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채용성차별, 갑질 등 노동권에 반하는 방송계의 악습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모두 비정규직 문제에 기인합니다.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따라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고, 각종 개편으로 한 해에도 제작 일정이 유동적인 업계 특성을 핑계로, 방송계에는 오래 전부터 비정규직이 만연했습니다. 결국 많은 방송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이후에야 방송계 노동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CJ E&M 소속 이한빛 PD는 하루 20시간의 고된 노동과 더불어 ‘비정규직 해고 및 계약금 환수 업무’를 강제한 사측의 갑질에 괴로워하며 안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2017년에는 EBS <다큐프라임>의 박환성·김광일PD가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외주제작의 참담한 현실이 알려졌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는 ‘상품권 페이’라는 믿기지 않는 관행이 드러났습니다. 

해마다 동료를 잃었지만 방송계의 근본적 변화는 요원합니다. 지난 2월4일, 충북 민영방송사 CJB청주방송에서 14년 간 일했던 이재학 PD가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청주방송이 고 이재학 PD를 해고한 이유는 월 120~160만원에 불과한 비정규직 인건비의 인상을 요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동권을 짓밟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행태를 과연 방송사들은 보도하고 있을까요? 고 이재학PD 사태를 비롯, 최근 불거진 방송계 폐단과 관련된 보도를 살펴본 결과, 철저한 침묵만이 확인됐습니다. 방송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쉬운 해고’,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 방송사가 해고할 때만 ‘프리’했다

고 이재학 PD는 2004년 조연출로 청주방송에 입사해 ‘프리랜서PD’로 14년간 일했습니다. 말이 프리랜서이지 그의 역할과 직무는 정규직과 다름없었습니다. 미디어오늘 <‘임금인상’ 말했다 쫓겨난 청주방송 ‘14년차’ 프리랜서>(2019년 7월16일 손가영 기자)에 따르면 그는 한 달 120~160만원을 받으며 일했는데 이는 작년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입니다. 그 돈을 받고도 “그는 내근일 때 매일 오전 8시30분 전에 출근해 6시 이후 퇴근했고 매주 5~7일 일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1시간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PD로 프로그램 최종 검수·송출부터 출연진 섭외, 프로그램 구성·촬영·편집 등을 책임졌고 종종 특집 생방송 프로그램이나 특집쇼 연출도 함께했습니다. 또 PD 업무 외에 행정 업무도 처리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비정규직 제작진의 임금 인상을 공식 석상에서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청주방송 기획제작국 국장은 ‘그만둔다는 말로 듣겠다’고 소리쳤고 2018년 4월, 그는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에 이재학 PD는 같은 해 9월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으나 올해 1월 나온 1심 결과, 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AD(Assistant Director)는 프리랜서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원고는 AD로 오래 일했고 △그에겐 특정 시간 및 장소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었으며 △회사가 그에게 지각 또는 결근으로 인한 징계 등 불이익을 준 적 없다면서 그가 회사의 통제나 관리‧감독 아래에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행정 업무를 처리한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부수적인 업무 범위 내의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봤습니다. 결국 법원은 이재학PD의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고, 청주방송 사측 입장을 그대로 베껴 쓴 수준의 이 판결문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고 이재학PD는 패소 판결 8일 만인 지난달 30일 항소장을 냈으나 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방송 노동자’가 죽어도 방송사는 외면

모니터 기간에 상관없이 포털에 ‘청주방송’, ‘CJB’, ‘방송사 프리랜서’, ‘근로자지위확인’, ‘이재학PD’ 등을 검색해 살펴본 결과, 고 이재학PD와 관련해 지상파 3사,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YTN 등에서 나온 기사는 ‘0건’이었습니다.

