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으로는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는 기사.” 1947년 미국 저널리즘 학자들로 구성된 허친스위원회는 이런 기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맥락을 제공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인종에 대한 점을 강조하면서 소수 인종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강화시키는 기사들이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조선일보가 3월5일 100주년을 맞았다. 조선일보는 장문의 사설을 1면 머리기사에 배치하는 편집을 보였다. 제목은 “100년 前 그 춥고 바람 불던 날처럼, 작아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습니다”다. 그간의 조선일보의 역사를 정리하고 ‘다짐’을 담았다. 

사설은 일제 강점기 창간 당시로 거슬로 올라간다. 조선일보는 “만약 그때 조선·동아일보와 같은 한글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글로 만들어진 신문은 그 자체로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에게 등불과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과 글을 잃지 않은 민족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 살아 있는 예가 바로 우리”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기 탄압을 받은 사건을 나열했다.

조선일보는 광복 이후를 언급하며 “어떤 권력도 언론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제왕적 힘을 휘두르는 우리 대통령 권력도 마찬가지였다”며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맞선 일화를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그래도 조선일보는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라고 했다.

▲ 3월5일 조선일보 1면.
▲ 3월5일 조선일보 1면.

민주화 이후를 기술하면서도 조선일보는 ‘탄압’을 받은 역사를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민주화' 깃발을 들고 탄생한 정권들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보도에 세무조사로 보복하고 시민단체로 위장한 외곽 단체를 동원해 불매운동, 광고 탄압에 나섰다”고 했다. 타사 언론을 향해 조선일보는 “근래에는 권력 편에 선 매체들까지 조선일보를 공격하고 있다. 정치 상대방을 악(惡)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언론까지 적대하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조선일보는 오늘날 ‘가짜뉴스’ 문제와 관련 “최근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괴담과 가짜뉴스도 언론을 위협하고 있다”며 “그때도 조선일보는 할 말을 해야 했다. 외로운 외침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추구’. 조선일보가 끝으로 강조한 표현이다. 조선일보는 “양극화된 진영 논리의 무한 충돌만 반복되고 타협의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 상황에서 사실을 찾아 할 말을 하는 언론의 사명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조선일보 역시 사실보다 속보에 치중하다 크고 작은 오보를 했다. 다시 한 번 사실 추구의 언론 본령을 되새긴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4일에 이어 ‘크고 작은 오보’를 인정하면서도 늘 사실 보도를 추구해왔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이날 지면을 통해 담은 자신들의 역사도 ‘거짓’으로 쓰지는 않았다. 조선일보가 강조하는 ‘사실 추구’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 3월5일 조선일보.
▲ 3월5일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권력에 저항한 언론의 성격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스스로 비춘 모습은 시민사회가 문제 제기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친일, 친독재 기사를 써냈고 저항 언론인들을 쫓아낸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80년 5월 당시의 악의적인 보도는 말할 것도 없고 ‘억강부약’의 언론 사명을 외면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공격하는 보도를 지금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사주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족벌언론’의 구조적 한계도 드러냈다.

조선일보가 정리한 역사는 자사에 유리한 내용 위주로 짜깁기한 ‘가공된 사실’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조선일보의 일상적인 기사가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앞서 사과했던 일부 오보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다루지만 본질과는 멀고, 의도를 갖고 왜곡된 기사를 썼다는 게 조선일보가 비판받아온 주요한 이유다. 시사IN이 실시한 2019년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결과에서 가장 불신하는 언론매체를 순서대로 2곳 답해달라는 질문에 조선일보가 28.5%로 1위를 기록했다.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 100주년을 맞아 100가지 장면을 꼽았다. 100번째 장면은 45년 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소속 성한표 기자를 조명했다. 그는 2019년 조선일보의 ‘반민족 친일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전 국민의 분노 앞에 마주할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권력에 맞서 해직기자가 된 그는 백발이 된 지금까지도 거리에 있다.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은 3월 5일 오전 11시 강제해직 기자들의 규탄 성명을 발표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조선일보와 동화면세점 사이 원표공원에서 조선일보의 역사를 전시한다.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일보의 ‘이면’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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