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최근 정치권에서 이야기되는 ‘봉준호 생가’, ‘봉준호 동상’ 등에 대해 “죽은 다음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젊은 감독들의 기발하고 도전적인 영화가 나오기 힘들어보인다면서도 “재능있는 독립영화를 보면 곧 영화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4관왕을 차지한 후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기생충’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은 정치권의 여러 반응에 대해 “다 지나가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단,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와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등이 참석했다.

▲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간담회. 사진=정민경 기자
▲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간담회. 사진=정민경 기자

아카데미 수상 이후 한국에서 열린 이번 기자간담회에는 수백명의 기자가 몰렸다.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해서 끊이질 않았고 1시간 15분가량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기자 역시 많았다.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은 ‘왜 이 영화에 관객들과 세계가 열광하는 것 같느냐’는 질문이었다. 특히 ‘기생충’ 이전에도 봉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괴물’에서 빈부격차를 주제로 한 영화가 있었는데 왜 ‘기생충’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나온 것이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나 ‘괴물’에는 열차라는 공간, 괴물이라는 것 등 비현실적 요소가 있었는데 이번 기생충은 현실 기반의 분위기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 영화는 빈부격차에 대한 코미디적인 면이 있다.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씁쓸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적나라함을 피하기는 싫었다”라며 “어떤 사람들은 그 부분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영화에 ‘달콤한 장식’을 입히긴 싫었다”고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빈곤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때로는 희화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지적을 의식한 대답으로 보인다.

이어 봉 감독은 “‘왜 그렇게 이 영화가 인기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저의 업무가 아닌 것 같다”라며 “저는 다음 작품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업무이고, 왜 영화가 인기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자나 평론가, 관객 분들이 평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진원 작가는 같은 질문에 “‘기생충’에는 선과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없고 각자의 캐릭터가 각자의 사정이 있어 관객들이 여러 캐릭터에 연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차기작에서도 ‘빈부격차’를 다룰 것이냐는 질문에 봉 감독은 “차기작은 이미 ‘기생충’이 이런 반응을 얻기 전부터 기획된 것이라 평상시처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 당시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봉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개인적 편지가 왔는데, 편지 마지막에 ‘조금만 쉬어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때문에 조금만 쉬고 평상시처럼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19일 봉준호 감독이 참석한 영화 ‘기생충’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몰려든 취재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19일 봉준호 감독이 참석한 영화 ‘기생충’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몰려든 취재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봉 감독은 정치권에서 나오는 ‘봉준호 생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죽고 난 후 말해달라”며 “(정치권의 이러한 관심은)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고 본다”고 전했다.

봉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언급된 ‘예술인권리보장법’ 등에 대해서 봉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 지금 현실 같으면 어떤 감독이 ‘플란더스의 개’(봉준호 감독의 초기작)같은 시나리오를 가져오면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라며 “냉정하게 봤을 때 한국에서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작품, 모험적인 시도가 어려워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영화 산업이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최근 나오는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워낙 재능들이 꽃피우고 있어서 결국 영화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한진원 작가는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과 스태프에 대한 언급을 자주했다. 한 작가는 인사말에서도 “시나리오를 쓸 때 큰 도움을 주셨던 가사 도우미 분들, 수행 기사님들, 아동학과 교수님들 덕분에 좋은 장면들을 쓸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기자회견 말미에도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함께 촬영을 했던 스태프들의 단체 사진을 보여주면서 “스태프들의 덕분”이라고 감사인사를 남겼다.

이하준 미술감독 역시 “저희 스태프들이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들이 많지 않다”라며 “스태프들은 영화 뒤에서 많은 일을 한다. 이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저희랑 같이 일해주시는 수많은 아티스트와 스태프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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