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25명의 글을 쓴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태어난 시기와 삶의 터전, 쓴 글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돈을 벌려고 글을 썼고 취미로 글을 쓴 여성은 없었다.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크게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평생에 걸쳐 여성이 글을 쓴다는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했다. 이들은 글을 쓰며 이 아픔을 치유하고 조금씩 극복해 갔다.

▲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장영은 지음 / 민음사 펴냄
▲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장영은 지음 / 민음사 펴냄

나단 고디머는 19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리투아니아 출신 아버지와 영국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단 고디머는 당연히 백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단이 흑인으로 태어났다면 누릴 수 없었던 평범한 일상을 부끄러워했다. 나단이 다니던 수도원 학교는 모두 백인이었고 토요일 오후 극장을 가도 모두 백인뿐이었다. 나단은 흑인과 백인 모두 같은 사람인데 이런 모순된 제도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인간이 피폐해져 가는 걸 알고 분노했다. 그녀는 반드시 작가가 돼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겠다고 결심했다. 

나단은 극단적 인종차별 제도가 지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는 이상 문학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1949년 인종차별 제도가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불안과 공포만을 야기할 뿐이라는 인식을 담은 단편소설 ‘얼굴을 맞대고’를 발표하며 남아공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뛰어 든다. 그녀는 백인의 위치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비판할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입지와 특권을 변명하지 않았다. 실제로 백인 작가는 흑인의 상황에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설득력 있는 작품을 쓸 수도 없다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그녀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 또한 아파르트헤이트의 폐해라고 생각했다. 나단은 작품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릴 방법을 고심했고 인간이 지니는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해 이를 소설로 써내려갔다.

▲ 나단 고디머 (Nadine Gordimer). 사진=위키백과
▲ 나단 고디머 (Nadine Gordimer). 사진=위키백과

평생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글을 썼던 나딘 고디머는 1991년 노벨 문학상을 탔는데 이로부터 3년 뒤 1994년에 아파르트헤이트가 남아공에서 종식됐다. 하지만 제도가 사라진 뒤 그녀는 써야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는데 아파르트헤이트 제도가 사라지자 남아공에선 누적됐던 사회적 갈등이 폭발했다. 그녀는 빈곤, 범죄, 에이즈, 난민 문제에도 적극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다. 그녀의 글쓰기는 남아공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나단 고디머는 2014년 91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검열 받고 도청 당하고 보안 경찰의 감시에 시달렸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세상은 분명 살기 좋아졌다며 인간이 노력하는 한 조금씩이나마 역사는 발전한다고 믿었다. 

▲ 박경리 작가. 사진=위키백과
▲ 박경리 작가. 사진=위키백과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는 글을 쓰며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을 달래며 살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 학창시절 내내 부끄러움을 달고 살았던 어린 시절,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고통, 남성 작가 중심의 한국 문단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신당했던 작가 박경리. 그녀는 인기나 출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책 읽고 글 쓰며 억울하고 혹독했던 시간을 견뎌왔다. 그녀는 살기 위해 글을 썼고 글을 쓰며 스스로 위로받았다.

글쓰기로 자신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여성들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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