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인터넷회선 감청(패킷감청) 관련 법안에 문제를 지적했던 정보인권단체가 대안을 반영해 법안을 발표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24일 대표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다. 정의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상 감청제도가 법원으로부터 허가된 범위를 넘어 남용될 수 있다며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국정원 패킷감청 사건’ 관련이다. 헌재는 오는 3월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송기헌 의원이 최근 정부와 협의한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시민사회는 정부안에 ‘법원이 정보수사기관 감청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해왔다.

시민사회가 ‘정부안 졸속처리’를 반대하며 마련한 개정안은 수사기관에 의해 감청이 남용될 수 있는 문을 닫는 게 골자다. 우선 ‘범죄 예방’을 위해 감청을 허용한 예외를 삭제했다. 감청으로 취득한 자료의 보존·폐기 규정을 만들어 ‘사생활 정보’ 취득 시 즉시 삭제·폐기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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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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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감청 자료의 보관과 감청당사자 구제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감청자료는 기록매체에 저장해야 하며 감청종료 시 봉인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법원은 제출된 기록 매체를 10년 동안 보관하며 수사기관은 필요한 자료 복사를 법원에 청구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감청 당사자 또한 본인에 대한 감청집행 적법성 심사를 청구할 경우 기록 매체 복사를 청구할 수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에서 감청 98~99%는 국가정보원에 의해 이뤄진다. 감청 결과가 수사 증거로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자에 대한 타깃 감시 모니터링, 사찰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며 “패킷감청은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메일·메신저를 주고받거나 인터넷 쇼핑·서핑하는 모든 것이 기록된다. 정부안은 정보수사기관 감청을 객관적으로 통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에서 졸속적으로 통비법을 통과시켜선 안 되며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충분한 기간을 두고 심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채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도 “통신자료나 감청자료에 대해 법원에 의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즉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이 이 사람이 범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감청신청하면 다 허가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팀장은 “패킷감청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돼서 국민 사생활이 침해된 사건이 있었고 위헌 결정을 받았음에도 제대로 고치는 게 아니라 미봉책으로 지금 정부는 통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여전히 패킷감청은 제한 없이 허용될 것이고 사생활, 내밀한 개인정보들이 사실상 사찰수준으로 확보되는 일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 법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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