고 발전을 논할 수 있는가.

최정우 회장이 가족이라 말한 모두, 즉 포스코그룹 임직원, 협력사, 고객사, 공급사의 목소리가 경청돼야 한다. 모두의 목소리가 존중 받고 평등하게 대우 받는 것에서 포스코의 새로운 도약이 시작돼야 한다고 감히 말해본다. 우리 모두에게도, 포스코 노동자들에게도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거리를 나가고, 노동자 권리를 외치며 광장에 함께 모여 춘투할 수 있는 진짜 봄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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