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특정 대상의 인터넷 정보를 감청하는 ‘패킷감청’ 관련법 개정안이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청 자료를 처리하거나 보관하는 절차가 만들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일어나지 않은 범죄 ‘예방’에 감청자료를 쓸 수 있고 감청 당사자가 부당함을 호소할 절차가 없는 한계가 그대로 남았다. 

‘패킷감청’은 인터넷회선 감청을 의미한다. 특정 인터넷회선을 통해 흐르는 전기신호 ‘패킷’을 가로채 재조합하는 기술을 활용하기에 ‘패킷감청’이라 불린다. 감청 대상자가 접속하는 웹사이트, 로그인 정보, 이메일과 메신저 발송·수신 내역, 컴퓨터를 켜고 끈 시간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같은 회선을 이용하는 다른 사용자의 정보도 함께 수집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수사기관의 패킷감청 자료를 사후적으로 감독·통제하는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다며 이달(2020년 3월) 안에 관련법(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국회는 이번 본회의에서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정부안’과 2018년 12월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을 합친 대안을 통과시켰다. 통합안이라지만 정부안 내용에 한 문장을 보강한 수준이다. 수사기관이 패킷감청 자료를 보관하려면 법원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받지 못한 자료는 폐기한 뒤 폐기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골자인데, 정부안에서 수사기록·내사사건기록에 첨부하도록 한 폐기보고서를 대안은 법원에도 송부하도록 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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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가 지적했던 문제들은 여전하다. 지난달 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크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등 정보·인권단체들은 “정부안은 패킷감청을 수사기법으로 광범위하게 허용하겠다는 전제 아래 감청 결과물의 관리를 강화하려는 취지만을 갖고 있다”며 “법원의 정보기관 감청 통제 제도 신설을 위해 충분한 심의가 필요해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우선 감청자료를 감청 목적 뿐 아니라 관련 범죄를 예방하는 데 쓸 수 있게 한 조항을 유지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현행법상 감청 집행으로 인하여 취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범죄와 관련되는 범죄를 수사·소추하거나 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도 사용이 가능하므로 특정인의 동향 파악이나 정보수집을 위한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던 대목이다.

검사가 기존 법에 규정된 목적 외에 장래의 사용을 위해 감청자료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유지됐다. 시민단체들은 앞서 해당 조항이 “감청 결과를 특정 범죄수사를 위한 최후의 보충적 수단이자 애당초 법원으로부터 허가받은 범위 안에서 보충적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통비법 제정 취지 및 헌재 결정 취지에 반하는 내용”이라며 관련 구문을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청 대상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방안이 부재한 점도 지적됐다. △감청 자료 중에 범행과 관련 없는 사생활 관련 기록은 폐기 △감청 대상자의 감청자료 청취·열람·복사권 보장 △감청 대상자가 감청 집행의 적법성 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법적인 감청자료 처리 절차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조항 역시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민사회 의견이 반영된 개정안은 이번 본회의에 부의되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비법 개정안이다. 4일 관련 법안들을 심사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송 의원의 정부안과 박 의원 발의안을 통합·조정해 본회의에 회부하고, 추 의원 안은 ‘계속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추 의원 안은 법원이 수사기관의 감청자료를 보관하며 직접 통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추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시민단체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국군기무사령부가 이른바 ‘세월호TF’를 만들어 일반시민을 무작위 감청하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통화까지 감청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정보수사기관 감청에 대한 올바른 통제가 시급하다”며 “이 개정안이야말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올바르게 반영한 개정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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