포털 검색 결과 가장 먼저 고 이재학 PD 문제를 보도한 기사는 미디어오늘의 <‘임금인상’ 말했다 쫓겨난 청주방송 ‘14년차’ 프리랜서>(2019년 7월16일 손가영 기자)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첫 기사가 나온 지난해 7월부터 그가 목숨을 끊은 이달 4일까지 그 어디에서도 관련 보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언론도 이를 기사화하거나 의제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디어오늘 기사 이후 그나마 발견된 기사는 미디어스의 <청주방송에서 쫓겨난 프리랜서PD, 스스로 목숨 끊어>(2월5일 윤수현 기자), PD저널 <‘부당해고’ 다투다 숨진 청주방송 PD… 유족 “억울함 풀겠다”>(2월6일 이미나 기자) 등과 같이 미디어 전문지에서 낸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연합뉴스가 경찰 수사 상황을 전한 <청주 모 방송사 전 프리랜서 PD 숨진 채 발견… 경찰 수사>(2월5일 이승민 기자) 기사를, PD연합회의 성명서를 전한 <PD연합회 “청주방송, 이재학 PD 해고로 죽음 내몰아(종합)>(2월6일 송은경 기자) 기사를 쓰면서 일간지나 경제지 등에서 인터넷판 기사를 썼습니다. 방송사에서도 인터넷판 기사를 찾아볼 수는 있었으나,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했습니다. 단순히 인터넷에서만 소비하려는 용도의 기사로 볼 수 있었습니다. MBN <청주 모 방송사 전 프리랜서 PD 숨진 채 발견… “억울하다” 유서>(2월5일 온라인뉴스팀), MBC <충북 청주 모 방송사 전 프리랜서 PD 숨진 채 발견>(2월5일 이채연 기자), YTN <전직 프리랜서 PD 숨진 채 발견… 경찰 수사>(2월6일) 등을 읽어보면 방송사 스스로 취재한 내용이 없는 보도들입니다.

▲ 2019년 7월16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CJB청주방송 관련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019년 7월16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CJB청주방송 관련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다만 MBC충북은 유일하게 방송 리포트를 내보냈습니다. MBC충북은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된 첫날 <모 방송사 전 프리랜서 PD 숨진 채 발견>(2월5일 단신)을 냈습니다. 그러나 방송사와 PD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사망 소식만 간단히 전했습니다. 다음 날 노동단체의 반발을 전한 <‘프리랜서 PD 사망’ 노동단체 반발 “사과 요구”>(2월6일 단신)를 냈으나 이 또한 익명 처리했습니다. 청주방송이 입장을 밝히자 그제야 <CJB청주방송 “프리랜서 PD 극단적 선택 진상 조사”>(2월9일 단신)에서 방송사 이름을 밝혔습니다.

2.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공론화한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

방송직군 성차별, 대전MBC 아나운서의 용기 있는 폭로

방송사 내 성차별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차별 문제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제기돼 왔습니다. 방송계 직군 전반에 걸쳐 낮은 여성 인력 비율, 채용이나 승진에서의 차별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뒤늦게 방송계 채용 성차별도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6월18일,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들이 사측의 고용 형태 등 성차별 문제를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겁니다. 

미디어오늘 <대전MBC 아나운서들 “남녀차별 인권위 진정”>(2019년 6월18일 박서연 기자)에 따르면 2018년 대전MBC는 아나운서 공채를 진행했습니다. 남성 한 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됐습니다. 2019년 3월,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두 아나운서는 사석에서 남성 간부 2명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간부들은 “본래 남성 자리다”, “여자가 더 뛰어난 애였어도 얘(남성)를 뽑았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간부 중 한 명은 “남자는 늙어도 중후한 맛이 있는데 여자는 늘 예뻐야 한다. 늙으면 안 된다는 관점을 누가 갖고 있냐면 시청자의 몇 명이 갖고 있고, 방송국은 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시청자란 말로 포장해 시대착오적이고 노골적인 성차별 발언을 내뱉었습니다.

고용 형태에서도 성차별이 나타났습니다. 대전MBC 아나운서 총 5명 중 남성 아나운서 2명은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 3명은 프리랜서 계약으로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성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들의 주장입니다. 동일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고용 형태와 임금 등 처우에서 차별이 있다는 겁니다. 대전MBC 측은 ‘정규직과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업무 및 채용과정이 다르다’고 해명했습니다. 

대전MBC는 인권위 진정 이후, 두 아나운서를 각각 한 개 프로그램만 남겨두고 모두 하차시켜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프리랜서 뉴스진행자와 MC를 채용했습니다. 보복 조치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사측은 ‘계절별로 또는 필요에 의한 개편’이라 답했습니다. 

