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된 20대 국회가 ‘최악의 게으른 국회’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15일 기준 발의된 법안 2만3974건 중 처리된 법안은 불과 약 36%(8556건)다. 정부안 등을 뺀 의원발의 법안은 19대 국회(1만5444건) 대비 약 40% 늘었으나, 그만큼 많은 법안이 버려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법안의 처리 과정보다 법안이 발의됐을 당시에 주목하는 언론의 속성도 영향을 미친 결과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5월까지다. 4·15 총선 전 마지막 본회의를 끝냈지만 임기 마지막까지 논의가 필요한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지난 4년 미디어·문화 부문에 꾸준히 목소리를 낸 의원들에게 미완의 과제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20대 국회 후반기 경제매체 비판기사의 단골 등장인물로는 단연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꼽힌다. 개인정보 상업적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데이터 3법’,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완화를 위한 인터넷전문은행법 등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때마다 반대했다는 이유로 ‘상원 갑질’이란 비난이 따라 붙었다. 특히 여야가 밀어붙인 데이터 3법을 끝까지 반대하는 과정에서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모 경제매체 표현처럼 그는 어쩌다 ‘빌런’이 되었을까.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채 의원과 만났다.

-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 아쉬운 법안들이 뭔가.

“상법, 공정거래법, 집단소송법, 이해충돌방지법이 가장 아쉽다. 나는 국회에 재벌개혁·경제개혁·공정경제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목표로 들어왔다. 상법 개정안은 우선 재벌 총수들에 의한 경영형태를 바꾸기 위해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해 기업경영의 민주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두번째로 회사와 이사의 이해충돌이 발생하면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법안이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규제가 너무 약해 얼마든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사익편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되지 않은 것 중엔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나 BMW 화재사건처럼 불특정다수가 피해를 입었을 때 대표성을 가진 그룹이 소송에서 이기면 피해자 전체 집단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연구해 법안을 냈는데 한 번도 논의가 안 됐다. 마지막으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은 손혜원 의원 건으로 논란이 됐던 문제임에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넘어갔다.”

- 왜 논의가 안 됐나.

“기업 관련 법들은 미래통합당에서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 상임위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릴 때 어떤 법을 논의할지 상정해야 하는데, 여야 간사와 상임위원장이 협의하고 상임위원장이 결정한다. 이때 한 당의 간사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안은 어차피 통과가 안 된다면서 올리지 말자고 하는 게 관행처럼 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은 2016년 2~3차례, 이후 낸 법안들은 단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사건이 터져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여론이 들끓을 때 의원들이 발의는 하지만 특정한 정치집단의 반대가 있으면 논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경제지표가 나빠지면 기업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거나 규제를 신설하는 데 반발이 있어 힘을 싣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런 이유로 법안이 논의·통과되지 않아서 문재인 정부에서만큼은 재벌개혁 법안이 추진될 거라 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정부 자체가 반대했다면 지금은 정부가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미온적 태도로 나온다. 한국당의 강한 반대가 어떻게 보면 반대 명분을 주니까 고마울 수 있는 거다. 특히 상법 개정에 대해선 제발 논의라도 해보자, 1소위에 상정이라도 해달라고 했는데 민주당에선 한국당 핑계를 대왔다.”

- 법안 처리 과정에서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냉소적 현실주의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안타깝다.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국회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데이터 3법’도 분명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법안이 사실상 정부안이었고 여당이 밀어붙였고 통합당은 찬성하는 분위기라 논의가 깊게 진행되지 않았다. 20여쪽 분량으로 각 법안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수정해야 한다고 의견서를 만들어서 여당 의원과 정부 쪽에 보냈는데 ‘나중에 개정안 내’ 이런 식이었다. 법사위에서 체계자구 수정 충분히 할 수 있고 상임위에서라도 다듬을 수 있는데 ‘민생법안이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결론을 내놓고 이걸 막으면 언론에서 공격당하게 하는 거다. 데이터 3법을 막으면 우리나라 데이터 산업이 망할 것처럼, 법사위에서 갑질하는 의원이라면서 공격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의원들이 말을 안 하는 거다. 이걸 막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통과시키려는 모습에 너무 실망했다.”

