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54) 신임 MBC 사장은 25일 “어깨가 굉장히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회사도 어렵지만 나라가 더 힘든 상황 아닌가.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언론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사회 공포가 커지는 것에 “보도와 시사교양에다 전사적 대응을 주문했다”며 “시청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드려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는 보도는 경계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자영업자들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박 사장은 사장실 TV들을 직원들과 조정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타 방송은 무엇을 방송하고 보도하는지 한 눈에 살펴보기 위해서다. 지난 24일 임기를 시작한 ‘90년대 사번’ 박 사장은 ‘젊음’을 무기로 사장 출마 의지를 밝혔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는 지난 22일 박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했다. 방문진의 한 이사는 기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있었다. 타 후보들보다 젊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변화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봤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마주할 방송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MBC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사장 출마부터 면접까지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주요 임원 나이를 무조건 낮추겠다는 건 아니다. MBC는 20여분의 국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이들 국장은 다소간 젊어질 것이다. 하지만 고위 임원들 가운데 저보다 선배도 계실 것이다. 좋은 분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임원 숫자는 줄일 것이다.”

- 전임 최승호 사장이 24일 구성원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따로 나눈 말씀이 있나?

“최승호 선배가 ‘네가 내 뒤를 잇게 되어 든든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인사에 대한 조언도 많이 주셨다. 어제 후배들 박수 속에 떠나셨다. 지난 2년 고생만 하시다 가신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최승호 사장 시절 MBC 뉴스와 시사 부문의 저널리즘은 크게 도약했다. 예전 위치를 되찾았다고 평가한다. 보도국장으로서 최 사장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 MBC의 경영 적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조업에 비유하면 MBC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게 우선이다. 이 공장 엔진은 드라마와 예능이다. 예능은 많이 회복했다. 결국 드라마 문제다. 사장 면접에서 자본을 유치해 대규모 드라마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그곳에 우리 드라마 PD들을 보내야 한다는 (타 후보자) 공약도 있었는데, 이 방안은 자동차 엔진을 밖으로 빼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효율적이다. (스튜디오드래곤과 같은) 외부 스튜디오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우리 내부에 이식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1인 PD’에 모든 걸 맞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 사장 면접에서 ‘PD 중심 체제’에서 ‘드라마 기획팀 체제’로 전환을 강조했다.

“드라마 부문은 팀별로 움직여야 한다. 연출 PD는 나중에 찾아도 된다. 매력 있는 원작과 능력 있는 작가를 확보한 뒤 이를 잘 연출할 수 있는 PD를 찾아도 늦지 않다. 팀제 운영을 새 드라마 책임자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디지털 광고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중요하다. 사내 핵심 인력을 집중 배치시켜 전략을 짜고 시행할 것이다. 신사업TF를 사장 직속 기구로 출범시키고 전 세계를 돌며 새 먹거리를 찾을 것이다.”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 사장은 임기 내 중간광고 등 차별 규제 철폐를 주장했다.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다.

“국민이 납득해야 한다. 단순히 MBC가 어렵다는 걸 알리는 것 이전에 공영방송으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시청자위원회를 MBC 국민소통센터로 확대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연장선에 있다.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만나야 한다. 또 정책 면에서 MBC를 도와주실 분들과도 교류해야 한다. 대관 업무 강화도 필요하다.”

- 사장 후보자들 공약에서 비정규직 상생 문제 등 사회적 가치 정책을 찾긴 어려웠다. 다들 수익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내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전임 경영진은 표준계약서 작성 등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비정규직 처우 부분에서 상생의 자세를 잃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개선해 나가겠다. 관련 노동·시민단체와의 만남도 주저하지 않겠다. 다만 정규직을 포함해 사내 조직에 비대한 영역도 있는데 그 부분은 슬림화가 요구된다. 이전 경영진부터 진행한 조직 슬림화다.”

- 조직 혁신을 위해 언론노조 MBC본부의 협조와 협력이 필요하다.

“회사의 어려운 상황에 비춰봤을 때 고통분담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나왔던 노보와 젊은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조나 구성원들도 고통분담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 비전과 전략을 요구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이를 테면 조직에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 것에 불만이 크다. 이런 요구들을 포함해 노사 테이블에 여러 안건을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생각이다. 노조도 여기에 호응해주실 거라 기대한다.”

