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지붕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2018년 5월 서울 봉천동 중앙시장에서 전화수리를 위해 슬레이트 지붕 위를 걷던 KT서비스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사람이 밟으면 꺼지는 곳인데도 일손이 부족해 낯선 지역에 투입된 그는 상황을 몰랐다. 

고인의 동료인 김신재 전 KT서비스 노조위원장은 “나라도 저쪽으로 발을 디뎠을 거 같다. 그러면 내가 죽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비용을 투자해 단자함 위치를 바꿨으면 지붕에 오를 일도 없었다고 했다.

이 순간에도 KT노동자가 쓰러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KT·KT계열사 산재 신청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1월1일부터 2019년 11월까지 모두 435건의 산재 신청이 있었다. 나흘에 한명 꼴로 사람이 다쳤다. 이 가운데 358건이 승인됐고 27건이 일부 승인됐다. 

KT는 본사 외에 인터넷·유료방송 분야 설치수리를 담당하는 KT서비스남부(비수도권)·북부(수도권), 콜센터를 맡은 KTIS·KTCS, 판매와 영업을 담당하는 KTM&S 등으로 나뉜다. 이밖에 100여개 하청업체가 통신구 관리, 전신주 설치·관리 등을 맡고 있다.

가장 많은 사고 유형은 ‘추락’이다. 추락 사고는 전체 사고의 1/3이 넘는 162건(37.2%)에 달했고, 이 가운데 6명이 숨졌다. 현장 설치·수리·정비 업무에서 벌어지는 사고(283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KT 노동자들은 전화, 인터넷 등을 설치 수리하고 망을 관리하면서 전신주, 지붕 등 높은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 KT 및 주요 계열사 산업재해 신청 현황 분석(2015.1~2019. 11). 디자인=이우림 기자.
▲ KT 및 주요 계열사 산업재해 신청 현황 분석(2015.1~2019. 11). 디자인=이우림 기자.

‘추락 사고’를 유형별로 나누면 미끌림, 헛디딤 등 균형을 잃어 추락한 경우가 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다리 미끌림·파손 28건, 전신주 ‘디딤쇠’가 빠지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16건, 슬레이트·판넬 등 붕괴 14건, 전신주 전도·흔들림 12건, 장비 고장 및 오작동 4건, 감전 3건, 단자함 파손 1건 순이다. 다른 유형의 사고이거나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는 29건이다.

노동자로선 불가항력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장 많은 유형인 미끌림, 헛디딤 등 균형을 잃어 추락한 경우는 비가 오거나 우천 직후, 강풍, 눈보라 속에서 작업을 강행한 정황이 있다. 2017년 9월 경북 순창의 한 경로당에선 노동자가 비가 오는 중 작업하다 감전 추락사했다. 울산에선 비 내린 직후 인터넷 수리를 위해 전신주에 오르던 노동자가 감전돼 3m 높이에서 떨어졌다. 지붕 위에서 작업하면 슬레이트 지붕, 판넬 위를 이동하다 무너져 다치는 사고도 많았다. 

