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수사기관이 감청을 남용할 여지를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등 6개 정보인권단체들은 법안이 졸속처리되지 않도록 충분한 심의가 필요하다고 21일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은 지난 정부 정보기관들의 불법감청 논란으로 개정 필요성이 대두됐다. 일례로 국군기무사령부가 전파관리소를 동원해 일반시민을 무작위 감청하고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만들어 불법감청을 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이른바 ‘국가정보원 패킷감청(인터넷회선감청)’ 사건과 관련해 통신비밀보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현행 감청제도가 특정 범죄수사를 위한 최후의 보충적 수단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특정인 동향파악 및 정보수집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고 봤다. 오는 3월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관련 조항의 법적 효력이 사라진다.

이에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정부와 협의해 만든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2월국회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인터넷회선 감청으로 취득한 자료는 집행 종료 후 범죄수사나 소추 등에 필요한 자료를 선별해 법원으로부터 보관 등 승인을 받고, 승인 받지 못한 자료는 폐기 후 폐기결과보고서를 수사기록이나 내사사건기록에 첨부하는 것이 골자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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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보인권단체들은 정부안에 △패킷감청 제한 없음 △전체 감청이 아닌 범죄수사를 위한 인터넷회선만 통제 △범죄예방 및 장래사용을 위해 감청자료를 보관하도록 해 남용 가능성 △감청 당사자가 감청자료를 열람하고 감청집행의 적법성 심사를 받을 기회 부재 △정보수사기관의 신설조항 위반 시 처벌조항 부재 등 문제가 있다고 봤다.

특히 정부안 중에서도 감청자료를 장래의 ‘사용을 위하여’ 보관하게 한 예외조항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청 결과를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한 조항 또한 함께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궁극적으로 패킷감청만이 아닌 모든 수법의 감청을 통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정부안은 헌재 결정문에 소개된 해외 입법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미국은 법원이 요구하는 경우 수사기관이 주기적으로 감청집행 경과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감청자료 보관·파기 여부는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수사기관은 법원에서 허가한 요건이 존재하지 않으면 감청을 지체 없이 종료해야 하며, 감청집행사실을 통지받은 당사자는 통지받은 때로부터 2주 안에 법원에 감청의 적법성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일본도 법원이 허가 요건에 맞지 않는 감청처분을 취소할 수 있고 당사자는 법원을 통해 감청 여부 확인 및 통신감청 관련 처분에 불복할 권리를 갖는다.

정보인권단체들은 “정부안은 정보수사기관 감청을 객관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제대로 반영하였다고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집행의 전체적 자료 남용 우려를 해소하거나 인터넷회선감청을 통제하기 위하여 소개된 해외 선진 입법례를 충실히 검토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며 “올바른 정보기관 감청 통제 제도 신설을 위하여 충분한 심의가 필요한 바 2월 임시국회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정부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한다. 국회는 감청 통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 앞에서 정보기관의 감청이 올바르게 통제되기를 바라는 국민적 우려와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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