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위원장 강상현)가 급기야 대통령과 영부인 관련 ‘허위조작정보’를 심의하고 시정요구 조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방역 활동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삭제 근거는 정보통신심의규정 ‘사회질서 혼란’ 조항이다. 이를 두고 “해당 조항으로 심의하는 건 적절치 않으며 전 정권과 다를 바 없는 심의”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1월30일부터 3월16일까지 코로나19 관련 ‘허위 조작정보’ 350건을 심의했다. 이 중 접속차단 30건, 삭제 95건 등 모두 125건에 대한 시정요구조치를 의결했다. 모두 ‘사회질서 혼란’을 이유로 게시글을 접속차단 또는 삭제했다.

▲아래는 문재인 대통령이 1월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반대로 한 것처럼 조작된 사진. 청와대는 해당 사진이 허위조작 정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아래는 문재인 대통령이 1월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반대로 한 것처럼 조작된 사진. 청와대는 해당 사진이 허위조작 정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방통심의위는 지난 4일 주 2회 운영하던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를 주 3회로 확대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통신소위는 ‘긴급심의’로 이뤄졌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일부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며 심의를 요청하자, 통신소위가 긴급심의를 열고 게시글 13건에 대한 시정요구조치를 의결했다. 이날 심의는 기자나 외부에 일정이 미리 공개되지도 않았다.

이에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는 지난 9일 “위원회가 코로나19 관련 사회혼란 야기 정보 심의를 강화하기 위해 통신소위를 기존 주 2회에서 주 3회로 확대했다”고 짚은 뒤 “‘사회 혼란’ 조항은 상위 법률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어떤 정보가 ‘사회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점 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해당 조항으로 ‘시정요구’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보를 거짓으로 판단한 이유와 사회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기준 및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방통심의위지부최종선)는 지난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성명서를 게시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전국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방통심의위지부최종선)는 지난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성명서를 게시했다. 사진=미디어오늘

‘대통령’ ‘영부인’ 관련 게시글이 코로나 방역 활동 방해?

논란은 2주 차 ‘긴급심의’ 때도 있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 왼손 경례 사진 게시글 13건을 시정요구 조치했다. 당시 심의위원들은 “사회혼란 조항이 문제라는 걸 인정하지만, 현재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점을 고려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원인은 중수본이었다. 심의위원들은 제재수위 결정에 앞서 통신자문특별위원회(통신특위·위원장 원용진 교수)에 자문을 요청했다. 통신특위 위원 9인 중 8인이 의견을 냈고, 6인은 ‘시정요구’를 2인은 ‘해당 없음’을 주장했다.

특위 위원 6인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위험을 초래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모았다. ‘시정요구’ 이유로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방역 책임자인 대통령 권위를 훼손할 의도를 가진 게시글인 점 △공공성이나 공익의 목적이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반면 특위 위원 2인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불합리한 공권력 개입”이라며 비판했다. ‘해당 없음’ 이유로는 △해당 사진이 코로나19 감염 상황과는 무관한 점 △대통령 이미지 사진이 사회 혼란을 야기할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지난 11일에 이어 12일 방통심의위 통신 소위는 같은 이유로 ‘김정숙 여사는 일본산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주장한 게시글 1건도 삭제했다. 심의위원들은 “대통령이나 영부인은 공인이다. 충분히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도 “표현의 자유는 위기 국면에서 국민을 분열하는데 추구되면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중랑구 동원전통종합시장에서 한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이날 착용한 김정숙 여사 마스크가 ‘일본산 코와(Kowa) 3차원 마스크다. 저렴한 일회용 마스크처럼 보이지만, 3M이나 KF94 마스크처럼 얼굴에 자국이 남지 않는 마스크’라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마스크는 베트남에서 만든 한국기업 마스크였다. ⓒ 연합뉴스
▲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중랑구 동원전통종합시장에서 한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이날 착용한 김정숙 여사 마스크가 ‘일본산 코와(Kowa) 3차원 마스크다. 저렴한 일회용 마스크처럼 보이지만, 3M이나 KF94 마스크처럼 얼굴에 자국이 남지 않는 마스크’라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해당 마스크는 베트남에서 만든 한국기업 마스크였다. ⓒ 연합뉴스

그러나 당장 삭제한 허위조작정보들이 코로나 방역 활동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오픈넷은 “대통령과 영부인 관련 허위정보가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국민에게 어떤 중대한 혼란이나 위험을 야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게시글들이 방역 활동을 방해하고 있나? 해당 게시물은 중수본이 방통심의위에 삭제를 요청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대통령 심기 보호를 위한 ‘무리한 심의’였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픈넷은 “‘사회혼란’ 규정을 이용해 대통령 명예훼손성 정보를 심의했다. 이전 정부 때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비판해왔던 행태를 4기 방통심의위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향후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성 글도 제3자 요청 혹은 방통심의위 인지에 따라 ‘사회혼란’으로 시정조치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심의위도 ‘사회혼란’을 이유로 음모론· 정부 비판성 게시물을 ‘시정요구’한 바 있다.

▲TV조선 ‘뉴스퍼레이드’는 지난 1월31일 “[단독] 감염병 대응 예산…올해 90억 ‘삭감’”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해당 리포트는 정부 감염병 예산이 늘어났는데 90억원 깎였다고 보도했다. 사진=TV조선 ‘뉴스퍼레이드’ 보도화면 갈무리.
▲TV조선 ‘뉴스퍼레이드’는 지난 1월31일 “[단독] 감염병 대응 예산…올해 90억 ‘삭감’”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해당 리포트는 정부 감염병 예산이 늘어났는데 90억원 깎였다고 보도했다. 사진=TV조선 ‘뉴스퍼레이드’ 보도화면 갈무리.

코로나19 관련 심의는 인터넷 게시글뿐만 아니다.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 역시 관련 콘텐츠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방송소위는 지난 9일 코로나19 관련 보도를 하면서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한 채널A·TV조선이 방송심의규정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며 각각 법정제재 ‘주의’를 확정했다. 지난 2015년 발생했던 메르스 감염병 관련 방송심의는 총 3건이었는데 이 때도 방송심의 규정 ‘객관성’ 위반으로 각각 의견제시, 주의, 경고 등의 조치를 받았다. 이 중 법정제재 ‘경고’를 받은 YTN은 삼성서울병원 의사이자 35번째 메르스 환자인 박 아무개씨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냈으나 오보를 낸 경우였다.

코로나19처럼 감염병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객관성’ 조항이 아닌 명확한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 방송심의 규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송심의 규정 중 ‘재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 조항을 살펴봐야 한다.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입법조사관은 “이 규정은 자연재해 및 사회 재난, 민방위 사태를 재난으로 규정한다. 감염병이라는 특수한 재난에 적용하기에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다소 일반적이다”며 “감염병 관련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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