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대선 뛴 정치부 기자, 얼굴 알려진 아나운서 많아
대선 뛴 정치부 기자, 얼굴 알려진 아나운서 많아
[ 청와대 거친 언론인 출신 총선 출마자 ]
취재 경험이 곧 정치로 이어져
대선 캠프 때부터 일한 사람도
공영방송 사수파업 때 마이크도

언론인 출신 총선후보(예비후보 포함)들이 언론인 시절 어떤 기사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살폈다. 몇몇 후보는 특종으로 정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또 몇몇 후보는 오래전 언론사를 퇴사하고 정치권으로 옮겼다. 미디어오늘은 잘 알려진 정치이력보다는 과거 그들이 직접 쓴 기사로 후보들을 평가했다. 아직 경선이 진행중이라 후보가 모두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편집자주>

윤영찬, 1997년 대선 DJ 마크맨

더불어민주당 경기 성남중원을 노리는 윤영찬 예비후보는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와 1990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허문명, 하종대 기자가 동기다. 

윤영찬 기자는 사회부 기자로 1991년 봄 강경대 정국 때 전남대 윤용하, 성균관대 김귀정 학생의 분신을 취재했다.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가 경쟁지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했지만 윤 기자는 현장을 지켰다. 1993년엔 슬롯머신, 율곡 방산비리를 취재했다. 

윤 기자는 정치부로 옮겨 민주당을 출입하며 1995년 10월 박계동 의원이 폭로한 대선 비자금 사건을 특종보도해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노태우 비자금이 김영삼 대선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내용이었다. 

▲ 1995년 10월20일자 동아일보 1면
▲ 1995년 10월20일자 동아일보 1면

윤 기자는 1996년엔 4·11 총선을, 1997년 4월 소산(YS 아들 김현철) 비리, 정태수 리스트를 다룬 한보청문회를 취재했다. 한보청문회는 그해 연말 치러진 대선 전초전이었다. 1997년 대선 정국 땐 DJP 단일화를 지켜봤다. 

윤 기자는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취재했다. 윤 기자가 그해 11월20일 쓴 ‘DJT 레디 고’ 기사는 DJP 연합을 넘어 박태준까지 끌어들였다. 고령의 DJ에게 쏟아진 건강이상설엔 ‘김대중 후보 건강 이상무, 세브란스병원 진단서 공개’(12월2일 2면)로 맞받았다. 안기부는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편지를 보냈다며 수색 영장까지 받아 수사에 나서고, 부부간첩단 사건을 발표해 북풍 공작에 들어갔다. 이에 윤 기자는 ‘정보사 출신 33명 국민회의行’(11월21일 7면), ‘이회창 후보 거짓말 사죄하라’(11월25일 4면) 등의 기사를 썼다. 투표일 다음날엔 ‘막오른 김대중 시대’(12월19일 2면)로 종지부를 찍었다. 

오태규 한겨레 기자는 2000년 11월 기자협회보에 쓴 기고에서 윤영찬 기자를 ‘꺼벙이’이라고 불렀다. “항상 부시시해 보이는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도 허술해 보인다. ‘마음의 온기’가 있는 기자다.” 그래서 윤 기자 주위엔 항상 사람이 꼬였다. 

윤 기자는 2003년엔 동아일보노조위원장을 맡아 힘겹게 임금 2% 인상을 끌어냈다. 2005년엔 SBS문화재단(윤세영 이사장)의 지원을 받아 1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당시 연수자 선정이 주말을 빼고 만 하루 만에 이뤄져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윤 기자는 2005년 4월 동아일보노조 공보위광장에 ‘기자들을 춤추게 하라’는 글을 썼다. 윤 기자는 신문산업의 위기로 편집국 소수 간부들의 어젠다 독점이 심화돼 현장 기자가 소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기자는 책상에 앉아 세상을 보는 현상이 심화돼 구미에 맞는 담론만 편식한다고 비판하며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하의상달 문화로 바꾸고 △정보 편향과 불균형을 낳은 인사시스템 개선 등을 촉구했다. 

미국 연수 뒤 1년 남짓 문화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윤 기자는 2008년 1월 네이버로 옮기면서 18년 기자생활을 끝냈다.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한 뒤 청와대 첫 국민소통수석을 20개월쯤 맡았다. 

정연국, 비리고발하던 ‘카메라출동’ 현장기자가

울산 중구에서 경선을 치르게 될 정연국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자는 1987년 울산MBC에 입사했다가 1995년 경력 공채로 MBC 기자가 된다. 시사매거진2580과 사회2부, 뉴스편집2부 등에서 활동했고, 뉴스투데이 앵커를 거쳐 런던 특파원을 지냈다. 이후 기획취재부장, 사회2부장, 선거방송기획단장, 취재센터장, 시사제작국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1989년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의 피해를 강조하는 리포트를 연달아 내보냈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파업 여파는 지역 경제에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며 “울산 지역 납품 업체에서는 180억 원의 사채를 빌려쓰는가 하면 일부 업체는 임금 값까지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명절 풍경을 다루며 “예년 같으면 고향으로 가는 설렘을 안고 근로자들이 밀려 나오고 있을 현대중공업은 장기화된 노사분규로 근로자들의 발길이 뜸한 채 쓸쓸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6~1998년 ‘카메라출동’ 코너에서 현장 취재를 주로 했다. 운수업체들의 지입차주 대상 갑질,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비리, 부산지역 20개 사업의 환경영향 평가서의 생태계 분야가 엉터리였다는 사실 등을 보도했다.