인권위 진정‧국감장 이슈…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

두 여성 아나운서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2019년 6월 18일 이후부터 지난 2월12일까지 모니터한 결과, 이 또한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YTN이 보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포털에 ‘인권위 아나운서’, ‘인권위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등을 검색해 살펴본 결과입니다.

가장 먼저 나온 기사는 미디어오늘의 <대전MBC 아나운서들 “남녀차별 인권위 진정”>(2019년 6월18일 박서연 기자)입니다. 이를 미디어오늘이 기사화하자 미디어 전문지, 한겨레 등에서 이를 계속 의제화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많은 매체에서 다뤘다고 볼 순 없습니다. 모니터 기간인 8개월 동안 단순히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대전MBC 아나운서 성차별’이 들어간 기사가 72건, ‘대전MBC 채용 성차별’이 들어간 기사가 69건, ‘인권위 아나운서’가 들어간 기사가 51건, ‘인권위 대전MBC’가 포함된 기사가 33건 정도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없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채용성차별공동행동이 상암 MBC 본사 앞을 찾아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같은 달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대전MBC의 성차별 채용 논란 질의가 이뤄졌습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인권위 진정을 넣은 당사자인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의 현실을 알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 또한 MBC 여성 정규직과 아나운서들에 대한 질의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민언련을 포함한 각종 언론시민단체·여성시민단체가 모여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지난 1월 22일 발족한 공동대책위는 앞으로 공동행동을 통해 대전MBC에 이러한 성차별을 시정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8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3. 방송사 갑질과 열정페이에 희생된 CJ E&M 고 이한빛PD

극악무도한 노동환경… 그중 비정규직 해고 업무 가장 괴로웠다는 고 이한빛PD

2016년 10월 26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조연출로 참여했던 CJ E&M 소속 이한빛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습니다. 촬영하는 55일 동안 고작 이틀 쉬었다는 고된 노동환경,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위계에 따른 폭력적인 분위기 등이 그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특히 고 이한빛PD는 촬영 외주업체와 관련 비정규직 스태프를 해고하는 업무를 맡아 괴로워했습니다. CJ E&M은 처음엔 ‘이한빛PD가 근무 태만이었다’,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업무는 CP가 했다’고 변명하면서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소극적이다가, 이후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났음에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이재학PD 등과 같은 방송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선택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바꿔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산업 현장과 시민사회에서 계속해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년이 지나서야 고 이한빛PD 보도한 언론들 

안타까운 선택을 막지 못한 데에는 언론의 무관심도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관련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방송사들의 무관심이 컸습니다. 포털에서 ‘이한빛 PD’, ‘혼술남녀 조연출’, ‘CJ 조연출’ 등으로 검색해보니 방송사에서 낸 대부분의 기사가 연예 기사에 그쳤습니다. 연예 기사나 온라인 이슈용 기사로는 다루되, 방송 뉴스로는 대부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고 이한빛PD 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로 격상시켜 보도한 곳들도 있었습니다. MBC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과로 자살’>(2017년 5월4일 나세웅 기자) 기사에서는 이한빛PD의 죽음을 ‘과로 자살’로 보고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JTBC <‘컵라면 끼니’ 청년 노동자의 죽음 1년>(2017년 5월27일 채승기 기자)에서는 구의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숨진 ‘김군’의 1주기를 추모하며 고 이한빛PD를 언급했습니다. 둘에게는 청년 노동자이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JTBC는 이를 조명한 것입니다.

▲ 2017년 4월18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CJ E&M 이한빛 PD 관련 방송 보도 목록.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017년 4월18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CJ E&M 이한빛 PD 관련 방송 보도 목록. 표=민주언론시민연합

YTN은 보도를 내지 않다가 고 이한빛PD의 1주기가 되어서야 단신을 냈습니다. <고 이한빛 PD 1주기 추모문화제 개최>(2017년 10월24일 단신)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가장 최근, 고 이한빛 PD를 다룬 방송 뉴스도 YTN에서 나왔습니다. YTN <인터뷰-한빛인권센터 1년… 방송계 노동 환경은?>(2019년 1월21일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에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설립 1주년을 보도했습니다. 고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업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취약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YTN 인터뷰에는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이사장이 출연했습니다.

