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10일 대우차 부평공장 앞을 막아선 전투경찰은 노조 사무실 출입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간 350명의 노조원을 방패로 마구 내리 찍었다. 노조원 45명이 얼굴이 함몰되고 뼈가 부러지는 심한 부상을 입었다. 유혈이 낭자했다.

당연히 이 장면은 ‘9시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90년대 였으면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1998년 ‘PC통신 참세상’으로 출발한 참세상뉴스가 있었다. 대안언론 참세상은 경찰 방패에 찍혀 피가 철철 흐르는 영상을 온라인에 그대로 공개했다. 이후 참세상은 수많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고공농성에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들 새벽녘 참세상에 전화해 한강대교, 목동전화국, 교통관제탑 몇시라고 알려왔다. 그러나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SNS로 자신의 싸움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날, 참세상 영상의 효용가치는 줄었다. 오히려 주류 언론이 SNS 내용을 재빨리 취재해 단독을 챙겨간다.

▲ 2001년 4월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전투경찰이 집달관을 대동한 변호사와 대우차 노조원을 집단 폭행했다.  사진=참세상
▲ 2001년 4월10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전투경찰이 집달관을 대동한 변호사와 대우차 노조원을 집단 폭행했다. 사진=참세상

그 사이 노동단체도 힘이 세졌다. 20만명 넘는 산별노조도 생겼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공장 정규직노조나 큰 산별노조는 일이 생길 때마다 신문에 의견광고를 냈다. 이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신문에 광고 내는 게 하나의 전술이 됐다. 요샌 광고료를 모금으로 마련하기도 한다. 이들 광고는 열에 아홉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으로 간다.

지난 토요일 세월호 단원고 희생 학생의 아버지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겨레(13면)와 경향신문(10면)만 월요일 아침신문에 이 소식을 실었다. 이처럼 두 신문은 소수자의 의견광고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노동단체 입장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의견광고는 과연 도움이 될까. 십수년 전 큰 산별노조에서 일할 때 대공장 정규직노조들이 때만 되면 신문 의견광고를 잡아달라고 했다. 한번에 1000만원 넘는 광고료를 사용할만큼 중요한 일이긴 해도 효과면에선 수긍이 안 갔다. 두 신문 구독자라면 이미 그들 의견에 동의할 건데 왜 광고까지 낼까 싶었다. 그 노조간부는 내게 “노조 집행부가 안 놀고 ‘뭐라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조합원용 알리바이”라고 했다. 이렇게 의견광고는 1인시위, 진정, 고소고발, 항의면담, 언론 기고, 회견, 집회처럼 노동계 투쟁 전술의 고정 매뉴얼이 됐다.

뉴스1이 몇 달 전 파업 첫날 노조 조끼를 입은 40여명의 철도노조원이 서울역 인근 식당에서 ‘고성방가 술자리’를 가졌다고 비판 보도했다. 기사를 본 노조간부가 화가 잔뜩 나 내게 하소연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사회적 약자의 30년 전 농성은 신성했다. 절박해서 시위하는 사람이 농성장에서 술을 마시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새벽 2시가 넘어 시민들 발길이 뜸해지면 천막 뒤에서 조용히 맥주 한 잔씩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요샌 텀블러에 술을 담아 출장가는 KTX 안에서 마시는 노동운동가도 봤다. 100명만 모여 소리쳐도 쩌렁쩌렁 울렸는데 절박함이 없다보니 수천명이 모여 소리쳐도 마이크 잡은 사회자 목소리만 들린다. 30년 사이 마이크 성능만 좋아졌다.

반면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노조 위원장들 재미도 내용도 1도 없이 지루하게 땡고함만 치는 연설 잔뜩 듣고, 50~60대만 감동하는 노래만 듣고 오는 전국노동자대회는 30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변해야 할 건 그대로인데, 변하지 말아야 할 것만 바뀐다. 오늘도 1인당 몇천원 내서 신문에 의견광고한다는 노동단체 안내문을 받았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7월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이 지난해 7월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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