- 사장 면접에서 방문진 야당 이사들은 박 사장의 이념을 지적했다. 이를 테면 ‘박성제는 과격하다’는 식이다. 내가 아는 박성제는 ‘시장에서 먹히는 걸 아는’, 좋게 이야기하면 실용적인, 비판적으로 보면 대중 추수적인 성향인데? 

“노조위원장에 해직 기자 출신이다보니 ‘강경하다’거나 ‘왼쪽에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전혀 아니라는 걸 MBC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다만 이렇게 가야겠다 결심이 서면 빠른 속도로 추진한다. 뉴스 와이드 편성도 후배들 우려 속에 강하게 추진한 사안이었다. 그 과정이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다고 자부한다. 강형철 숙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사장 임명 소식에 ‘박성제는 유연한 현실 감각과 과단성 있는 개혁 의지가 있다’고 평가해주셨다. 그게 맞는 평가 아닐까.(웃음)”

- 사내 구성원과 소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보도국장 때 국장실 없애고 보도국 한가운데 앉아 일했다. 사장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장이 되진 않을 것이다. 사원과 노조는 물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외부의 분들도 자주 찾아뵐 것이다. 보도국장 때처럼 많은 스킨십을 가져갈 것이다.”

- 파업으로 사내 구성원 간 갈등이 있다. “적폐 청산 슬로건 거둘 때가 됐다”는 발언이 많이 보도됐다.

“언론이 그 부분을 특히 강조한 면이 있지만 방향은 그렇다. 최승호 사장이 이미 적폐 청산을 많이 이뤄 놓으셨다. 이제는 한 몸으로 위기를 돌파할 때다. 이 문제로 쓸데없이 동력을 훼손시킬 생각은 없다. 다만 불합리한 우리 내부 관행은 혁파해야 한다.”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성제 신임 MBC 사장이 25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계약직 아나운서들 판결이 3월 초에 있다.

“1심 판결이 나오면 판결대로 이행할 것이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희망사항과 기존 아나운서들의 요구도 듣겠지만 중요한 것은 판결이다. 지금처럼 사무실에 내버려두는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계약직 아나운서)도 ‘나는 무조건 아나운서만 할 거야’라고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판결에 대한 승복과 이행이다. 판결을 봐야 한다.”

- MBC 지역사·자회사 임원 선임 문제도 과제다.

“회사의 재정 상황에 따라 요구 수준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노조위원장 때보면, 지역 MBC 문제가 터지면 사장이 아닌 본사 노조위원장이 지역사를 방문하곤 했다. 본사 사장 역할을 노조위원장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가 생기면 현장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지역 MBC 이슈가 본사에 앉아 전화로 보고받고 말 문제는 아니다. 이번 면접에서 ‘원 MBC’를 공약으로 던졌다. 유연한 인력 운영 등 지역사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일종의 화두인데 논의는 앞으로 계속할 것이다.”

- MBC 보도 편향성 문제가 있다. 야당이나 보수 신문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지난해 조국 사태에서 ‘친조국’ 편향이었다는 지적이다.

“보수 야당이나 언론을 중심으로 MBC 뉴스가 한쪽만 대변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데 난 생각이 다르다. 이를 테면 우리는 조국 국면에서 검찰 주장은 재판에서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 검찰 받아쓰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민들에게 선입견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 일부가 논박당한 것으로 안다. 그런 보도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신뢰도가 상승한 것이다. JTBC가 지금도 신뢰도 1위인 걸로 아는데 우리가 1위 탈환할 자신이 있다. 시청자는 기자보다 똑똑하다. 시간이 지나면 보도는 검증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자들은 발로 뛰어서 보도해야 한다. 뉴스데스크의 클럽 버닝썬 탈법 보도, 사립 유치원 비리 보도, 노동자 고 김용균 보도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시청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지난 2년 노력을 알아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 ‘만나면 좋은 친구’ 마봉춘이 돌아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임기 동안 헌신을 다할 것이다. MBC 저널리즘을 굳건히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경영도 제자리에 올려놓을 것이다.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구성원을 포함해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수하면 혹독하게 꾸짖되 애정을 가져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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