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 기수가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폭로하며 세상을 떠난 지 86일 째다. 문 기수 유가족들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사망) 100일이 되기 전 진상을 밝히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21일 서을 여의도 국회에서 고인의 배우자인 오은주씨와 장인 오준식씨를 비롯해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소속 종교계 인사들이 이 원내대표를 만났다.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일했던 문 기수는 지난해 11월29일 마사회의 부정 경마와 조교사 채용 비리를 비판하는 세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마사회와 마주 및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 부상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말에 올라야 했던 현실, 마방(마구간)을 배정받기 위한 마사대부심사 부정 등에 관한 의혹이 적혀 있었다. 고인은 유서에 “혹시나 해서 복사본 남긴다. 마사회 놈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라는 자필 문장과 함께 유서 복사본을 남겼다. 15년차 기수였던 고인의 나이는 만 41세. 유족은 진상규명 등 요구사항이 해결될 때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인의 운구차는 서울 정부청사 옆 시민분향소 인근에 멈춰 있다.

이날 면담에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문중원 열사 죽음을 불러일으킨 직접적 원인이 된 부정과 비리 당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제도개선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적극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대안을 만들어줄 것 등을 촉구했다. 면담에 참여한 송경용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는 “특히 유가족께서 가장 강하게 요구한 문제는 직접적인 책임 당사자인 김영철 부산경마처장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 책임을 묻는 행위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이라 강조했다.

▲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유서에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기수의 유가족들이 21일 국회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 부조리를 유서에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기수의 유가족들이 21일 국회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송 공동대표는 이 원내대표 답변에 관해 “안타깝게도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상황 자체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상황 전반에 대해 파악하고 조만간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시민대책위는 이 원내대표 면담을 추진한 이유로 “집권당의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지금 잘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에 조정능력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정부와 마사회, 국회를 조정해 줄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장인인 오준식씨는 “(사태가) 100일까지 간다는 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내 몸을 불살라서라도 100일에는 안 가게 하겠다. 마사회 적폐를 해체해야 한다는 게 유가족 결의다. 우리 딸이 몸무게가 6kg이나 줄었다. 아이들도 보고 싶어 한다. 많이 보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한 뒤 “지금까지도 마사회는 이틀, 삼일 전에도 부산 기수들 불러서 압박하고 인신공격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라 주장했다.

유족들은 한편 코로나19가 확산 중인 상황을 고려해 주말로 예정된 집회와 ‘죽음을 멈추는 문중원 열사 희망버스’ 운행을 연기하기로 했다. 경마장이 위치한 과천에서 확진자가 나온 만큼 경마 역시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공동대표는 유족을 대신해 “본인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 상황으로 인해서 국민이 함께 겪는 고통이 가중되지 않도록 해 달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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