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큰 주목을 받는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모든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선별적 현금수당이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잘못된 명명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기본소득 연구자로서 세심하게 잘 설계된 기본소득제는 분명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필자가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심리를 가진 이유는 기본소득이란 명칭으로 인해 불가피한 여러 논란이 있고, 상당히 지난하고도 충분한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대책을 적시에 실행하는데 혹여나 기본소득 논쟁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란 우려도 했다.

필자의 걱정과는 달리 재난 기본소득과 선별적 재난 대책은 별도로 논의되고 있으며 잘못된 명명이긴 했으나 지자체 차원의 선별적 현금수당이 재난 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신속하게 결정되는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또한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의 직설적 표현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가 효과적으로 해소되는 현상도 목도하고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월2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월2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도청

이참에 처음 ‘재난 기본소득’을 명명한 사람으로서 제안하고 싶다. 기본소득의 5가지 요건 중 ‘정기성’을 제외한 4가지(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현금성)를 충족하면 재난 기본소득이라 부르고, 선별적인 현금성 수당은 ‘재난수당’으로 구분했으면 한다(이 개념과는 별도로 필자는 기본소득의 5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재난 기본소득이 가능하단 입장이다). 

또한 소득세 등 국세의 조세 행정을 담당하는 중앙정부가 재난 기본소득의 검토를 전담하고, 읍면동 주민센터를 관할하며 선별 복지에 강점이 있는 지자체는 ‘재난수당’을 적극 검토하고 실행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조세 행정의 권한이 제한된 지방정부는 기본소득을 중앙정부에 요구할 순 있어도, 기본소득을 실행하는 주체가 될 순 없다.

기본소득 논쟁이 지난할 것이란 예상을 한 이유는 만만찮은 오해 때문이다. 대표적 오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정부 재정을 왜 모두에게 주는가’다. 진보와 보수는 복지 규모에 대한 입장이 다를 뿐이지, 누구도 선별 복지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개개인에겐 선별복지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기본소득의 재원을 확보하려면 세금 제도 개편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법 개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만일 세법 체계가 완비된다면 누진적인 세금제도와 결합된 기본소득은 선별복지와 동일한 효과를 지니면서도 훨씬 실행하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 

이렇게 따져보면 된다. 정부가 지원할 어려운 사람들을 선별하는 게 쉬울까 아니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되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적게 과세하는 게 용이할까. 선별 작업은 주민센터, 고용센터 등을 비롯해 각종 행정기관에서 신청을 받고, 심사를 진행하며 나중에 감사의 대상이지만, 과세 행정은 소득 자료만 제대로 신고된다면 일괄적으로 손쉽게 이뤄진다. 김경수 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선별 회수(과세)’가 ‘선별 수당(복지)’보다 훨씬 쉽다.

일부 진보 진영에선 기본소득이 사회복지를 구축해 모든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이는 일부 보수 진영에서 모든 복지를 통폐합하는 ‘과격한 기본소득’을 주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오해에 가깝다. 대부분 기본소득 연구자들은 교육, 의료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가 시장 실패 영역에 있어 원칙적으로 기본소득과 대체 관계가 아니란 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정희 군산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필수 사회서비스는 별도의 원리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수 없’는 관계다. 게다가 한국처럼 OECD 국가들 중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하위권인 국가에서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증세의 수단에 가깝지, 복지를 줄이는 수단이 되기가 어렵다. 

무상급식 논란에서도 불거진 ‘왜 부자에게도 주느냐’는 고전적인 의문에 대해선 명쾌한 답변이 있다. 이재명 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를 이중으로 차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 지폐 자료화면. 사진=gettyimagesbank
▲ 지폐 자료화면. 사진=gettyimagesbank

그렇다면 이런 오해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기본소득 사회로 성큼 다가설 수 있을까. 여기서부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누진적이면서 단순하고, 예외 없이 모든 소득에 과세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이해관계가 강고하게 작동하고, 누진적 세제와 기본소득으로 이득을 얻는 80% 이상의 계층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투표하기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부자 증세였지만 중산층의 분노로 보도됐던 2015년 연말정산 파동, 더 많이 주고 적게 과세했지만 ‘뿔난 부모들’로 보도됐던 2020년의 아동 세액공제 제외 등 논란에서 보듯 사람들은 받는 것보다 내는 것에 더 예민하고, 언론도 복지나 수당보단 ‘세금’에 주목한다. 언론이 사안의 양면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렌즈가 돼야 사람들도 진정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 다시금 생산적 토론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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