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서울. 코로나19 확진자가 강남 일대를 다녔다는 뉴스가 나온 직후였다. 그 확진자는 한국인이었지만 나의 눈빛은 중국인을 향해 있다. 공교롭게도 점심·저녁 식사를 모두 강남 일대에서 했는데, 식당의 옆자리에 모두 중국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온 여행객일 수도, 한국에서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옆에서 중국어가 들리자마자 나와 함께 앉아 있던 친구의 눈이 마주친다. 밥을 먹는 내내 ‘물컵을 멀리 옮겨야 하나’ 같은 생각이 떠다닌다. “세상 도움 안 되는 중국인들”, “제발 중국인은 나가라”, “중국인은 출입 금지시켜라”는 말들이 한참 떠돌았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심 끄덕거리며 침묵했다. 바이러스가 혐오의 빗장을 풀었다. 

다시 베를린. 혐오의 주체이던 나는 하루아침에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에서도 혐오의 빗장이 풀린다. 중국인을 향해서? 아니, 모든 아시아인이 그 대상이다. 전조는 공항에서부터 시작됐다. 베를린으로 향하는 환승 비행기. 내 옆자리에 있던 독일인이 앞의 빈자리로 옮겨 앉는다. 눈이 마주치자 “더 넓으니까요” 하며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기분 탓이겠지? 

집으로 향하는 트램 안. 분명 사람들이 우르르 탔는데 내 옆자리엔 아무도 앉지 않는다. 옆 좌석을 보니 거기에 다 오밀조밀 앉아 있다. 음, 기분 탓일 거야. 독일에서는 종종 이렇게 확실하지 않은 감정, ‘쓸데없이 불필요한 기분 나쁨’을 경험한다.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 나의 과민함이라 정신승리를 해 본다. 그런데 독일 미디어가 전하는 혐오의 그림은 좀 더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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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tag Express.

독일 미디어가 퍼뜨리는 ‘인종주의와 혐오의 바이러스’를 한 번 살펴보자. ‘코로나바이러스 패닉-쾰른 중국인을 향한 두려움’. 지난 2월 2일 독일 쾰른 지역에서 발행하는 일요일판 타블로이드지 ‘엑스프레스(Express)’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슈퍼마켓 사장이 겪은 차별적인 일을 보도한 기사다. 

한 독일인이 그가 운영하는 아시아 마켓에 들어와 옆에 있는 딸에게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라’고 이야기한다. 딸은 엄마에게 묻는다. “중국인들 모두가 아픈 거예요?”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시아 마켓을 운영하는 사장은 이 일을 페이스북에 알리면서 “그들이 너무 빨리 매장을 나간 탓에 그 딸에게 모든 아시아인이 중국인이 아니고, 모든 아시아인이 바이러스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면서 “모든 것이 일반화되고, 배제와 인종차별이 이루어진다”고 우려했다.

여기서 더 큰 비판을 받은 것은 차별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미디어 그 자체였다. 기사의 맥락을 모른 채 ‘Express’ 표지를 보면 중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되려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실으면서 ‘혼동(Panik)’과 ‘두려움(Angst)’이라는 단어를 대문짝만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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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 

독일의 가장 유명한 타블로이드지인 ‘빌트(Bild)’도 역시나 빠지지 않았다. 빌트는 지난 1월30일 중국인 가족이 함께 즐겁게 식사하는 이미지와 함께 ‘확진자 4명-코로나바이러스는 바로 이렇게 우리들에게 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독일의 아시아 식품-나 중국과자 먹어도 될까?’라는 제목의 기사도 이어졌다. 코로나19를 둘러싼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였지만, 오히려 편견과 두려움을 강화하는 제목으로 비판을 받았다. 독일의 한 미디어 비평가는 이런 보도가 오히려 ‘바이러스’라면서 “버스에 ‘빌트’가 놓여 있으면 피해서 앉으라”고 꼬집기도 했다.

원래부터 자극적인 보도로 판매 부수를 올리는 게 목적인 대중지뿐만이 아니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Spiegel)도 ‘코로나바이러스-Made in China’라는 표지로 인종차별 논란에 직면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세계화된 산업 시스템으로 인해 전염병이 경제 산업 분야에 끼치는 영향이었다. 기사의 맥락에는 인종차별적 내용이 없었지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논쟁이 벌어졌고 주독 중국 대사관이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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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egel.

독일에서도 코로나19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경험담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실제로 두 명의 중국인이 독일인에게 인종차별적 언사를 넘어 물리적 폭행까지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혐오는 중국인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뿌리로 한 모든 이들을 향하고 있다. 

이 와중에 독일에서 ‘한국인이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 사람이 여기서는 그 ‘중국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를 인정하고 침묵하는 순간 나 또한 배제되며, 나 또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코로나19를 언급할 때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인종차별’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마음속 깊게 깔려있던 혐오가 ‘이때다’하고 창궐한다. 이놈은 정말 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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