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와 민언련 이사장을 지낸 학자가 함께 책을 썼다. 기자만 30년째인 박주영 조선일보 부산취재본부장과 이범수 전 동아대 교수가 ‘뉴스와 수사학’을 내놨다.

박주영 조선일보 기자는 “기자교육은 선배들 구전에 의존하다 보니 체계적 교육이 이뤄지지 못했고 통일된 기준이 없어 혼란을 겪어왔다”(‘기자매뉴얼’ 발문, 부산일보사, 2000)는 ‘자백’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박 기자는 기자교육을 ‘병원에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검진조차 받지 않고 지내는 환자에 빗댔다.

두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인 수사학과 현대에 와서야 뒤늦게 학문으로 자리잡은 언론학을 비교연구했다.

착상, 배열, 표현, 기억, 발표로 이어지는 수사학 5대 규범과 기사가치 판단, 주제 포착, 취재, 기사쓰기, 수정·검증으로 이어지는 기사 제작 5단계는 서로 많이 닮았다. 두 저자는 이처럼 수사학과 언론학의 관계를 밝혀내면서 두 학문간 통섭을 시도했다. 수사학과 언론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다룬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대 요소로 로고스(이성), 에토스(인성), 파토스(감성)을 꼽았다. 이 말은 남을 설득하려면 이성, 인성, 감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사학은 말을 비롯한 언어를 다루는 재주나 기술에 국한된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수사학은 사회정의를 수호하고 공동체 발전을 이룰 정책과 제도를 고민한 산물이자 사회구성원이 공유해야 할 바람직한 덕목과 함양해야 할 식견을 연구하기 때문에 ‘공공적, 사회적 소통 학문’이다.

수사학의 첫 단계인 ‘착상’은 사건을 조사분석해 주제와 쟁정을 정하고 화자의 주장과 입장을 세우는 과정이다. 이는 기자가 여러 정보 속에서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것과 흡사하다.

수사학의 연설 콘텐츠 생산 5단계는 그 자체로 기사 작성 순서가 된다. 언론은 뉴스 가치 판단, 주제 포착, 취재, 기사 쓰기, 수정·검증 순으로 이어지는 작업 공정을 거친다.

그러나 오늘날은 수사학이 각광 받던 고대 그리스처럼 단방향 소통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런 만큼 언론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메시지 수용자의 능동적 주체화와 쌍방향을 넘어 입체화해 가는 미디어 소통 빅뱅시대에도 여전히 전통적 기사 작성법인 ‘역피라미드식 쓰기’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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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화 시대에도 언론인은 정보 레토릭(수사학)의 실무자로 뉴스 분석과 논평을 통해 레토릭의 핵심 영역인 공적 논쟁에 주도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때 제3자 서술 방식으로 작성된 역피라미드형 문체는 이용자에게 언론이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객관적 뉴스 보도는 일종의 환상이다. 언론이 말하는 ‘사실’은 메시지 소비자의 동의를 거쳐야만 사실이 된다. 언론인은 보고 들은 걸 자기 주관적 평가에 근거해 해석하기에 실수가 불가피하다.

언론이 객관성을 활용해 보도한 모든 인간 커뮤니케이션과 모든 의사결정은 주관적이다. 심지어 단순 정보 제공도 일정하게 주관성을 띤다. 저자들은 이 때문에 “정치와 대중 사이에서 언론이 행하는 중재의 부적합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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