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회장 이두영)에서 해고돼 법적으로 싸우다 숨진 ‘고 이재학 PD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사측 추천 위원 구성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활동 목표 및 조사 범위 수립, 소위원회 구성 등을 마친 조사위는 신속하게 추진해 이달 안 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김혜진)는 지난 11일 오후 청주방송에서 2차 회의를 열고 진상조사 개시를 위한 사전 작업을 마쳤다. 조사위는 11명 조사위원 중 김혜진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을 위원장으로,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를 간사 겸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운영 기간은 4월 말까지로 정했고 필요에 따라 조사위 의결로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조사위는 산하에 2개 소위원회를 구성한다. 1소위원회는 이재학 PD의 노동조건과 사망 경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과정에서 회사 측 위증 및 자료 은폐 혐의 등을 조사한다. 2소위원회는 비정규직 고용 현황과 근무실태, 직장 내 괴롬힘 현황 등 청주방송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전반을 조사한다. 1소위원장은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 2소위원장은 김유경 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돌꽃)다.

조사위는 이달 말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계획에 따르면 조사위는 오는 16일 청주방송에 필요한 자료 목록과 서면 질의를 전하고 청주방송은 20일까지 자료 제출과 답변 작성을 마무리한다. 관계자 면담 조사도 20일까지 완료하고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돌입할 계획이다.

▲고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

문제는 사측 추천위원의 자격 논란이다. 청주방송은 이 PD 사망의 발단이 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사측을 대리한 조아무개 변호사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유족은 “윤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또 고인은 회사 측의 위증, 허위 진술서 강요, 자료 은폐 등 혐의를 고발하고 떠났다. 변호사도 조사대상에 포함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청주방송은 조 변호사 인선을 고수했다. 청주방송은 지난 10일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조 변호사 참여 배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청주방송 관계자는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PD 측 소송 대리인도 조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소송 과정 문제점을 다룬다 하니 소송에 참여한 회사 쪽 대리인도 참여할 필요가 있고, 객관적인 진상조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측 위원 공백 상태는 또 다른 문제다. 세 명이 할당된 사측 추천 위원 중 두 명이 인선됐다가 이마저 한 명으로 줄었다. 지난 11일 2차 회의에서 또 다른 사측 위원인 최아무개 변호사가 사퇴를 밝히고 퇴장했다. 그는 “청주방송이 '진상조사위가 제시하는 개선방안을 즉시 이행하고 점검도 받는다'는 합의문 구속력이 막강한데, 사측 위원으로 사실상 혼자 남아 활동하기가 부담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조사위 활동은 위원 인선과 별개로 추진된다. 지난 2차 회의에서 사측 위원이 모두 중도 퇴장했으나 조사위는 이들 퇴장 전에 ‘조 변호사 교체를 권고하지만 조사위 활동의 전제는 아니며 조사위 활동은 진행한다’고 의결했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합의문.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합의문.

유족은 이같은 상황에 “청주방송이 이 PD가 사망한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이에 청주방송 관계자는 “진상조사위는 통상적으로 ‘권고’ 수준의 권한을 갖는데, 이번 합의문은 조사위 제안을 이행하고 점검까지 받도록 한다. 청주방송이 이례적으로 강한 구속력을 가진 합의문에 서명을 한 건 그만큼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이라며 “외부에서 보면 미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프리랜서 제도개선위원회도 가동하는 등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고 이재학 PD는 지난 2월4일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04년 청주방송에 조연출로 입사한 이 PD는 2010년부터 연출PD를 맡다가 근속 14년 째인 2018년 기획제작국장에 프리랜서들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한 직후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됐다. 이 PD는 “정규직PD와 똑같이 일했다. 부당해고”라며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넣고 1년 반 다퉜으나 패소했다. 패소 2주 후, 그는 “억울해 미치겠다. 왜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적힌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조사위 3차 회의는 오는 23일 오전 11시 청주방송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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