다른 방송계 노동 실태와 마찬가지로 이슈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과로 자살, 청년 노동자들을 둘러싼 죽음, 한빛인권센터의 행보 등이 꾸준히 발생하는 데도 방송사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4. ‘방송계 외주제작 실태’ 알린 고 박환성‧김광일PD

방송사-외주제작사 불공정 계약 알리고 떠난 박환성·김광일 PD 

2017년 7월 14일, 다큐멘터리 촬영차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독립다큐멘터리PD 박환성 PD과 김광일 PD가 촬영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EBS에서 방송 예정이었던 자연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중이었습니다. 자세한 경위를 조사한 한국독립PD협회는 ‘두 PD가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과 정면충돌해 사고가 났으며, 맞은 편 차량이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습니다.

두 PD는 현지 코디네이터나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못했고 험한 길을 달림에도 불구하고 사륜구동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기획 외주제작 PD의 죽음-그들은 왜 ‘사륜구동’을 타지 않았나?>(2017년 8월3일 고희진 기자)에서 ‘제작비’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제작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촬영을 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로 꼽힌 겁니다.

실제로 박환성 PD는 출국 전, EBS의 제작비 환수 관행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미디어스 <EBS, 독립PD에 정부지원금 40% 내놔라…갑질 논란>(2017년 6월22일 이준상 기자)를 통해 ‘갑’인 방송사와 ‘을’인 외주제작사 간의 불공정 계약이 드러났습니다. 박환성 PD는 자연다큐멘터리 전문 PD입니다. EBS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하고 2억1천만원의 제작비를 요청했으나 EBS는 1억4천만원만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족한 제작비를 메우고자 박환성 PD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공모를 넣어 1억2천만원의 지원금을 탔는데, EBS가 지원금의 40%인 4800만원을 간접비로 요구했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간접비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드는 순수한 비용 외에 편성이나 송출‧홍보 등 방송사의 인력과 시설을 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일컫습니다. 게다가 EBS는 박환성 PD가 지원 받은 공공기관과의 협약서상 저작권을 모두 EBS에 양도하는 내용으로 수정하라고도 요구했습니다. EBS는 △박환성 PD가 제작지원을 신청할 때 EBS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고 △간접비 40%를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무시했고, 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도 없는 상황입니다. 

두 PD의 사고사로 인해 독립PD들의 노동 조건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잠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권고하는 외주제작 표준 계약서가 개선되는 등 작은 변화가 있었을 뿐, 근본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죽음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주제작 불공정 관행’ 정부 대책만 반짝 전한 KBS·JTBC·YTN

▲ 2017년 6월22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EBS 박환성 PD 관련 방송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017년 6월22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EBS 박환성 PD 관련 방송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주요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불공정 외주제작 관행을 알린 박환성‧김광일PD의 죽음에도 침묵했습니다. 방송사들은 기본적인 소식도 전하지 않다가 정부 대책이 발표되고 나서야 고작 1건 정도 보도를 냈습니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1일 국무회의에서 이효성 당시 신임 방송통신위워장의 임명을 거론하면서 “독립 PD들의 참담한 죽음을 계기로 방송계 내부의 불공정 거래가 다시 고발되고 있다”, “방통위,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잘 협의해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실효성 있는 시정방안을 마련해 시행해달라”고 말할 때까지도 방송사에서는 보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열흘 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 공동 실태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힙니다. 그러자 KBS와 JTBC가 인터넷판 기사로 각각 <방통위·문체부, 방송사-외주사 불공정거래 실태 조사>(2017년 8월10일 김주한 기자), <방통위, 외주 제작 관련 협회 관계자 의견 청취>(2017년 8월30일 한정훈 기자)를 냈습니다. YTN은 이효성 신임 방통위원장의 발표 현장을 그대로 담아 <방송사 ‘부당해직’ 방지 최우선 추진>(2017년 8월22일 김현우 기자)이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방송계 외주제작 실태 보도 자체가 부족하다

포털에서 박환성‧김광일PD와 관련된 모든 보도를 검색해봐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박환성 PD EBS 외주제작’을 키워드로 검색해 살펴본 결과, 2017년 6월22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독립PD들의 죽음과 외주제작 실태를 다룬 기사는 2년 반이라는 기간에도 불구하고 200여 건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박환성 PD로만 검색하면, 450여 건으로 기사가 늘어나는데 대부분 그가 한국PD대상에서 수상한 소식이나 연출했던 다큐멘터리를 조명하는 기사들입니다. 박환성PD가 왜 죽었는지, 그 죽음의 배경을 밝히는 기사보다 그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더 많은 겁니다.

