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익히 듣고 봐온 장면들이지만 외국인에겐 믿기지 않을 이야기다. 작가가 지어냈다면 허무맹랑하다는 평을 받았을 만한 실화다. 

그날 오전 8시52분, 119상황실과 한 승객(고 최덕하 군)의 통화내용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119상황실입니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할 거 같아요.”
“배가 침몰해요?”
“우리 제주도 가고 있었는데, 여기 지금 배가 한쪽으로 쓰러진 거 같아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타고 오신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예요? 아니면 옆에 있는 다른 배가 침몰한다는 소리예요?”
“저희가 탄 배요”
“위치 말해주세요 위치, 지금 배가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지금 잘 모르겠어요 여기”
“위치를 모른다고요? 거기 뭐 GPS 경도하고 위도 안나옵니까? 배 이름이 뭡니까?”
“세월호요, 세.월.호.”

고등학생 325명을 포함 476명을 태우고 2014년 4월15일 밤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배였다. 배가 기울어 커튼이 창문에 닿지 않던 16일 오전 8시56분, “현재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학생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지하철에서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조금만 있어달라고’ 그래서 좀만 있었는데 나간 사람들만 살고…” 이 대화가 현실이 됐다. 

▲ 영화 '부재의 기억'의 한 장면
▲ 영화 '부재의 기억'의 한 장면

 

세월호 승무원은 청해진해운 관계자와 7차례 통화했고, 이중 선장 이준석이 선사와 통화한 내용도 있었다. 세월호는 진도VTS와 31분 교신했다. 9시47분경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해양경찰 배를 통해 탈출했다. 배가 거의 물에 잠겼을 10시28분경 해경들은 현장 헬기에서 한 두명 구조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위험 속에 내려가 현장을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대화를 나눴다. 그래야 “나중에 공을 세울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5편 중 하나에 오른 영화 ‘부재의 기억’은 29분쯤 되는 길지 않은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기록, 생존자와 잠수사 등의 인터뷰를 연결해 내레이션이나 배경음악의 힘 없이 국가가 참사 현장에 부재했던 당시 기억을 복원했다. 참사 약 8시간 뒤,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의 부재, 국정운영 철학의 부재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박근혜. 사진=영화 '부재의 기억' 갈무리
▲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박근혜. 사진=영화 '부재의 기억' 갈무리

 

영화는 새로운 진실을 찾는 탐사보도물이 아닌 세월호유가족협의회와 4·16기록단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국가의 부재가 어떤 충격을 남겼는지 보여준다. 고인이 된 김관홍 잠수사의 생전 인터뷰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세월호 인양 직후 유족들이 선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자 유족들이 철망을 발로 찰 때 선 지키던 경찰 중 한명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감정을 절제했다. 

그럼에도 2019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 31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상영했을 때 서구인들도 ‘국가의 부재’에 공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카 후보작에 오른 것도 이 참사가 국제사회에서도 비판할 만한 사건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국내 일각의 목소리와 대비된다. 세월호 참사에 가슴 아파했지만 일련의 이야기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의 무뎌진 정서와도 비교된다. 

▲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 '부재의 기억' 그 못다한 이야기 귀국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김미나 어머니, 오현주 어머니, 이승준 감독, 장훈 위원장, 한경수 PD가 참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 '부재의 기억' 그 못다한 이야기 귀국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김미나 어머니, 오현주 어머니, 이승준 감독, 장훈 위원장, 한경수 PD가 참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승준 감독은 18일 귀국보고 기자회견에서 “수상에 실패했지만 호평을 받아 기쁘다”며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월호 얘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 김미나씨와 오현주씨도 참석했다. 4·16기록단 한경수 독립PD는 회견에서 “언론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수 있겠다는 심경으로 기록했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에는 사실상 언론의 역할도 부재했다는 걸 보여준다. 

‘부재의 기억’은 영어명인 ‘IN THE ABSENCE’로 검색하면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이 감독은 이 작품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배급사 등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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