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 독일 르포기자 귄터 발라프는 21살때인 1963년 철강회사 튀센에 광부로 위장취업해 첫 르포집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를 발표했다. 이후 알콜 중독자와 노숙자를 경험한 뒤 ‘13가지 불편한 르포’를, 다시 튀센 철강회사에 터키 출신 이주노동자 ‘알리’로 위장취업해 이주노동자 인권침해를 고발한 ‘가장 낮은 곳에서’를 발표했다. 게르만족인 발라프는 이 때 방송사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특수분장을 통해 터키인으로 위장했다.

위장취업해 르포 형식으로 취재하는 기자를 언더커버 리포터라 한다. 발라프 기자는 2007년엔 쾰른의 첨단빌딩 쾰른투름에 입주한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복권기업 ‘콜온(callon)’의 아웃바운드 콜센터에 49살 미하엘이란 이름으로 위장취업해 텔레마케터 노동의 문제점과 통신판매기업의 탐욕을 폭로했다.

당시 독일엔 6000개가 넘는 콜센터에 44만명이 일하면서 매일 2400만명의 고객과 통화했다. 노동조건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콜센터는 복권이나 잡지 정기구독권을 판다고 알려졌지만 음식과 보험, 여행, 헤지펀드 등 거의 모든 상품을 취급한다. 그들이 파는 상품은 대부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품질은 형편없고 거의 가치가 없는 상품들이다. 결국 사기 당하는 건 고객들이다. 콜센터는 이직률이 매우 높다. 6개월을 일하면 장기근속이 된다. 워낙 이직이 많아 일할 사람을 소개하는 직원에겐 수당을 준다.

콜온의 텔레마케터는 고객에게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알려주고는 비싼 통화료가 부과되는 0900번호로 전화해서 당첨 상품을 찾아가도록 유인한다.

팀장은 신입직원 미하엘(분장한 발라프)에게 “양심은 집에 놓고 오라”고 했다. 근무 첫날 미하엘은 80명가량의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목적은 돈을 인출하기 위한 계좌번호 받아내기였다. 숙련된 텔레마케터는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2시15분까지 일하고 1시간 쉬고 오후 3시30분부터 저녁 8시15분까지 일하면서 하루에 열 건 정도 실적을 올렸다.

▲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취재 뒷이야기를 하는 귄터 발라프 기자.
▲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취재 뒷이야기를 하는 귄터 발라프 기자.
▲ 언더커버 리포트를 위해 흑인으로 분장한 귄터 발라프 기자.
▲ 언더커버 리포트를 위해 흑인으로 분장한 귄터 발라프 기자.

50유로 이하의 당첨금은 아예 지급하지 않고 다음 복권게임으로 이월된다는 내용도 고객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한 동료는 “여기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아요. 사기죠. 매일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해 그 일을 합니다. 조만간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콜온은 날로 번창했다. 회장 에크하르트 슐츠는 콜온 본사를 네덜란드에 두고 실제 영업은 독일에서 했다. 1999년 탈세와 불법 도박으로 고발돼 잠시 구속도 됐지만 75만 유로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슐츠 회장은 2006년 9월 도르트문트 지사 직원이 노조를 결성하려고 하자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노조 주동자를 ‘기생충’이라고 불렀다. 회장은 노조 결성에 배후조종자가 있다고 말했다. 100만 유로라는 복권 당첨 환상을 악용해 2억 유로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회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또다른 아웃바운드 콜센터 ZIU 인터내셔널은 테이크아웃 식당에 청소년 보호법 인증표를 팔라고 했다. 콜센터가 69유로에 파는 인증표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퇴근한 발라프가 쾰른 시에 전화로 문의하니 인증표를 걸어놓지 않는 식당엔 여러 번 경고한 뒤 최고 25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콜센터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에게 1년 동안 임금의 절반을 보조한다. 회사는 1년마다 직원 대부분을 쫓아내고 다시 새로 정부 보조금을 받을 사람들을 채용한다.

한국의 콜센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 11일 콜센터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닭장’으로 불리는 자신들 근무환경을 폭로했다. 다닥다닥 붙은 책상 사이 통로는 50cm에 불과하고 관리자에게 허락받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는 건 기본이다. 자주 화장실 간다는 이유로 그 흔한 생수통조차 없어 직원들이 텀블러에 물을 담아 출근한다. 이런 콜센터가 고용우수기업이란 인증을 받고 번창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코리아빌딩 집단감염을 ‘구로 콜센터’로 부르면서 원청기업 이름은 숨겨줬다. 전국에 700여개 콜센터가 있고 서울에만 400여 콜센터가 운영중이란 사실도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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