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협박을 통한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으로 불법거래해 검거된 조주빈(닉네임 ‘박사’)의 신상이 25일 공개됐다. 검경이 앞서 검거한 일부 범행 가담자들이 자칫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전해지고 있다. 26일자 아침신문 대다수는 조씨 사건을 다루며 처벌 가능한 가해자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유사 범죄를 막으려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등에 주목했다.

먼저 조씨가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애먼 유명인사들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에서 취재진 앞에 선 조씨는 손석희 JTBC 재표이사, 윤장현 전 광주시장, 김웅 프리랜서 기자에 사죄를 표했다. 경찰은 이 3명은 n번방 건과 전혀 상관 없는 별건의 사기 피해자들이라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피해자들한테 할 말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끝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1면에 “피해여성에 사과 한마디 없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조주빈은 미리 준비한 듯한 말만 남겼다. 여성 피해자들에겐 별다른 사과도 없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2면에 “피해여성에 사과는 뒷전…유명인 등쳐 미안하다는 조주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조씨 포토라인 장면을 다룬 언론사들은 이 같은 지적보다 조씨가 언급한 말의 내용에 대한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 3월26일자 동아일보 1면.
▲ 3월26일자 동아일보 1면.

일부 전문가들은 조씨가 ‘자기과시’, ‘범행 물타기’ 의도로 관련 발언을 했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게 그 의도에 화답한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이날 조선일보의 경우 1면에 “손석희, 조주빈 협박에 돈 건넸다”, 이어진 4면 기사로는 “손석희, 조주빈과 무슨일 있었길래…왜 신고 않고 돈 입금했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날 신문지면에서 가장 크게 실린 n번방 관련 기사들이다.

사건 관심이 높아지면서 피해자들이 ‘2차 가해’로 고통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겨레는 “조주빈의 성착취, 체포 한달 전에도 계속됐다”는 제목의 단독 보도에서 관련 문제를 지적했다. 신문 지면상으로는 2면에 “피해자들은 댓글 등 2차가해로 더 고통”이라는 제목으로 2차가해를 지적한 대목이 나뉘어 실렸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 댓글에 ‘피해 여성의 잘못 아니냐’, ‘당해도 싸다’는 등 댓글이 피해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겨레와 인터뷰했던 한 피해자도 “‘피해자가 처신을 잘했어야지’와 같은 시선 때문에 나서고 싶어도 너무 겁이 나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 사설(‘n번방 2차 피해’ 막을 책임, 우리 모두에게 있다)은 “지금 이 순간도 제대로 피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아주 일부지만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2차 가해도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미투나 성폭력 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반복되던 이런 현상이 더 이상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3월26일자 한겨레 2면.
▲ 3월26일자 한겨레 2면.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선 ‘기부할 테니 n번방 자료를 넘겨달라’는 게시글이 올라왔고,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한명은 SNS에 “내 딸이 지금 그 피해자라면 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다”고 올려 공분을 샀다. 한겨레는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피해자는 74명(미성년자 16명 포함)이지만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피해자 스스로 신고를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동안 영상을 유포할 것이란 협박에 신고할 엄두도 못 내고, 주소·이름까지 바꿔가며 숨죽여 지내야 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청와대 게시판에 수백만명이 서명할 정도로 가해자에게 쏟아졌던 분노만큼 피해자를 응원하고 보호하는 목소리가 온 사회에 퍼져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길”이라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3면에 “n번방 성범죄 재발 막으려면…공급·수요·유통채널까지 엄벌을”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일보는 “학계에선 행정ㆍ입법부가 오프라인에서의 신체적 성폭행을 더 중한 범죄라 여기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며 “법조계에선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수요자, 공급자, 유통채널까지 모두 처벌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지금도 불법촬영물을 소지하면 처벌하긴 하지만, 불법음란물이 더 이상 ‘책자’나 ‘다운로드’를 통해서만 유포되는 게 아닌 만큼 변화한 기술과 매체 특성을 고려해 ‘소지’및 ‘이용’의 개념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며 “디지털의 가장 큰 특성인 ‘유포’의 용이성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 3월26일자 한겨레 3면.
▲ 3월26일자 한겨레 3면.

경향신문 사설(‘n번방 수사’ 본격화, 처벌 대상 확대하고 기준도 강화해야)은 “수사당국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첫째, 익명성·보안성이 강화된 디지털기술 속으로 숨어드는 유사 범죄자들을 계속 찾아내는 일이다. (중략) 둘째, 2차 피해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가장 중요한 것은 법리를 면밀히 검토하고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은 조씨 사건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추가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사 사건에 내린 처분들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사이버 성범죄 관련 처벌법을 따로 제정해 강력 처벌하자는 취지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엊그제 하루 만에 10만명이 동의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뽑기는커녕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수사 당국은 엄중히 새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신문은 한 제보자 인터뷰(“조주빈? 갓갓? 공짜 영상 뿌린 ‘똥집튀김’이 실은 더 위험”)를 통해 이번에 검거된 조씨, n번방 창시자로 알려진 ‘갓갓’ 외에도 주목해야 할 이들이 여럿이라 전했다. 지난해 약 6개월간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동영상 단체방을 운영하다 경찰에 적발된 그는 “닉네임 ‘똥집튀김’은 대구사람으로 현지 여대생 자취방을 불법 촬영해 뿌렸다. 또 성매매 여성들과의 성행위 장면을 촬영해 단체방에 무료로 공유했다”며 “순전히 자기 과시용으로 무료로 배포해 흔적을 찾기가 힘들고 검거도 어려울 것”이라 주장했다.

다음은 26일자 주요 일간지 1면의 n번방 사건 기사다.

경향신문: 조주빈, 피해자에 사과 없이 “악마의 삶 멈춰줘 감사”
동아일보: 피해여성에 사과 한마디 없었다
서울신문: “조주빈? 갓갓? 공짜 영상 뿌린 ‘똥집튀김’이 실은 더 위험”
세계일보: 조주빈 사기에 손석희·윤장현도 돈 뜯겼다
조선일보: 손석희, 조주빈 협박에 돈 건넸다
한겨레: 조주빈의 성착취, 체포 한달전에도 계속됐다
한국일보: “性착취물 보며 미안함 없어다” 뒤틀린 그놈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