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월29일자 ‘민주당만 빼고’ 칼럼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선심위)가 지난 12일 공직선거법 제8조 위반으로 보고 ‘권고’ 결정을 내렸다. 공직선거법 8조는 언론의 공정 보도 의무 조항을 담고 있다. 선심위 관계자는 “권고는 선심위의 제재 수위 가운데 수위가 가장 낮지만 엄연한 제재다. 공직선거법상 공정성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면서 “(선심위의) 유사한 결정은 앞으로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불필요한 칼럼 고발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선거기간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한국 사회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앞서 양홍석 변호사(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는 “선거법이 시민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만든다. 선거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법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옥죈다”고 우려했다. 

전북일보는 2012년 1월11일 ‘정동영 불가론’이란 칼럼을 게재한 뒤 권고 결정을 받았다. 19대 국회의원선거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백서에서 해당 결정을 두고 “내부 필진의 의견에 대해 언론사의 비평의 자유를 고려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제재를 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비평의 자유를 고려했다면 제재가 없는 것이 상식이라는 반론도 있다. 선심위 심의 기준은 선거법보다 더 수위가 높고 세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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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선심위 판단의 근거가 되는 공정성 조항을 두고 선심위 내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중재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선심위 규정 내에 있는 조항들이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공정성 조항 자체도 너무 추상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 논의는 정파적 입장에서 해당 칼럼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만을 따질 뿐, 법이나 조항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민주당만 빼고’ 칼럼 사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 비판이 ‘여당 또는 야당에 불리한 선거운동’으로 규정돼 선심위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각 진영은 상대를 비난하는 가운데 선관위의 유권해석만 바라보며 소모적 갈등을 이어가는 식이다. 앞서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중앙선관위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논란의 칼럼 필자인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신고했다. 한 시민단체는 “칼럼 고발 동기가 불순하다”며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문제는 ‘선거법’과 ‘심의제도’다. 2016년 총선에서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는 “단원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란 내용이 담긴 기사를 편집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에 따른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2월27일자 한겨레 ‘아! 김부겸’이란 칼럼은 김 후보를 우호적으로 평가했다는 이유로 ‘주의’ 결정을 받았다. 2019년 3월29일자 한겨레 ‘진보정치의 또 다른 봄바람’이란 기고 역시 특정 후보자에 대한 우호적 내용을 서술했다는 이유로 역시 ‘주의’를 받았다. 공직선거법 8조 위반과 선거기사 심의규정 4조(공정성) 위반이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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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선거법은 후보자를 감시해야 할 언론 보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어느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 공약이나 발언을 검증했을 경우 다음엔 똑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경쟁 후보의 공약이나 발언을 검증해야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심의 관계자로부터 들은 적 있다”며 “사실상 총선 기간에는 팩트체크가 무용지물이다.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있어도 선거법 때문에 검증이 어려워 아이템 선정에 제약이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7일 1면 머리기사로 “현행 선거법이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나 정치 활동을 옥죄어왔다”며 “모호한 규정 탓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에만 이목이 쏠리면서 유권자들은 침묵과 처벌의 갈림길에서 사실상 침묵을 강요당한다”며 선거법 개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 칼럼의 표현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판례상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뒤 “여당은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현행 선거 규제를 재검토하고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만 빼고’ 칼럼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선거보도 심의기구를 둘러싼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등의 경우 심의위원들이 심의 대상이 되는 특정 언론사와 이해관계가 있어도 결격사유가 아니다. 추천권이 있는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 현직 기자나 PD를 선임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셀프 심의’도 가능한 상황이다.

시대에 뒤쳐진 심의 조항도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월 인터넷 언론사에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 칼럼 게재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후보자 명의 칼럼 게재는 허용하면서도 특정 정당 및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후보자 명의 칼럼은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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