박환성 PD가 출국 전 EBS의 간접비 40%와 저작권 양도 요구를 폭로할 때 나왔던 첫 보도는 미디어스 <EBS, 독립PD에 정부지원금 40% 내놔라…갑질 논란>(2017년 6월22일 이준상 기자) 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기사가 나오자 미디어 전문지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습니다. 이데일리 <제작사 정부지원금 손댄 EBS‥정부·기관 ‘소극적’>(2017년 6월26일 김유성 기자), PD저널 <EBS, 정부 제작지원금 간접비 요구 논란…왜?>(2017년 7월10일 구보라 기자), 한겨레 <독립다큐 PD가 받은 정부지원금, EBS에 일부 떼달라?>(2017년 7월13일 김효실 기자), 주간경향 <EBS가 독립PD에게 빨대 꽂는 법>(2017년 7월18일 박은하 기자) 등 다양한 매체에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방송사는 유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PD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2017년 7월 14일이나 관련 기사가 나온 것은 닷새가 지나서였습니다. PD저널 <박환성-김광일 PD, 남아공서 다큐 촬영 중 교통사고로 사망>(2017년 7월19일 구보라 기자), 미디어스 <박환성·김광일 독립PD, 남아프리카서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2017년 7월19일 도형래 기자) 등 미디어 전문지를 선두로 박환성‧김광일 PD의 부고를 전했습니다. 이어 연합뉴스가 EBS와 한국독립PD협회 등을 취재해 <EBS 외주 다큐 PD, 남아공 현지 촬영 중 사망>(2017년 7월20일 이정현 기자) 기사를 내자 일부 방송사가 인터넷용 기사를 냈습니다. SBS의 <EBS 외주 다큐 PD, 남아공 현지 촬영 중 사망>(2017년 7월20일 임태우 기자)이 그것입니다.

공정위 “EBS 공정거래법 위반 아니다” 처참한 결정, 이마저 외면하는 방송사들

한편 같은 해 12월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5개 부처는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보고했습니다. 이는 두 독립PD가 사고를 당한 후 5개월 만에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방통위는 방송사 재허가 조건에 ‘독립제작’과 관련한 조건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방송법 개정을 통해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 자의적 협찬 배분이나 저작권 양도 강요 등을 금지하겠다는 안이 나왔습니다. 방송사 스스로에게 적용될 중요한 대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YTN <외주사 안전 종합대책>(2017년 12월19일 단신), MBC <불공정 외주제작 관행 적극 개입>(2017년 12월19일 오현석 기자)에서만 다뤄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터넷판이나 방송 뉴스프로그램에서 다뤘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정부 대책 발표를 전하는 수준이었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박환성 PD 사건을 포함해 외주제작사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방송사의 갑질이나, 공정한 거래를 위해 필요한 논의 등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201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EBS가 박환성 PD에게 저작권을 양도하도록 협약서를 수정해오라고 요구한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는 방송계의 갑질 관행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눈가리고 아웅’ 식의 결론을 내린 일이었습니다. 일반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이나 불공정거래에 대해 보도를 내놓는 방송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이같은 결정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5. 방송계 ‘상품권 페이’ 관행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신 분께 백화점 상품권을 드립니다”… 이게 누군가에게는 ‘임금’이었다

