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우리의 연대와 이성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감염증이 전 세계적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연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인들이 이웃 나라 안위를 걱정하며 힘을 북돋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유럽의 여러 자전거 의류 회사는 옷을 만들지 않고 마스크 생산에 착수하기로 결정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위기 속 연대의 현장은 곳곳에 넘쳐난다. 

공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언론이 어느 때보다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의 역할을 묻는 질문이 많이 쏟아지는 이때 저널리즘 본령을 지키기는커녕 스스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실토’하는 모습은 한국 언론의 비극이다.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경기방송 사옥. 사진=손가영 기자

경기방송은 지난 16일 주주총회를 열어 부동산 임대업만 남기고 방송업 폐업을 결정했다. 개국 22년 만의 일이다. 경기방송 폐업에 대한 공식 입장은 외부세력 간섭에 따른 매출 급감이다. 경기방송은 현준호 전 총괄본부장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비하 발언이 폭로되고 경영과 편집 독립의 불투명 문제까지 불거졌다. 현 전 본부장 발언이 이슈가 됐지만 지역에선 경기방송 이사회와 경영진이 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면서 결국 폐업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번에 걸쳐 방송통신위원회 재허가 심사에서 경영 투명성 문제를 지적 받은 전력을 부끄러워해야 할 판에 폐업을 결정한 것은 방송사업자의 공적 책임을 내팽개치고 돈벌이에 나서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경기방송 개국 멤버였던 백승엽씨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권역 내 일종의 영업 대리점을 만들고, 지역 제휴사들이 광고 영업을 주 업무로 삼았고 이들이 경기방송 정규직이 됐다”고 밝혔다. 수익 극대화에 골몰했던 경기방송이 언론 흉내만 내고 ‘먹튀’했다는 비판이다.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이 부당해고로 다투다 숨진 이재학 PD의 진상조사위가 꾸려지자 쏟아낸 발언을 보면 놀랍도록 경기방송 사태와 닮아있다. 이 회장은 16일 임직원이 참석한 조회 시간에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에 대해선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되는 거냐”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출근해 광고 상황을 보니 작년 이달엔 6억원을 했는데 지금 3억원이더라. 이대로 가면 올해 청주에서 사업하겠느냐”라고 했다. 경기방송과 청주방송 모두 매출과 광고를 강조하면서 외부세력 탓에 경영 위기가 닥쳤다고 호소하는 꼴이다. 이들 경영진 입에서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은 말이 ‘시청자’와 ‘청취자’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 지난 2월14일 CJB청주방송 앞에서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충북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대책위 제공
▲ 지난 2월14일 CJB청주방송 앞에서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충북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대책위 제공

다행인 것은 이들 방송사를 돌려놓기 위한 움직임이다.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교통방송’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며 용역을 발주했다. 시민사회는 방송 공공성이 보장되는 공익 라디오 방송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언했다. 노동계는 청주방송을 향해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방송사 안에도 숱하게 많은 비정규직 문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부’세력이 연대해 다시금 방송(언론)의 역할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 본령을 지키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준호 전 총괄본부장 발언을 폭로한 뒤 해고를 당한 노광준 PD는 폐업 소식에 ‘우리가 꿈꾸는 방송국’을 이렇게 밝혔다. 

남의 기사와 보도자료 베끼지 않는 방송, 기자에게 광고 영업시키지 않는 방송, 재난에 혐오와 불신을 조장하지 않는 방송. 공무원보다 훨씬 청렴한 방송, 단독보다 정확을 중시하는 방송. 그리고 노 PD는 마지막에 “그래서 경기도민에게 자랑이 되는 방송”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