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된 20대 국회가 ‘최악의 게으른 국회’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15일 기준 발의된 법안 2만3974건 중 처리된 법안은 불과 약 36%(8556건)다. 정부안 등을 뺀 의원발의 법안은 19대 국회(1만5444건) 대비 약 40% 늘었으나, 그만큼 많은 법안이 버려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법안의 처리 과정보다 법안이 발의됐을 당시에 주목하는 언론의 속성도 영향을 미친 결과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5월까지다. 4·15 총선 전 마지막 본회의를 끝냈지만 임기 마지막까지 논의가 필요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지난 4년 미디어·문화 부문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 의원들에게 미완의 과제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 제기된 적폐청산 요구의 한 물결은 정치권력이 자행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시작됐다. 이후 2018년을 기점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터져나온 ‘미투’ 운동까지 확산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취약한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는데, 관련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표로 심판하겠다’는 문화예술계 구호는 메아리처럼 맴돌 뿐이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은 법안이 왜 폐기될 위기에 놓였나.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16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국회에 돌아왔다. 20대 국회 후반기에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복지·처우 관련 법안을 주로 내놨는데 계기가 있나.

“국회에 돌아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배정됐다. 초선이었던 17대 국회 때부터 환경노동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만 활동해 온 나로서는 문화예술·체육·관광에 전문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전직 노동부 장관인 만큼 문화예술 노동자의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고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노동조건이나 갑을관계를 살펴보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일례로 예술인들의 불공정계약 관련 신고가 매년 늘어나는데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한 사건은 5년간 단 한 건에 불과했고 예술가들과 사업자 간 서면계약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국감이 끝나자마자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12월 통과됐다. 프리랜서 문화예술인이 예술단체나 사업자와 체결한 용역계약이 서면으로 적법하게 체결됐는지 여부를 문체부에서 강제로 조사하고 위반 시 벌금과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해 4월 대표발의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인들의 숙원이기도 하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정부의 위헌적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시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피해사실 조사와 더불어 관련 공무원에 대한 징계조치와 후속조치를 진행했다. 하지만 예술인들께서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문화예술인들의 요청으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당에 문화예술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저를 위원장으로 선임해서 문화예술인 요구를 담은 후속조치의 핵심인 ‘예술인의 권리 및 지위 보장법’을 발의했다. 법안 준비 과정에서 문화예술인, 관련 전문가 여러분과 수차례 협의를 진행했고 의견을 듣는 입법공청회를 거쳤다.

제출된 법률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을 검열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예술 활동의 성과를 전파하는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문체부 소속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와 예술인 성희롱·성폭력피해구제위원회를 두고 예술인 보호관을 통해 예술인권리침해행위와 성희롱·성폭력행위 사건을 담당하도록 했다.”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주 의원실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주 의원실

-하지만 정작 법안 처리가 안 되고 있다. 여야 간 쟁점 법안도 아닌데 왜 진척이 없나.

“우선 아직도 법안이 문체위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어 법안 제정을 위해 애써주신 문화예술인 여러분께 매우 죄송스럽다. 지난해 11월 법안이 전체회의에 상정됐으나 여야 간 합의가 되지 않아 법안소위가 열리지 못했다. 올해 2월 국회에서도 미래통합당의 일정 협의 거부로 열리지 못했다. 아직 20대 국회 임기가 남은 만큼 법안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밖에 처리되지 못해서 아쉬운 법안은.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원천 기금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이 박근혜 정부에서 고갈 위기에 처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반예산에서 전입 받고 있다. 그러나 문예기금의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문예기금 3법(관광진흥법·복권법·문화예술진흥법)’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돼 관광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문예기금으로 직접 전입이 이뤄져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정부가 안정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블랙리스트’, ‘미투’ 등 문화예술인들의 고발·운동은 정치권에서도 공감해 온 이슈다. 그럼에도 제도적 보완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후속조치로써 제도적 보완은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법률안 제·개정과 관련자 처벌, 정책변화 등이 있는데 국회 문체위의 입법 지연으로 법안 처리가 안되고 있어 송구스럽다. 블랙리스트 관련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예술인들이 보기에 충분치 않은 점이 있고, 문체부에서 ‘블랙리스트 피해자 명예 회복과 사회적 기억 사업’을 비롯해 80여개의 과제를 설정해 추진하고 있지만 예술인들께 정책 변화가 피부로 와닿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주 의원실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영주 의원실

-체육계 출신인 만큼 체육계 ‘미투’, 그로 인해 불거진 ‘엘리트 체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왔다.

“고교와 실업 농구팀 선수 출신이다. 문체위 첫 국정감사에서 체육계의 성폭행·폭행 가해자들이 징계를 받았음에도 재취업해 여전히 체육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한체육회를 통해 각 경기단체의 징계와 재취업 자료를 제출받아 아예 백서를 만들었다. 국정감사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는데 2018년 초 심석희 선수의 ‘미투’를 계기로 제가 공개했던 자료가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1년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각 종목별 단체가 아닌 독립조사기관으로서의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체육계 성폭력·폭력 신고 및 징계를 위한 관련 법률이 통과되지 못해 매우 아쉽다.”

-2016년 당내 공정언론실현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주로 종합편성채널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 당 최고위원에 당선돼 대선을 앞두고 종편을 비롯한 언론의 공정성 문제를 다루기 위한 특위를 맡게 됐다. 종편은 2014년 사회적 책무를 지키고 공정성을 높이라는 조건으로 재승인을 받았는데 일부 종편은 여전히 오보와 막말·편파방송으로 지탄을 받고 있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의 재승인 심사를 엄격히 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만큼 올해 재승인 심사가 요식행위로 전락하지 않도록 심사 기준 마련과 심사위원 선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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