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서울 양천구의 한 공공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 또래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다. 새 집에 사는 기쁨도 잠시 부족한 살림살이 정보에 머리는 김을 내뿜기 바빴다.

그러던 차에 이 임대아파트 주민 200명이 참여하고 있는 익명의 오픈 채팅방에 가입하게 됐다. 이웃 간 실시간 공유되는 살림 정보에 시름을 덜어낼 수 있었다.

▲ 채팅창 분위기가 무겁게 바뀐 건 지난 26일이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에서 확진자로 판명된 2명이 집 앞 서울시립 서남병원으로 이송 조치됐다. 사진=김도연 기자.
▲ 채팅창 분위기가 무겁게 바뀐 건 지난 26일이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에서 확진자로 판명된 2명이 집 앞 서울시립 서남병원으로 이송 조치됐다. 사진=김도연 기자.

채팅창에서도 관심은 코로나19다.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웃의 안부를 묻곤 했다.

채팅창 분위기가 무겁게 바뀐 건 지난 26일이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에서 확진자로 판명된 2명이 집 앞 서울시립 서남병원으로 이송 조치됐다.

관련 소식을 다룬 언론 보도가 채팅창에 공유됐다. 누군가는 확진자가 들것에 실려 병원 안으로 이송되는 사진을 직접 찍어 게시하기도 했다.

입주자들은 동요했다. 물론 “너무 걱정하지 말자”라는 글도 있었지만, “난리 났다”, “최악이다”, “강남에서 여기를 왜 올까”, “무섭다”, “싫다. 너무 싫어요” 등에서 알 수 있듯 짧은 말에 담긴 공포는 빠르게 전염됐다.

그러던 중 한 입주자 말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마음 같아선 고생하고 있는 서남병원 검역관 분들에게 십시일반 모아서 간식이라도 배달하고 싶은데….” 이어 “저도 하고 싶어요!”, “모금하시면 저도 참여할게요” 등 지지와 동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 한 입주자 말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마음 같아선 고생하고 있는 서남병원 검역관 분들에게 십시일반 모아서 간식이라도 배달하고 싶은데….” 채팅창 분위기는 공포에서 응원으로 180도 바뀌었다. 사진= 김도연 기자.
▲ 한 입주자 말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마음 같아선 고생하고 있는 서남병원 검역관 분들에게 십시일반 모아서 간식이라도 배달하고 싶은데….” 채팅창 분위기는 공포에서 응원으로 180도 바뀌었다. 사진= 김도연 기자.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에너지바, 포도당캔디, 비타민C, 홍삼스틱이 지원 물품으로 제시됐고 이참에 응원을 담은 현수막도 걸자는 제안도 나왔다.

실제 서남병원 선별진료소 측은 입주자들 질의에 호응하며 물을 포함한 음료, 환자들에게도 필요한 물티슈 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서남병원 고객지원팀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주민 분들이 전화를 주셔서 먼저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며 “일반적으로 환자 분들이 늘어나면 물티슈 등과 같은 물품이 부족하다. 직원뿐 아니라 환자들도 필요한 물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 분들께서 다시 의견을 나눠보시고 병원의 행정 지원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곧 송금 서비스 앱을 통해 모금이 시작됐다. 50여명의 입주자들은 “의료진 분들 힘내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서남병원 직원 분들 힘내세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잘 이겨내요” 등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5만원의 작은 마음을 송금했다.

3시간 만에 60만원을 돌파한 성금은 27일 오전 11시 기준 80만원을 돌파했다. 현재는 채팅창에서 지원 물품을 어디서 살지 논의 중이다.

“큰 마트 말고 소상공인을 통해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요즘 소상공인들 힘드셔서 주문하면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을 거 같아서.”

▲ 내 이웃들은 병원 의료진들을 위해 돈을 모았고, 지원 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진=김도연 기자.
▲ 내 이웃들은 병원 의료진들을 위해 돈을 모았고, 지원 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진=김도연 기자.

‘풍족하진 않아도 따뜻한’ 내 이웃 이야기를 전한 이유는 단지 미담에 있지 않다. 공포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사회적 연대로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공감대를 확인하고 공포를 극복할 의지를 서로 확인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정치와 언론이 못하고 있는 역할이다. 지금도 “중국 안 막고 대구 왜 막나” 식의 보도가 흘러나온다. 불신과 갈등을 남기는 ‘정치공세’에 가깝다.

어떤 언론은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방문해 중국인들이 위생에 둔감하다며 편견을 잔뜩 부추겼다. 이 지역 확진자는 현재까지 0명이다. 구독 신청을 하면 마스크를 제공한다고 선전했던 일부 언론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웃들의 대화는 사회가 그래도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치와 언론도 지금보다 나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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