- 데이터3법은 산업적 발전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보도가 지배적이었다.

“문제점을 수정해서 통과시키자고 한 것이다. 아예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개정하지 말자고 한 게 아니다. 마치 내가 우리나라 데이터산업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처럼, 머니투데이는 ‘빌런’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경제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건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소위 소신파 의원으로 튀어보려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그게 바로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보지 않는 거다. 국회 출입하는 기자들이 대부분 정치부 기자들이기 때문에 관점은 정치적인 행동에 맞춰져 있다. 누가 어떤 법안을 냈고 그 법안은 왜 필요하고 누구는 왜 반대하는데 어떤 게 더 합리적인지 국민에게 판단을 맡겨야 하는데 겉에 드러난 모습만 보도한다. 기자들도 정책적 부분에서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쟁 기사를 국민이 많이 볼 수는 있지만 그건 그들의 삶을 바꾸는 기사가 아니다. 정치와 언론 관계가 발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원래 개인정보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지난 대선 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공약을 만들었는데 개인정보보호, 데이터산업 활성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쪽 측면만 봐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바른미래당 정책위 부의장을 할 때 규제개혁법이라고 규제샌드박스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데이터3법을 논의한 적이 있는데 당시 데이터 3법과 관련해선 개인정보보호법만 올라온 상태였다. 3개 법안이 다 올라오고 보니 너무 문제가 많다는 시민단체 지적이 있어서 관련 공부를 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끝까지 반대하게 됐다.”

- 데이터 3법의 주요 문제점이 뭔가.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에 기업이 가진 나의 개인정보에 대해 파기·열람·정정·삭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가명정보’도 결국 내 개인정보로 만드는 것이기에 그런 권한을 가져야 한다. 유럽 GDPR은 그걸 다 인정해주지만 우리나라는 안 한다. 말로는 유럽 기준 맞춘다지만 과도하게 나간 부분이 있다. 가명처리를 하는 순간 모든 권한을 포기하게 한 것이 가장 큰 허점이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SNS에 있는 정보도 수집할 수 있도록 해 매우 심각한 사생활침해 우려가 있다. 특히 개인정보 관리 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보호·규제 뿐 아니라 진흥 기능을 넣었다. 산업 진흥과 규제를 분리시켜야 하는데 한몸에 넣었다. 게다가 신용정보는 금융위가 관리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전문성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진흥을 위한 부처다. 신용정보와 다른 정보를 결합시킨 정보에 대한 권한 예컨대 통신, 의료기록을 결합해서 만든 정보를 금융위가 관할하게 되는 것이다. 가명처리에 대한 기준도 당연히 개인정보보호위가 가져야 하는데 진흥기관인 금융위가 갖도록 했다.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금융위는 ‘모피아’로 불리는 조직이다. 한마디로 정부기관에서 가장 힘이 센 기구다. 법안을 제대로 논의하면서 금융위 권한을 지웠어야 한다. 그런데 정무위에서 마지막으로 법안을 이틀 논의하는 동안 그런 걸 하나도 안 봤다. 뭐 가지고 싸웠냐면, 나중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때 금액을 3배로 하기로 했는데 5배로 올리자고 지상욱 의원이 주장을 해서 그걸 갖고 이틀 논의했다. 다른 조항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민주당 의원들 설득했을 때 다들 심각하다고 공감을 했는데 결국 통과돼버렸다.”

- 개정안 준비도 하고 있나.

“원래 토론회를 하려고 했는데 본회의 일정과 코로나19 문제로 연기됐다. 마지막에 개정안 발의까지 하고 21대 국회에서 꼭 논의될 수 있도록 근거를 남겨놓으려 한다. 솔직히 지금 선거기간이고 뭐고 해서 많은 분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으로서 임기 끝까지의 소임을 다 해야 한다. 총선이 끝난 뒤 5월에 반드시 못했던숙제를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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