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에 확산하면서, 독자들이 감염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면을 틈타 사회 현안에 대한 비판을 입막거나 재계 숙원을 관철하려는 보도가 기승이다.

조선일보는 26일 사회면 머리에 “멈춰선 닭공장… 코로나 아닌 민노총에 운다”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현재 닭 생산업체인 마니커의 직접계약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생닭·냉동닭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전면파업 탓에 공장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닭 공장 관계자들이 ‘민주노총 파업 때문에 운다’는 내용으로, 본문에 ‘코로나’ 단어는 없다.

조선일보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마니커분회 조합원들이 “경찰을 아랑곳 않고 폭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며 “점거 시위로 동두천 공장이 보름째 사실상 봉쇄되며 닭고기 생산·유통이 중단됐다”고 했다. 신문은 그 배경으로 “생닭과 가공품의 운송 전반을 위탁받은 M기업은 화물연대 조합원 62명에게 일을 맡겼다. 그러나 화물연대 측은 이를 거부하고 마니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과 함께 공장 입구를 점거하고 반입·반출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26일 조선일보 14면 머리기사
▲26일 조선일보 14면 머리기사

제목엔 ‘코로나’, 본문엔 폭력성 부각

조선일보는 정작 노조가 직접계약을 요구하며 파업한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마니커분회는 물류회사인 무림통운(‘M기업’)이 조합원에게 물량을 임의로 차별 배분하고 닭 운반 케이스 사용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에 반발해 화주인 마니커와 직접계약을 요구한다. 마니커는 이달 직접계약을 합의했지만, 약속과 달리 무림통운과 계약을 연장하면서 조합원들은 계약 해지됐다. 마니커 측은 노조가 10일 파업에 들어가기 이틀 앞서 공장에 용역을 배치해 충돌이 빚어졌다.

조선일보는 한 경찰이 조합원이 던진 페트병에 맞아 안경이 깨졌다고 했다. 신문은 한 조합원이 용역에 밀려 넘어지면서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신문은 화물노동자들이 ‘한달 1000만원 번다’고도 했는데, 화물연대에 따르면 매출 700만원에서 주유비와 차 할부금 등을 제하고 남는 수입은 350만원 선이다.

손지승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해당 보도는 파업을 왜곡하고 있다. 게다가 본문과 아무 관련이 없는 코로나를 제목에 언급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파업에 대해 이유 없는 불쾌감을 유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별연장근로 확대 비판에 ‘비상시국 눈감나’

보수‧경제지는 코로나19 국면을 들어 특별연장근로 확대에 대한 노동계 반발을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지난 19일,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지 않아도 될 사유를 대폭 늘린 지난달 말 정부 조치가 위법하다며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매일경제‧서울신문‧서울경제‧조선일보‧한국경제가 양대노총의 제소에 “코로나에도 강행” “코로나 비상인데” “비상시국에 눈 감은 양대노총” 등 표현을 써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7일 사설에서 “(민주노총) 태도는 준국가재난상태라는 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이런 식으로는 노동자들 권익도 보도하기 어렵다”고 했다.

노동계는 기존의 선택‧탄력‧재량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를 이용해 일감이 몰리는 시기에 대처할 수 있으며, 정부 조치는 노동시간 단축 무력화라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사태에 오히려 노동자 휴무를 장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특별 휴무’를 추진하는 등 인원이 밀집된 상황에서 노동과 출퇴근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왼쪽 위부터) 지난 20일 매일경제·한국경제·조선일보 보도
▲(왼쪽 위부터) 지난 20일 매일경제·한국경제·조선일보 보도
▲ 26일자 중앙일보 B1면(위)과 B3면.
▲ 26일자 중앙일보 B1면(위)과 B3면.

중앙일보는 26일자 경제섹션 1면과 3면에 각각 재계가 그동안 요구해온 규제완화 민원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경제섹션 1면 ‘코로나로 배송대란인데… 배달까지 막는 의무휴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월 2회 의무 휴무하는 대형마트가 휴무일에도 온라인 주문이나 배송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는 그동안 대형마트업계가 요구해온 내용이다. 또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오전 0~10시까지인 영업금지시간도 풀어달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26일자 경제섹션 3면에도 ‘백신 개발하다 유행 끝난다…신속임상 절차 왜 한국만 없나’라는 제목으로 임상시험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기사를 실었다. 있는 규제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코오롱 인보사 사태를 겪은지 얼마나 지나지 않았는데 의료계 규제완화 목소리를 코로나 사태에 기대어 여과없이 보도했다. 

경제지 사설들 “이참에 원격의료 확 풀자”

일부 언론은 원격의료 전면 시행을 주문하고 나섰다.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겠다며 지난 24일부터 모든 병‧의원에서 환자가 의사의 전화 상담·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특례 조치했는데, 경제지는 오히려 한시적 적용을 비판했다.

한국경제는 24일 사설 “‘보건안보’ 위해서라도 원격의료 한시허용 아닌 전면시행해야”에서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 노인, 만성질환자와 어린아이들은 지금 같은 긴급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원격의료 허용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도 사설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거듭 일깨우고 있다. (…) 언제까지 원격의료 본격 시행을 주저할 것인가”라고 정부를 재촉했다. 서울경제도 사설 “이참에 원격의료 규제 확 푸는게 어떤가”를 냈다.

정부의 한시 허용이 코로나 확산을 저지할지부터 의문이다. 전화로는 정확한 진료와 현황 파악이 어려워서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을위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조치는 대학병원 급 대형병원에서, 그것도 병원에 안 오는 게 좋을 것 같은 극히 일부 환자를 제외하면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감염 여부를 알려면 검체 채취 등 대면이 필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대표는 “정부가 ‘보건안보’를 생각한다면 특별휴무․유급휴가‧돌봄병가 등을 추진하고, 감염병 사회적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시설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왼쪽 위부터) 24일 한국경제·13일 서울경제·24일 매일경제 사설
▲(왼쪽 위부터) 24일 한국경제·13일 서울경제·24일 매일경제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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