권재홍 앵커 대신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며 오프닝 멘트로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발언해 파업 국면에서 사실을 왜곡해 노조를 비방하는 멘트를 내보냈다.

시사제작국장으로서 ‘100분토론’ 진행을 하던 중 사표를 내고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됐다.

▲ MBC 출신 정연국 전 청와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 MBC 출신 정연국 전 청와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고민정, KBS 새노조 파업때 마이크

광진을에 민주당 단수후보로 공천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은 경희대 중문과 출신으로 2004년 KBS에 30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뒤 노무현정부 땐 KBS에서 무한지대 큐(2006~2009년), 특명 공개수배(2007~2008년) 등을 진행했고, 이명박정부 들어 사장이 교체된 이후 ‘생로병사의 비밀’(2008년), ‘생방송 오늘’ 진행(2009~2011년), ‘책 읽는 밤’(2011년)을 진행했다. 박근혜정부 땐 2013~2014년 ‘국악의 향기’와 국악한마당을 진행했고, 2015~2017년 KBS FM 라디오 ‘더 가까이…고민정입니다’도 맡았다. 

고 후보는 2008년 KBS 정연주 사장이 부당 해임될 때 내부에 결성된 ‘사원행동’의 일원으로 집회 때 사회를 봤다. 2010년 KBS가 이른바 ‘새노조’(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파업 가담자 징계 방침을 밝히자 고 후보는 그해 12월15일 트위터를 통해 “우린 언제까지 그냥 회사원이어야 하나”라며 “언론인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런 KBS인이 되면 안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장 내일이 편한 삶 말고 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건가”라며 “따지지도 말라, 흥분하지도 말라! 우린 기계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두현, 기자보다 ‘외압’ 데스크 두각

YTN 출신 윤두현 예비후보자는 경북 경산에서 경선을 앞두고 있다. 서울신문 출신으로 YTN 출범 이후 YTN에서 해외사업팀장, 국제부장, 정치부장, 보도국장 등을 지냈고 YTN플러스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윤두현 예비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실세로 주목 받았다. 그는 YTN 정치부장, 보도국장 시절 △MB 독도 발언 보도 누락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보도 축소 △BBK 보도 불방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 논란 와중 조현오 전 경찰청장 방송 출연 등으로 논란이 됐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그를 ‘YTN 5적’으로 지목했다. 

▲ 2015년 1월7일 윤두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5년 1월7일 윤두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당시 YTN플러스 사장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직행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윤 수석이 MB정권 '왕차관'으로 꼽히는 박영준과 막역한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로 인해 배석규 YTN 사장 체제 아래에서 윤 수석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에 선임돼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준호, 인기 아나운서 파업 “후회 없다”

민주당 고양을 단수공천을 받은 한준호 전 MBC 아나운서는 현역시절 ‘닥터스’ 진행으로 인기를 얻었다. MBC 파업 때 적극 참여했다. 한 전 아나운서는 1974년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고, 연세대학교 수학과, 생활디자인학과를 나와 데이콤 자회사 데이콤ST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이듬해 코스닥증권시장(현 한국거래소)으로 옮겼다. 

그러다 2003년 MBC 아나운서가 됐다. 주말뉴스앵커, 닥터스 등을 맡았으나 이명박정부 들어 2008년 연말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선 MBC 파업 때 적극 동참했다. 당시 그는 이대앞 거리 선전전 때 미디어몽구와 인터뷰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다”며 “이번 파업이 결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MBC를 지키고 공정방송 지켜내 이 사회에 정의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내기 위함이니 많은 지지를 바란다”고 했다. 2009년엔 미디어악법 파업, 2012년엔 공정방송 수호 파업, 2017년 파업 등에도 참여했다. 그는 2008년 파업 땐 “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전 아나운서는 2018년 3월 MBC를 퇴사했다. 이후 우상호 의원 서울시장 경선 캠프 대변인, 2018년 9월부터는 문재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행정관으로 일하다 이듬해 4월말 청와대를 나왔다. 

오중기, “신문사 재직때 늘 죄책감”

포항북구에 단수공천된 오중기 전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한국일보와 동아일보를 거쳤다. 그는 1967년 포항 출신으로 대동고와 영남대를 나왔다. 대학 땐 문과대 학생회장과 전대협 통일선봉대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8월부터 한국일보 광고국에 입사했다. 2002년 8월엔 동아일보로 옮겨 2006년 8월까지 근무했다.