기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도 많았다. 전신주에 오르기 위해 박는 일종의 ‘대형 못’인 디딤쇠가 빠지거나 파손돼 추락한 경우가 16건이다. 홍성수 KT서비스 노조위원장은 “한국전력의 전신주는 보통 디딤쇠가 박혀 있는데 우리(KT)가 세운 전신주엔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디딤쇠를 꽂아가며 올라가는 경우 홈이 디딤쇠보다 공간이 커 잘 빠져 사고가 난다. 전봇대에 들어 있는 디딤쇠는 전봇대가 낡아 고정이 안돼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전신주가 무너지거나 흔들리면서 벌어진 사고도 12건에 달한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낡아서 구멍이 뚫리거나 지반이 약해 사람이 오르면 안 되는 전신주였다. 쓰러지는 전신주를 끌어안은 채 추락해 다치거나 이를 피하려 뛰어 내리다 벌어지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추락 외에도 업무 중 허리, 어깨 등 통증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작업 중 선에 감기거나 날카로운 곳에 찔리는 사고도 있었다. 맨홀 뚜껑을 열다 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승인된 산재 내역을 기준으로 분석한 이진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떨어짐’은 산재사망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재해유형이다. 떨어짐 사고의 빈발은 작업자를 보조하면서 떨어짐을 방지하는 2인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고, 사업주의 조치가 부족해 보인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 또는 낙하 위험이 있는 장소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진우 전문의는 “KT 산재를 보면 무리한 동작으로 생기는 재해 비율이 다른 노동자의 2배를 넘었다. 인력이 부족하고, 장시간 노동에 처하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넘어지거나 물체에 맞아 재해를 입는 경우도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감전 등에 의한 화상도 5년간 7건이나 있었다. 안전 보호구 지급이 미흡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T는 안전 문제를 개선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노동자, 관리감독자, 기관장, 현장 직원 등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다수의 안정장비를 지급한다. 즉각적인 사고 파악을 위해 센서가 부착된 헬멧을 4월까지 공급할 계획이기도 하다. 전신주의 경우 2019년 5월부터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취약시설부터 개선하고 있다. 또한 2020년 1월부터 2인1조 작업 기준을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근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홍성수 위원장은 “유독 KT의 산재가 많은 건 전신주에 더 많이 올라서다. 다른 곳은 (댁내로) 단자함 등 시설을 전진배치한다. KT는 웬만하면 전신주에 올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진 배치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기간망인 KT는 다른 통신사보다 더 많은 망을 갖고 있는 데다 전신주 중심으로 망이 설치돼 있다.

홍성수 위원장은 “위험 작업을 2인1조로 하라지만 급하게 일해야 하는 현장에선 큰 의미가 없다. 안전 관리가 강화되면서 버킷 차량이 생겼지만 써본 적은 없다”고 했다. 회사는 ‘샌드위치 패널 지붕 작업중지는 회사가 당신에게 준 권한입니다’ 등의 알림을 보낸다. 홍성수 위원장은 “공장지대인 내 지역 (남양주 일대) 70%가 슬레이트 지붕이다. 고장 수리하러 갔는데 위험하다고 거부할 수 있겠나”고 했다.

▲ 유료방송 및 인터넷 설치기사 작업 모습 자료사진.
▲ 유료방송 및 인터넷 설치기사 작업 모습 자료사진.

회사는 위험한 전신주를 사실상 방치한다. 정치수 공공운수노조 KT 상용직지부 대경지회 사무장은 “자재비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20년동안 시골에 묻혀있던 전신주를 다시 재시공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여름에 태풍이 오면 묻힌 부분이 유실돼 육안으로 멀쩡한데 올라가면 쓰러지곤 한다”고 했다.

맨홀 사고와 관련 정치수 사무장은 “아파트를 지으면 도로를 확장하는데 이때 도시가스, 수도, 통신 맨홀도 따라 인도로 옮겨야 하는데 통신만 잘 옮기지 않는다. KT는 비용절감을 위해 못 옮기는 경우가 많다. 공사 때와 달리 민영화 이후 더 그렇다”고 했다.

‘435’라는 숫자는 빙각의 일각이다. 노동자가 산재 신청하길 주저하기도 한다. 더구나 KT에는 이번 분석 대상인 본사, 주요 자회사 외에도 하청업체가 100여개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현황은 파악하기 힘들다. 서울 아현국사 KT화재 때 통신구 관련 정비 업무를 맡았던 이들도 KT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 일근직이었다. 

한정애 의원은 “추락사망은 추락방지망 설치와 안전대 부착, 2인1조 작업 등 기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하는 매우 원시적 재해”라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하자보수를 도급 주는 KT는 원청으로서 하청노동자를 보호할 법적 책임을 갖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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