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을 ‘해직기자’로 살았소. 제발, 앞으로는 ‘해직기자’라는 소리 좀 들리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소.” 15일 별세한 권근술 전 동아일보 기자(전 한겨레 사장)가 2017년 11월13일 한겨레에 기고했던 글 중 일부다. 

그와 함께 ‘해직기자’로 살아왔던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17일 동아일보 앞에 다시 모였다. 1975년 3월17일 해고됐던 동아일보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창립 45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동아일보사 앞에서 “이제 우리 국민이 동아일보를 해고한다”고 외쳤다.

동아투위는 △일제의 앞잡이로 민족을 배신한 죄 △민족 분열을 획책하고 이를 공고히 한 죄 △군사독재 권력의 충견으로 민중을 괴롭힌 죄 △민중을 저버리고 권력자, 기득권, 지배자의 편에 서왔던 죄 △국민이 위임한 언론 권력을 남용하고 탄압한 죄 △자사의 참 언론인을 부당해고하고 지금까지도 사과없이 복직시키지 않은 죄로 동아일보를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동아투위는 “45년 동안 동아일보 사주와 집권세력을 향해 복직과 명예회복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그 어떤 정부도 응답하지 않았다”라며 “반세기 가까이 되는 기나긴 세월에 사법부에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을 했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무책임한 소리만 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오늘날 언론이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을 위해 진지한 자세로 보도하는 매체가 아주 적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며 “언론자유라는 막연한 단어에 기대기보다는 자유언론 실천이라는 적극적 이념에 충실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17일 서울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투위 45주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17일 서울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투위 45주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동아투위 45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동아일보를 해고하는 이유'라는 팻말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동아투위 45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동아일보를 해고하는 이유'라는 팻말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권근술 동아투위 위원까지 작고해 이제 우리는 113명에서 30명은 고인이 됐다. 70대 중반이 넘어 80이 다 된 나이들이지만 하루도 자유언론실천 선언의 명제를 잊은 적 없다”며 “45년 전 일이지만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고, 앞으로도 이 길을 함께 걷겠다”고 말했다.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위원장도 연대발언을 통해 “45년 전 동아일보는 기골있는 언론인들을 몰아내면서 척추가 부러진 것 같이 보인다”라며 “동아일보 후배들에게, 45년 전 선배들이 했던 투쟁의 반의반이라도 따라서 무너져가는 한국 언론의 걸음들을 되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동아일보는 스스로 민족지라고 하면서 1936년 8월24일 베를린올림픽 ‘일장기 말소 사건’을 내세우는데,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건 회사의 결정이 아니라 기자 개인들이었다”라며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 기자들을 해고했으면서 이제 와서 자신들의 자랑인 것처럼 밝힌다”고 비판했다.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45년 전 선배님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1만5000천 조합원들이 현재 취재나 제작 현장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동아일보가 45년 전 기자들을 쫓아내면서 사죄하지 않고 있는데 동아일보가 역사 앞에 사죄하고 역사를 새로 쓰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