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의 신상이 공개된 가운데 전국언론노조는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등의 긴급 지침을 밝혔다. 

이 사건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피해자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은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개설해 성착취 영상을 불법으로 제작한 뒤 돈을 받고 배포한 성범죄 사건이다. ‘N번방’ 가운데 ‘박사방’ 운영자가 지난 19일 경찰에 붙잡히면서 사회적 공분과 함께 언론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24일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할 것 △범행의 구체적 내용을 제목으로 달지 말 것 △가해자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할 것 △피해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표현을 하지 말 것 △성범죄자가 비정상적 특정인으로 보이도록 보도하지 말 것 등을 당부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보도와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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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성평등위와 민실위는 “인터넷 트래픽을 위한 낚시성 기사 생산을 지양하고, 경쟁적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특히 “피해자 얼굴, 이름, 나이, 거주지 등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범행의 구체적 내용을 제목으로 달지 말자”며 “장소나 구체적 행위 등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제목으로 관심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내용에서도 충격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범죄 행위를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해자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남성 고유의 성적 충동’ 등 표현으로 남성이 본능을 억제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몹쓸 짓’, ‘검은 손’ 등 가해 행위에 대한 모호한 표현으로 인권 침해 문제를 가볍게 인식하게 하거나 행위 심각성을 희석시켜선 안 된다는 것.

성범죄를 비정상적 특정인에 의한 예외 사건처럼 보이지 않게 보도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짐승’, ‘늑대’, ‘악마’ 같은 표현에 언론노조는 “이런 용어는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라며 “성범죄는 비정상적 특정인에 의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와 민실위는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을 알리는 보도와 구조 개선을 위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기기나 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이라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 피해자 보호와 지원 과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지침은 여성가족부의 ‘2018 성희롱 성폭력 보도수첩’, ‘신문윤리실천요강’,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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