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의 얼굴은 제목이다. 편집자는취재기자가 올린 기사 제목에 적절하게 손을 댄다. 훌륭한 편집자의 능력 중 하나가 제목 달기다. 보도의 핵심을 간결하게 보여주면서도 독자들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취재의 결과물이 돋보이면서도 독자들도 만족시킬 수 있다.

현실에서 언론의 제목 달기는 전혀 다르다. 한껏 양념을 버무린 제목이 난무한다. 업계에서 제목 달기의 우선 순위 요소는 흥미다. 자극적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기도 한다. 클릭을 유발하지 못하는 제목은 곧 ‘실패’로 규정한다.

인터뷰이 말이 인상적이고 보도 내용의 핵심으로 판단되면 큰 따옴표 안의 말을 제목으로 쓰기도 하는데 인터뷰이가 전혀 하지 않은 말이 큰 따옴표 안에 들어가기도 한다. 조작에 가깝지만 언론은 그게 바로 제목달기라고 항변한다. 기사가 유통되는 거대한 시장(포털)에서 살아남으려면 편집자는 제목 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좋은 제목과 나쁜 제목의 경계가 클릭 유발에 있다보니 ‘정직한’ 제목을 단 편집자는 못난 사람이 된다.

극단적 기사 제목은 뉴스의 수요가 폭발할 때 더욱 많이 쏟아진다. 한 통신사 기자는 “최근 트래픽이 두배 가까이 뛰었다. 사람들의 뉴스 수요가 늘었다. 계속 수요를 맞추려고 속보 보도의 제목은 무조건 섹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은 사회적 불행이지만 이 판국에서도 장사 되는 제목을 달아 트래픽을 높이려는 게 언론의 속성이다.

조선일보LA는 지난 11일 1면에서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코로나19의 확산에 대비해 생필품과 식료품, 의약품 등의 사재기를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는 60대 이상 연장자와 만성질환자들이 코로나19감염에 노출될 경우 취약하고 이에 따라 이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으며 충분한 양의 식료품과 생활용품, 의약품 등을 구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권고는 60대 이상 연장자와 만성질환자들이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인데, 조선일보LA는 “사재기를 권고했다”고 첫 문장을 썼다. 그리고 조선일보LA는 “CDC ‘식료품, 의약품 사재기하세요’”라고 제목을 달았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를 ‘사재기’를 권고한 이상한 단체로 전락시켜 버렸다. 많은 언론이 CDC 발표를 다뤘지만 “사재기 하세요”라고 제목은 조선일보LA가 유일했다. 전형적 제목 장사다.

‘비극’을 희화화시키는 제목 달기도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란에서 확진자가 8000명을 넘어섰을 때 연합뉴스, SBS, KBS,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은 대부분 이런 제목을 달았다. “이란 코로나19 확진 8천명 넘어…한국 추월” 이에 한 SNS 유저는 “추월? 추월 당해 아쉽냐? 이게 쇼트트랙 경기냐”라고 꼬집었다.

코로나를 정치와 연결시켜 흥미를 돋우는 제목도 눈에 띈다. 국민일보는 9일 “신천지 퍽 때리니 지지율 탁 올랐다…이재명·이낙연 부각”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정치권의 신천지에 대한 수사 요구와 지지율의 상관 관계에 주목한 내용으로 이해되지만 과연 이런 제목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13일 중앙일보 보도 “文 ‘질본 좋은 성과’ 칭찬 19분 뒤…‘4995번’은 숨을 거뒀다”라는 제목의 보도는 맹비난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 제목은 언론의 제목 달기가 도를 넘은 전형으로 뽑힌다.

중앙일보 보도는 코로나 확진 사망자의 유족을 인터뷰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있는데 정부가 성과 메시지에만 몰두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4995’번 환자가 지난 11일 오후 5시49분 숨지기 전 5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충북 오송의 질병관리본부를 깜짝 방문해 격려한 것을 부각시켰다. 독자들은 문 대통령의 질본 격려와 환자의 사망 사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두 사실을 묶어 정권을 비판하려는 노골적인 정파적 보도라고 지적했다. 누리꾼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격려하니까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다른 누리꾼은 “유족이나 고생하는 의료진한테 이런 쓰레기 제목은 죄스럽지도 않아요?”,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전염병 막으려는 사람들 노력을 다 비웃는 것이냐? 최소한의 품격 좀 지키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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