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실린 1월29일자 ‘민주당만 빼고’ 칼럼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선심위)가 지난 12일 공직선거법 제8조 위반으로 판단, 권고 결정을 내렸다. 공직선거법 8조는 언론의 공정보도의무 조항을 담고 있다. ‘권고’는 선심위의 제재 수위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법적 강제성은 없고 앞으로 유의하라는 정도의 조치다.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선심위 판단을 전하며 “선거법 위반과 표현의 자유조차 구분 못 하는 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건 사치일 뿐”이라고 적었다. 이를 두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출신 양홍석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선거관리위원회와 무관하다. 선심위가 공직선거법 8조를 언급했지만 칼럼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이라거나 투표 권유 활동이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선거기사심의위 결정은 틀렸다”고 적었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 김준일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전선거운동이 되려면 후보자가 결정되고 각 정당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들어가야 한다”며 “2000년대 낙선운동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때 역시 후보자를 특정해서 반대한 것이 문제가 됐다”며 논란이 된 칼럼이 사전선거운동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 지지자들은 본인의 SNS에 자유한국당을 찍지 말자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이들 역시 모두 선거법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14일 해당 칼럼에 대해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 1월29일자 칼럼.
▲경향신문 1월29일자 칼럼.

언론중재위원회가 설치한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언론학계, 대한변호사협회, 언론인단체 및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각 1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기사의 공정성 여부를 자체적으로 심의해 정정보도문 게재 등 수위를 결정해 언론중재위원회에 통보한다. 현재는 바른미래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며 심의위원이 8명으로 줄었다. 정당추천 위원에 대해서만 이 같은 해촉 사유를 두고 있어서 해당 위원이 추천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 있다.

선심위의 이번 결정을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을까. 우선 선심위는 선거법이 아닌 ‘선거기사 심의 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기사의 공정성 여부를 판단한다. 선거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자체 규정에 있는 공정성 조항을 주로 적용한다. 선거기사심의위원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지금껏 내부 규정의 공정성 조항으로 제재를 많이 해왔다. 심의위원으로서는 과거 선례들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하면서 “이번 결정을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권고 결정과 유사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전북일보는 2012년 1월11일 19면에 ‘정동영 불가론’이란 칼럼을 게재했다. 당시 정동영 후보예정자를 두고 “골목대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비판한 내용이 있었는데,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19대 국회의원선거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백서에서 해당 결정을 두고 “내부 필진의 의견에 대해 언론사의 비평의 자유를 고려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제재를 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춰보면 오히려 경향신문 칼럼에 대한 이번 권고 결정은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고려한 조치일 수 있다.  

선심위 결정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2012년 2월27일자 한겨레 31면 ‘아! 김부겸’이란 제목의 칼럼은 대구에 출마하는 김 후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며 그를 우호적으로 평가했다는 이유로 주의 결정을 받았다. 2019년 3월29일자 한겨레 29면에 실린 ‘진보정치의 또 다른 봄바람’이란 제목의 기고는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특정 후보자 실명을 언급하며 우호적 내용을 서술했다는 이유로 역시 주의 결정을 받았다. 당시 기고도 공직선거법 8조 위반과 선거기사 심의기준 등에 관한 규정 4조(공정성) 및 5조(형평성) 위반이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선심위 판단의 근거가 되는 공정성 조항을 두고 선심위 내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국회의원선거 선거기사심의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자체심의 의결 중 공정성 및 형평성 위반 결정은 70.9%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에 밝은 또 다른 변호사는 “선심위 규정 내에 있는 조항들이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공정성 조항 자체도 너무 추상적”이라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에서 인터넷언론사에 대해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의 칼럼 게재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인터넷선거보도심위의 규정에는 이 규정이 여전히 살아있다”며 시대에 뒤처진 선심위 조항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때문에 고발을 주도했거나 고발에 공감하는 더불어민주당 측은 선심위 ‘권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고발의 알리바이’를 찾기보다 야당 시절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기억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이 사건 칼럼의 표현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판례상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여당은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현행 선거 규제를 재검토하고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전 대선후보는 SNU팩트체크센터에서 여러 언론의 팩트체크 보도를 묶어 서비스한 것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불법행위였다며 무더기 고소·고발했다가 모두 패소했다. 위축 효과를 노린 전형적인 봉쇄 소송이었다”고 비판한 뒤 “민주당의 임미리 교수·경향신문 고발을 보며 한국당과 홍 전 후보 생각이 났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위축 효과를 노린 봉쇄소송 정황이 뚜렷하면 아예 고소 고발이나 소송 제기 자체를 권한 남용으로 보고 책임을 묻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