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의 반도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비공개해달란 청구를 대폭 받아들인 중앙행정심판위원회 판단에 반발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이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부(안종화 부장판사)는 19일 반올림이 중앙행심위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결정 취소재결 취소’ 소송에서 기각 판결했다.

이 소송은 반올림이 중앙행심위를 상대로 냈지만, 사실상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다툼이었다. 재판은 삼성전자가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작측 보고서) 공개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청구한 행정심판 결과를 놓고 진행됐다. 작측 보고서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을 조사한 자료로, 노동부에 보고된다. 반도체 사업장의 유해인자를 측정한 유일한 자료라 노동자의 산업재해 입증 과정에 결정적이다.

앞서 노동부는 2018년 3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삼성전자 기흥·화성 △삼성SDI 천안 등 4곳 사업장의 작측 보고서를 공개 결정했다. 노동부는 당초 산재 심사‧소송에서 삼성과 같이 작측 보고서 제출을 거부해왔으나, 반올림이 정보공개소송을 내고 2018년 2월 삼성전자 온양공장 보고서를 공개하란 판결이 나오며 노동부는 다른 사업장 작측 보고서도 공개결정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4곳 사업장의 작측 보고서가 미처 공개되기 전, 2018년 3월 결정취소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중앙행심위는 같은 해 7월 삼성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해 4개 사업장 작측 보고서의 △측정위치도 △화학물질 이름 △측정대상 공정을 비공개하도록 재결했다. 반올림은 같은해 10월 작측 보고서가 노동자의 생명‧안전 보호를 위해 공개돼야 한다며 재결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반올림은 재판에서 작측 보고서가 공정기술에 관한 문서가 아니라 사업장 내 유해성을 확인하는 문서로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정보공개법과 판례상, 설령 영업비밀이라도 사람의 생명·신체·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가 필요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2017년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사진=변백선 ‘노동과 세계’ 기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017년 2월1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 당시 보인 방진복 전시. 사진=변백선 노동과세계 기자

삼성 측은 작측 보고서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다. 작측보고서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며 영업비밀 요건이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행정심판을 제기한 직후인 2018년 4월 산업통상자원부에 작측 보고서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이 소송은 삼성이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이 논쟁은 입법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작측 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다음달, 국회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비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상정됐고 이듬해 통과돼 ‘삼성 청부입법’ 논란이 일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들 4곳 사업장에선 23명의 노동자가 산재 심사‧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판결에 직접 영향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올림은 항소할 예정이다. 조승규 반올림 상임활동가(노무사)는 “황당하고도 화나는 판결이다. 공개판결이 나온 노동자 생명‧건강에 대한 자료가 이 시점에 비공개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법원의 온양공장 공개 판결과 지금 비공개 판결의 차이는 국가핵심기술 지정뿐이다. 이달 21일 산업기술보호법 시행 전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법 시행 뒤 파장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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