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역사 고교교사 A씨는 EBS 등을 상대로 EBS 수능교재의 무단전재 의혹을 제기했다. A씨가 학교 수업을 위해 직접 번역해 만든 교재를 EBS 수능교재에서 동의없이 전재해 이를 EBS 측에 알렸지만 시정하지 않자 결국 소송까지 갔다고 주장했다. A씨가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이유로 EBS라는 교육공영방송사의 무단전재 자체도 문제지만 EBS 수능교재가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A씨가 사료를 직접 번역해 학생들을 가르친 이유는 암기 위주의 입시 분위기에도 역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몇몇 교과서에서 (내가) 번역한 사료를 인용하며 그 밑에 질문을 함께 적어 고민할 거리를 던졌다”며 “그런데 EBS 수능교재에서 사료를 무단전재한 이후 학생들이 그 사료마저 외우고 있더라”라고 한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70%를 EBS에서 내는 정책 이후 학생들은 EBS 교재를 암기하는 분위기다. 역사 과목에서는 사료를 외우고, 심지어 EBS 수능교재 영어지문 한글번역본을 달달 외우는 경우까지 있다고 A씨는 전했다. 

정부는 2004년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EBS 교재-수능연계 정책을 발표했고, 2011학년도(2010년)부터 연계율을 70%로 강화했다. 

▲ 최근 진행한 2021학년도 EBS 수능연계교재 표지 설문. 사진=EBS
▲ 최근 진행한 2021학년도 EBS 수능연계교재 표지 설문. 사진=EBS

 

EBS는 수능연계정책으로 사교육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2012년과 2013년 EBS는 각각 사교육비 경감효과가 1조738억원, 95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같은해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산한 사교육비 경감효과는 각각 1589억원, 3759억원으로 서로 1조원 이상 차이를 보인다. EBS는 24일 미디어오늘에 “2018년 기준 사교육지 절감효과가 연간 1조2000억원”이라며 “2013년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 통계청 조사 1인당 사교육비 조사 결과. 자료=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 통계청 조사 1인당 사교육비 조사 결과. 자료=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통계청 사교육비 규모 조사 결과를 보면 2001년과 비교할 때 연계 이후인 2008년 사교육비 규모는 거의 2배 증가했다. 학생 1인당 많게는 EBS 교재 40권 넘게 구매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사교육비가 줄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비영리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EBS 수능방송 참여자의 사교육비가 미참여자의 그것보다 더 많다고 지적했다. 

EBS는 한국교육개발원 2018년 보고서를 인용하며 미디어오늘에 “사교육비 경감효과가 가장 큰 정책 1위”라며 “사교육 감소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사교육비 증가를 그만큼 억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연계정책을 축소할 경우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EBS교재 보다 비싼 참고서를 사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지난 2018년 2월 EBS 수능연계정책의 위헌성을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는데 결정문 중엔 “EBS 수능연계로 사교육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다”, “학력이 낮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지역별·학력별 편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등의 내용도 있다. 

EBS 수능교재가 공교육 정상화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EBS 수능교재가 흡사 ‘국정교과서’처럼 기능하기 때문에 공교육 획일화가 발생하고, 출판시장 역시 시장경제 논리가 아니라 사실상 EBS의 독식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를 보면 2000종이 넘던 학습참고서 수가 수능연계율을 70%로 올린 수능이 끝나자 2012년부터 1300종 수준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해당 협회의 출판정책연구소는 지난해 9월 연구보고서에서 EBS 상업출판의 영향과 필요한 정책방향 제시했다. 해당 연구소에선 학생들이 EBS 문제집 암기와 문제풀이 연습 등 주입식 교육에 치중해 획일화·교육의 질 훼손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EBS가 출판시장을 독점화해 시장 불공정성이 커진 점도 지적했다. 

반면 EBS 측은 “20개 내외 주요 교과서와 참고서 출판사들 중 천재‥미래엔 등 메이저 출판사 5개사 매출이 약 80%를 차지한다”며 “출판사들 역시 사교육 기업들로 사교육 활성화를 통한 참고서 매출이 목표”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EBS 출판물의 지속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BS와 경쟁관계에 있는 출판사의 이해관계 싸움으로 볼 여지도 있다. 

▲ 학습참고서 종수 변화. 자료=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 학습참고서 종수 변화. 자료=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매년 EBS 수능교재에서 오류가 발견된 사실도 문제다.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선 최근 4년간 교재 오류가 900건에 달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EBS 교재 검증절차가 부실했다는 증거인데 출판시장에서 EBS의 우월적 지위 탓에 대책 마련조차 없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EBS 측은 “교과서보다 오류가 적고 완성도가 높은 교재”라고 반박했다. 

EBS 수능교재의 질 저하는 과거 교육부도 인정했다. 2015년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EBS 소외계층을 위한다는 EBS 강의 취지가 변질됐다는 취지로 “사교육화되고 교과서와 동떨어져가고 있다”며 “연계율을 70%에 고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연계율은 유지했지만 EBS 수능교재 문제는 이미 곪아 터졌다는 해석이다. 

EBS 고교 교재 매출은 2004년 약 528억원이었지만 2014년 840억원까지 올랐다. 2018년 EBS 연지를 보면 교재판매사업을 담당하는 출판사업부를 “안정적인 매출실적을 담보하는 캐쉬카우 부서”라고 소개했다. 

EBS 입장에선 출판사업에서 매출을 계속 올려야 한다. 다만 외부의 비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EBS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EBS 정책기획본부장은 이사들에게 “타 출판사에 비해 EBS 교재 가격이 낮기 때문에 합리적 수준의 정가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기존 출판사들이 EBS가 출판시장의 다른영역까지 확대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면밀하게 팔로우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유시춘 이사장은 “EBS 수능연계율까지 하향조정되면 우리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재출판 수익도 급격히 감소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022학년도부터 수능 연계율을 50%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70%에서 50%로 연계율을 줄인다고 EBS의 상업출판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출판정책연구소는 수능연계 정책을 폐기하고 EBS가 초중등 콘텐츠와 공공성 회복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연계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민간출판사가 참여하는 ‘수능연계 교재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합당한 절차로 수능연계 교재를 선정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또 해당 연구소는 EBS가 유아·초등·중등 교육콘텐츠도 과하게 상업화했다고 비판했다. 한 예로 ‘EBS 중학’ 사이트 ‘프리미엄 강좌’에는 10만원 넘는 강의도 판매 중이다. 

A씨 역시 수능연계 정책 폐기를 주장하며 “미국 등 교과서 자유발행제 국가에선 좋은 교재를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데 한국은 일단 EBS부터 봐야하고 개인이 교재를 열심히 만들어도 EBS가 이렇게 무단전재하는 식이면 전반적으로 교재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EBS 측은 “최근 사교육비 증가는 EBS 연계정책의 약화에 따른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연계정책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학생·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파고드는 사교육 업계의 마케팅”이라고 주장했다. 사교육업계에서 ‘EBS만으로 입시준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는 설명이다. 

영국 BBC, 미국 PBS 등 해외 교육공영방송에선 동영상과 체험형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며 교재 판매가 아닌 독서 진흥에 주력하고 있다고 이 연구소는 전했다. EBS가 독서진흥과 교육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고 출판사업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련기사 : EBS 수능교재, 현직교사 교재 무단전재했나]

※ 참고자료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공공기관 상업출판이 출판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정책 과제 제안 – EBS 상업출판 문제를 중심으로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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