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처제와 함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전국민적인 구설에 올랐다. 모텔이나 노래방을 여러 번 방문한 확진자들은 ‘처신’에 대한 비난과 추측이 돌았다. 실명 등 신상 정보가 공개돼 인터넷에 유포되고, 허위정보까지 퍼졌다.

확진자 동선 공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확진자가 된다는 건 자신의 생활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의미다. 지자체별 확진자 동선 공개 범위가 비교되자 경쟁적으로 자세한 정보를 내세우면서 개인의 신상이 드러날 수 있는 정보가 점점 더 늘었다.

외신의 눈에도 확진자 성별·나이 정보와 동선 공개는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6일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 한국의 방역 경보가 사생활을 노출시킨다’ 기사를 냈다. 가디언은 동선 공개조치에서 비롯된 △확진자 성희롱 수업 사실 공개 △두 확진자의 혼외관계 추측 △확진자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급증 등 사례를 들며 “당초 공공 건강서비스를 의도했던 문자 경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몇몇 사례에서는 혼외관계에 대한 추측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과도한 확진자 사생활 공개 관련 성명’을 내는 등 비판이 나오자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는 14일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준을 세웠다. 접촉자가 있을 때만 방문장소와 이동수단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확진자의 거주지 세부 주소나 직장명 등 개인 특정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게 골자다.

▲ 지난 2월20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 인근에서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월20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 인근에서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방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 기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다수 보건의료·정보인권 전문가들은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특정인을 지칭할 정보는 가능한 한 공개하지 않는 게 맞다. 애초 성별과 나이를 밝힐 필요도 없었다”며 “이제라도 기준을 마련한 점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도 “기존에는 지자체마다 다르게 운용해왔는데 의견수렴을 해 개인정보 관련 사항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건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가이드라인 도입 후 일부 지자체가 상호를 가리거나 지하철을 ‘도시철도’로만 표기하자 뉴스1등 일부 언론은 가이드라인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의 표기는 가이드라인과는 무관하다. 가이드라인은 감염 우려가 있다면 노선번호, 호선 호차 번호, 탑승지 및 탑승일시, 하차지 및 하차일시를 공개토록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지자체의 해석이 문제였다.

그러나 가이드라인 도입 후에도 여전히 확진자별 경로가 공개되면서 개인정보 침해 문제는 잠재돼 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메르스 때 의료기관을 통해 전파됐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알 권리가 강력하게 요구됐다. 그래서 코로나19 국면에서 상세한 정보 공개를 모범사례처럼 여기는데, 지금처럼 확진자 개인별 스토리를 만들어 공개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 비난을 받는 것을 더욱 두려워했다. 개인정보보호 논쟁과 별개로 자세한 동선 공개가 확진자의 동선 공개를 꺼리게 만들어 방역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가이드라인 마련 후에도 개인의 이동 경로가 나오고 있어 이 같은 우려는 유효하다.

특히 소수자와 약자에게 이 같은 정보 유포는 치명적일 수 있다. ‘게이바’로 알려진 곳에 방문한 사실이 알려진 한 확진자 사례가 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사견을 전제하고 “‘나도 이런식으로 노출될 수 있겠구나’라며 자신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고 정체성이 드러날 거라는 우려가 있다. 특히 HIV 환자의 경우 관련 치료를 받았거나 모임에 가는 등 자기 질병정보나 정체성이 알려지는 데 두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김명희 연구원은 개선 방안으로 △개인의 동선을 이어붙이는 대신 개별 사례의 시간, 장소만 표기 △‘에어로빅 4시 수업 참여’처럼 대상이 한정된 경우 함께 있었던 이들에게만 통보 △마스크를 낀 상태에서 지하철을 타는 등 감염 우려가 없을 경우 해당 장소와 교통수단을 공개하지 않을 것 등을 주문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병일 활동가는 “확진자별 동선이 아니라 장소, 특정 시간대의 누적 데이터만 제공해도 되지 않을까한다. 지자체별로 1~2명만 확진자가 발생하면 누적 데이터만 봐도 개인 경로가 자세하게 드러날 위험성이 있는데 이 경우 지자체 범위를 넓히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석균 대표는 “역학조사 결과를 재가공해 확진자 정보를 지우는 게 바람직할 수 있지만, 개별 지자체 행정력을 넘어서거나 복잡해질 수 있다. 구역 내 확진자가 1명일 땐 의미가 없기도 하다”며 “신속성·투명성과 개인정보 보호의 조화를 목표로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자체들은 확진자 확인 후 5시간 내에 동선을 공개하고 있다. 확진자에 숫자를 붙이고 동선을 이어 붙인 역학조사 결과를 재가공하지 않고 공개하는 게 빠르고 효율적인 전달 방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11일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군자차량기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1일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군자차량기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논란이 불거지는 데는 언론과 정부가 동선 공개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병일 활동가는 “동선을 왜 공개하는지 그 목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역을 했기 때문에 그 장소 자체는 더 안전하다는 등 오해를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명희 연구원은 “동선이 도중에 하나가 빠졌다는 이유로 지적하거나 자세하지 않다며 문제제기하는 식의 기사는 문제가 있다. 무조건 투명성만 요구하는 게 옳지는 않다”고 했다.

동선공개 자체가 자극적인 기사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인사이트는 확진자 동선에서 성적 소수자임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부각하는 기사를 썼다. 가디언은 6일 기사에서 “한국의 미디어가 그들(확진자)의 동태에 주시하면서, 시민들은 그들의 사적인 삶이 드러나 있는 동안 공포와 흥미에 섞여 바라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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