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방송은 누구겁니까? 예전에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24일 경기방송 이사회가 방송허가권 반납 및 지상파방송사업 폐업을 결의하는 유례없는 결정을 한 것이 알려지자 노광준 PD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힌 내용이다.

노광준 PD는 지난해 8월 당시 현준호 총괄본부장이 일본제품 불매운동 비하 발언을 했다고 폭로해 윤종화 기자와 함께 지난 11월 해고 당했다. 경기방송은 왜곡된 내용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본부장을 포함한 회사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노광준 PD와 윤종화 기자는 6개월 동안 해직 상태에 있다 경기방송 폐업 소식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3월 2일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판단을 앞두고 있어 복직 기대가 컸는데 돌아갈 직장이 사라진다.

노광준 PD는 페이스북에서 “경기방송은 방송사업 말고도 외식사업이나 건물임대, 각종 행사기획 등이 있는데 그거까지 다 닫겠다는 건지 아니면 방송만 안하겠다는 건지, 수원 영통에 자리 잡은 사옥의 부동산 가치와 꽤 많이 축적된 사내유보금 등, 그동안 방송사업을 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그 많은 재산적 가치들은, 한순간에 그 많은 직원들 실업자로 만든채 누가 누구에게 나눠갖는다는건지, 그게 맞는건지”라고 썼다.

스스로 방송허가권 반납하겠다는 결정은 지상파 민영방송사 중 경기방송이 최초다. 노사 갈등을 일으킨 곳은 많지만, 그렇다고 자진 폐업하진 않는다.

노광준 PD는 26일 통화에서 “도덕적으로 짚을 게 있다. 원래 경기방송 사옥은 팩토리월드라는 수원의 공장형 건물이었다. 2000년 사옥을 수원 영통으로 옮겼다. 이 부지는 상업시설이 들어갈 수 없었는데 저희는 방송사업이라 들어갔다”며 “방송이 없었다면 이 부지에 들어올 수 있었겠느냐. 방송을 전제로 영통의 금싸라기 땅에 들어와 생긴 시세차익을 방송 포기한 사람들이 나눠갖는 게 과연 정당한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광준 PD는 이사회가 폐업 결정을 내린 이유에 “방송을 안해도 부동산과 축적된 유보금을 활용해 임대사업, 외식사업, 미디어 사업 등을 계속할 수 있다”며 “말 안듣는 직원들 해고시키고 방통위 감독없이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 경기방송 로고.
▲ 경기방송 로고.

검찰 수사를 피하려는 자구책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추측도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경기방송 방송사업 재허가 문제를 놓고 재허가 거부와 조건부 재허가로 나눠 논쟁했다. 결국 △경영권을 실제 지배하는 자는 방송법에 따른 방통위 승인을 얻고 △대표이사 책임경영을 위한 정관 개정 및 공개채용 등 대표이사 선임 절차 마련하고 △재허가 이후 3개월 이내 주요 주주와 특수관계자가 아닌 사람을 독립적 사내이사로 위촉하고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3개월 내 경영투명성 제고 및 편성 독립성 강화하기 위한 경영개선 계획 제출 등을 조건으로 재허가했다.

다만, 향후 경기방송의 후속 조치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 중에 “현준호 전무이사가 2대 주주로부터 (경영권의) 포괄적 위임을 받았다는데 상법상 이사회는 대리 규정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전무이사가 위임을 내세워 불법 소지가 있다”, “(현준호가) 방송법상 실질적 경영권을 갖고 있는데 방통위에 신고도 않고 있다. 방통위에 낸 허위자료 제출도 수사 의뢰해야 한다”(김창룡 방통위원) 등 수사 결과에 따라 방송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광준 PD는 “12월 재허가 국면에서 이미 방통위 차원의 검찰 고발이 거론됐다. 그 상황을 피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닌지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를 중심으로 경영진에 문제제기가 쏟아진다는 점도 경기방송 사측에선 눈엣가시처럼 생각했을 수 있다. 경기방송은 현준호 전 총괄본부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기자 직군의 한 인사를 보도제작국장 및 편성책임자로 임명했다. 보도제작부장에는 타 매체에서 새로 영입한 기자를 임명했다. 경기방송 구성원은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두 사람의 자질 문제를 제기했고, 사측의 일방 인사 및 프로그램 개편안에 반발해왔다. 경기방송의 노사 갈등은 사측이 자초한 면이 크다.

경기방송 이사회 결의 사항이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노광준 PD와 윤종화 기자의 부당해고 소송 효력이 상실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노 PD는 “폐업하면 너희들 때문에 문까지 닫았다고 모든 책임을 돌리고 사측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여 또다른 노노갈등을 획책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노 PD는 “한번도 당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사측은 누구 탓으로 몰고 갈 것이다. 남은 동료들이 많이 힘들 것이다. 실제 폐업하면 방송만 하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는데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주가 폐업할 권리가 있어도 이런 식으로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문 닫는 게 허용돼서 되겠느냐, 너무 무책임하다”고 토로했다.

경기방송 주주총회는 3월16일 열린다. 경기방송은 50여 명의 주주들이 있다. 이들 중 과반수가 총회에 참석해 과반 찬성이 나오면 폐업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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