2018년 1월8일 한겨레21이 ‘상품권 페이’를 처음 공론화했습니다. 방송사가 협찬으로 받은 상품권을 방송계 종사자 임금으로 지급해왔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한겨레21 <열심히 일한 당신 상품권으로 받아라?>(2018년 1월8일 김완 기자) 기사에 등장하는 프리랜서 촬영감독 A씨는 2015년부터 2016년 7월까지 SBS 예능 ‘동상이몽’ 시즌1을 제작하며 밀린 임금 6개월 치 가운데 900만원 가량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받았습니다. SBS는 A씨에게 “(회계처리를 위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상품권이 가면 안 된다”며 복수의 개인 정보를 알아오라고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등장한 ‘상품권 페이’는 SBS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진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KBS에서도 광고주가 ‘현물 협찬’ 형태로 보내온 상품권을 방송 작가를 비롯한 방송 노동자에게 지급해 온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프로그램 말미에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신 분께는 ○○○○에서 백화점 상품권을 드립니다”라는 코멘트에서 언급된 상품권이 누군가에게 임금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첫 보도 이후 논란이 된 SBS 프로그램의 PD는 제보자 색출작업을 벌였고 ‘관행이니 문제없다’, ‘왜 내부 관행을 외부에 폭로하느냐’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시민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SBS는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으며 전수 조사 이후 상품권 페이가 재발되지 않도록 상품권을 본래의 목적 이외의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권 페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장 최근 보도인 미디어오늘 <“불씨 품은 방송 비정규직, 모아 놓으니 화산이더라”>(2019년 8월14일 손가영 기자)는 방송계 비정규직을 위한 상담 온라인 모임인 방송계갑질119에 “불과 한 달 전쯤 ‘상품권으로 임금을 받고 있다’는 한 지역 방송사 스태프 제보가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먼저 논란이 되었던 SBS에서는 상품권 페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나머지 방송사, 특히 지역 방송사에서는 아직도 급여를 불법적으로 지급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모두 ‘상품권 페이’ 해결 외칠 때 방송사들은 ‘외면’

처음 문제가 불거진 이후 언론·정부·시민단체 모두 ‘상품권 페이’ 해결을 촉구했지만 공교롭게도 방송사들은 예외였습니다. 포털에서 ‘상품권 페이 방송사’, ‘상품권 임금 방송’ 등으로 검색해보니 이를 처음 단독 보도한 한겨레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PD저널만 관련 기사를 꾸준히 보도했을 뿐입니다. 

모니터 대상 8개 방송사 모두 이를 방송 뉴스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인 KBS와 SBS도 마찬가지입니다.

▲ 2018년 1월8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상품권 페이 관련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018년 1월8일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 8개 방송사 상품권 페이 관련 보도 목록(각 방송사 자체 연예 매체에서 쓴 기사는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다만 이를 인터넷용 기사로 쓴 곳은 있습니다. MBC나 SBS‧YTN은 상품권 페이 관련 기사를 내긴했으나, SBS가 사과문을 게시하거나 상품권 지급 조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했을 때 발표 전문을 전달하는데 그쳤습니다. MBC의 경우 <SBS “외주스태프 임금 상품권 지급 잘못… 즉각 바로 잡겠다”>(2018년 1월11일 뉴미디어뉴스국)와 같이 SBS가 잘못을 사과하고 시정 조치를 결정했을 때 온라인 뉴스를 처리하는 ‘뉴미디어뉴스국’에서 기사를 썼고, 정부가 대책을 논의하고 매년 실태조사를 결정하자 <방송계 ‘상품권 임금’ 관행 없앤다… 매년 점검>(2018년 1월19일 송양환 기자)에서 기자의 바이라인을 달아 보도했습니다. SBS는 MBC 보도와 제목까지 똑같은 <방송계 ‘상품권 임금’ 관행 없앤다… 매년 점검>(2018년 1월19일 김수형 기자)이란 기사를 냈으나, 여기서 자사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KBS의 경우 ‘상품권 임금’을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언론노조 “드라마 제작환경 열악”… ‘미스티’ 등 특별감독 촉구>(2018년 2월28일 이호을 기자)란 기사가 나오긴 했으나 이는 방송계의 상품권 페이 문제를 온전히 다룬 것이 아닌,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드라마 제작 환경의 열악함을 고발하면서 임금을 상품권으로 대체 지급한 사례가 있었다는 발표를 내자 이를 그대로 옮겨 쓰기만 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사안별로 첫 보도가 나온 날부터 2020년 2월12일까지(사안별 모니터 기간 다름) 포털에서 키워드를 검색하여 나온 KBS‧MBC‧SBS‧JTBC‧TV조선‧채널A‧MBN‧YTN 방송 및 인터넷 뉴스 전체
※ 문의 : 조선희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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