그는 지난 2018년 6월 4일 ‘ㅍㅍㅅㅅ’와 인터뷰에서 “한국일보 입사해 6년쯤 있다가 동아일보에서 스카우트 제의 들어와 옮겼다”며 “기자는 아니고 업무직이었다”고 했다. 편집 쪽으로 옮기려 했으나 학생운동 전과와 지방대 출신 등이 걸려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일보 재직하면서 그는 “항상 죄책감과 사회변화에 갈망을 품었다”고 했다.

그는 2007년 동아일보를 나와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국회의원 선거(포항 북구) 세 차례, 경북도지사 선거 두 차례 등 모두 5번 낙선했다. 이번이 모두 여섯 번째 도전이다.

박시종, “김대중 인터뷰가 정계 입문 계기”

민주당 광주 광산을에 공천된 박시종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 선임행정관은 1990년대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1964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전남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삼민투위원장을 하다 두차례 투옥됐다. 이후 월간 사회평론에서 일하며 정치평론을 썼다. 

박 전 행정관은 지난해 12월16일 광남일보와 인터뷰에서 정계 입문 계기를 “월간 사회평론 편집장으로 1992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인터뷰한 게 계기였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행정관은 갓 서른 살 젊은 나이로 ‘김대중 선생’을 보좌하는 전략기획팀에서 TV연설문을 쓰는 일을 맡았다.

그는 광주환경운동연합,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사랑방문고 대표이사로 출판사도 운영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로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며 정권교체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성근 배우 등이 함께한 ‘혁신과 통합’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대선 후보 광주캠프를 맡았다. 

정만호, 두 대통령 싱크탱크

1958년 강원 양구에서 태어난 정만호 예비후보는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을에 세 번째 도전한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1981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했으나 3년 뒤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됐다. 

정 후보는 한국경제신문에서 경제부장, 국제부장에 이어 사회부장을 지내던 2001년 돌연 사표를 냈다. 지면제작 관련 고위간부와 견해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금은 사라진 언론노조 한경지부는 당시 바른언론실천위원회 활동에서 지면·제작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다. 노무현 대선 캠프 정책기획실장으로 대선 승리를 경험했고 대통령직인수위 행정실장에 이어 대통령 정책상황비서관, 의전비서관을 역임했다. 

앞선 두 번의 총선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2004년 청와대에서 나온 뒤 준비한 17대 총선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출마하지 못했다. 2010년 보궐선거에선 낙선했다. 모두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구로, 이번에 세 번째 출마다. 

첫 총선 패배 뒤 KT미디어본부장을 지냈다. KT가 IPTV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시기다. 당시 KT는 소프트뱅크와 ‘KT글로벌 뉴미디어 투자 조합’ 결성을 발표했고, ‘올레TV’ 전신인 ‘메가(패스)TV’는 콘텐츠 확대, 네이버 검색 제휴 등 서비스를 확장했다. IPTV법 관련 ‘KT 특혜법’ 비판 등 방송통신업계에서 논란이 일었을 때 그는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속도”라며 연내상용화를 강조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KT에서 밀려났는데 사실상 ‘MB 측근을 위한 물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그 역시 노무현 청와대 출신으로 KT에 내려간 인사였다는 점에서 청와대 눈치보는 KT 인사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두 차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는데, 2017년 대선 때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 청와대 이전 공약을 설계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엔 강원도 경제부지사를 지내다 지난해 말 사퇴했다.

김은혜, 앵커→청와대 대변인→앵커→출마

▲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청와대 부대변인 김은혜.
▲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청와대 부대변인 김은혜.

통합당 분당갑에 출마한 김은혜 전 MBC 앵커는 지난 MB정권 때 청와대 제2대변인을 했다. 그는 언론인으로 있다가 정치권이나 권력행을 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앵커로 돌아온 이력을 갖고 있다. 앵커-청와대 대변인-앵커-총선 출마 등 앵커를 지렛대 삼아 언론과 권력을 넘나든 케이스다.

그는 1971년 서울 출생으로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MBC 기자로 입사했다. 사회부 경제부와 정치부와 국회 출입기자를 거쳐,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의 뉴스 프로그램 앵커를 맡았다.

그러다 MBC를 2008년 2월1일 퇴사한 이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초대 외신담당 부대변인과, 청와대 제2대변인을 지냈다. 그는 청와대를 나온 뒤 2010년 12월 KT 커뮤니케이션실 전무에 올랐다. 2014년 KT를 그만둔 후엔 MBN 특임이사로 돌아와 앵커를 맡았다. 최근엔 보수통합 협의체인 ‘보수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 대변인을 하기도 했다.

김 전 기자는 MB정부에 들어가기전 2007년 9월21일 뉴스데스크에서 ‘월북 누명 벗는데 30년’이라는 리포트에서 “지난 77년 군용기를 타고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군무원이 사실은 납북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김 전 기자는 그해 11월30일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단독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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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3-12 14:57:15
“당장 내일이 편한 삶 말고 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건가” <<< 훌륭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혈연뿐만 아니라 말과 글도 DNA가 돼서 유전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