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주요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역시 화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에게서 배운 이 영화 철학대로 그는 개인적인 것에 천착해 왔다. 인간 한명 한명에 파고 들어가면 거기에 사회가 나오고, 자연스레 시대나 정치로 확장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가난한 자들과 부자가 엮이며 빚어지는, 사적인 관계와 내밀한 삶을 묘사한 ‘기생충’에서, 관객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참한 계급 구조를 떠올린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기생충’은 십분 드러냈다.

개인의 문제가 전체 사회에 연결되듯이, 현장의 안전 문제는 해당 조직 전체 및 시스템, 더 나아가 사회와도 결부된다. 서구는 위험과 사고의 원인을 말단 현장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달리 말해 사고의 표면에만 집중하는 전통적 안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은 최일선 작업자의 판단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적, 구조적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심층 원인과 표면 원인 등 사고 원인을 조직 내에서 단계별로 나누고, 입체적으로 규명하려는 제임스 리즌(J. Reason)의 조직사고론은 대표적 사례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벨기에에서는 눈여겨 봐야 할 판결이 있었다. 19명이 목숨을 잃은 2010년 바위징엔(Buizingen)역 열차 사고에 대한 벨기에 법원의 판결이 2019년 12월에 이뤄졌다. 법원은 열차 네트워크 관리공사인 Infrabel과 국영 철도운영사인 SNCB/NMBS가 절반씩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면서 각각에 55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고 당시 기관사는 정지신호에서 열차를 운행했고, 충돌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은 기관사에게 3년 금고형을 구형하려 했으나, 심리과정에서의 증언들, 사고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무죄를 선언했다. 재판부도 재난 예방을 위해 요구되는 안전장치를 도입하지 않은 철도회사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열차 기관사는 (열차) 안전 체계에서 최후의 연결고리일 뿐, 유일한 보호수단은 아니다”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개인의 휴먼에러보다는 전체 안전 시스템의 부실이 사고의 핵심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2·18 대구지하철 참사는 어떠했나.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의식 속엔 기관사가 운전 키를 뽑고 달아나 열차에 갇힌 승객들이 무수히 희생되었다는 ‘정보’가 남아있다. 또한 “전동차 안에서 기다리라”라는 기관사의 안내방송 때문에 승객들이 대피하지 않고 변을 당했다는 내용도 각인되어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라 하면, 이 두가지가 짝이 되어 육중한 사회적 통념을 형성했다. 결국 1080호 열차 기관사는 자기 목숨만 챙긴 패역무도한 죄인으로 회자된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대단히 안타깝게도 그러한 통념은 여러 사실관계가 휘발된, 비틀린 정보의 편린이다. 당시 1080호 기관사는 중앙로역 구내에 연기가 자욱한 것을 보았지만, 사령(관제)의 지시가 있었기에 진입했다. 기관사는 도착 후 문을 열었다가 유독가스 때문에 다시 문을 닫고 출발하려 했다. 전기 단전과 공급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하지만, 결국 단전으로 인해 출발에 실패했다. 기다리라는 방송은 대피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 출발지연에 대한 안내였다.

그렇게 6∼7분이 흐르는 동안, 기관사는 사령에게 어찌할지를 묻고, 사령은 승객 대피 지시를 내린다. 그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들에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2회 한다. 이후 손전등을 들고 객실로 가서 7분 정도 승객을 대피시키다가 사령실 호출을 듣고 기관실로 돌아간다. 사령은 규정에 의거 “전동차 집전장치 내리고 대피하라”고 지시한다. 기관사는 운전 키를 뽑고, 일부 승객들과 대피했다.

화재 현장에 있던 사람은 사령이 아닌 바로 기관사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령에게 해야 할 일을 물었고, 사령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독자 대응보다는 위계적 관계에 기댄 수동적 업무 수행이 그의 행동을 지배했다. 연기를 보면서도 역 내로 진입한 행동에는, 운행 지연시 기관사를 추궁하는 조직문화도 배경에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입을 지시한 사령은 정시운행 관행에 젖어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체득하고 있던 작업장의 규칙과 관행 때문에 위험 앞에서도 열차를 멈출 수 없었다.

1080호 기관사와 사령의 단편적 사례를 보더라도, 말단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매뉴얼, 관행, 조직문화, 관리정책에 의해 크게 행위가 좌우된다. 당시 대구지하철의 이같은 조직적 요인들은 모두 사고의 배후 원인 또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아울러 최소 수준으로 운영되던 인력 규모, 비상대응 훈련 부실, 저가 낙찰제, 설계와 건설 과정에서의 관리 감독 소홀 등은 모두 조직적 차원의 문제들이었다. 

이처럼 2·18 참사에서는 일선 노동자만이 아니라 대구도시철도공사라는 지방공기업 전체의 조직적 요소가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군다나 보다 높은 수준에서 공사의 예산, 인사, 정책 등을 관장하는 대구시와 중앙정부 등 행정권력이 죄다 참사와 연루되어 있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현장부터 국가 행정기구까지 모두 연결된 조직사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벨기에와 판이하게 달리 법적 처벌 받은 것은 기관사 2명과 사령 3명 등 모두 현장 노동자였다. 공사 사장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따냈다. 경영진, 행정관료 등 조직 상층부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관료들은 참사의 기저 요인이었던, 신자유주의적 공기업 관리정책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국가는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서구의 안전관리를 본떠 철도안전법을 제정하고, 철도안전관리체계를 도입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됐으나, 정작 2·18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고 보고서 하나 만들지 못했다. 참사에 관한 왜곡된 정보들이 진실인 양 유포되고, 통념으로 굳어졌다. 우리가 마주한 폐허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고통을 보듬지도 않은 채, 선진 시스템이라는 명목으로 기둥부터 세우고, 서까래를 얹은 셈이다. 

현행 철도안전법과 안전관리체계는 서구의 것을 상당 부분 이식해 왔기에, 형식상으로 꼴을 갖춘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를 조직 말단에서 벌어진 문제로 치부하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성을 조장한다. 국토교통부와 운영기관들이 사고의 표면에서만 원인을 찾으려 하니, 심층 원인인 조직과 시스템은 여간 해선 바뀌지 않는다. 또한 노동자를 안전 주체로 세우려 하지 않으니 반쪽 짜리 안전관리에 불과하다. 본질이 굴절된 것이다. 

서구의 안전관리체계는 작업자의 휴먼에러 발생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한다. 대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중 방어막을 세우고, 조직과 시스템을 개선해 사고를 예방하자는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안전관리체계에서 핵심은 노동자의 안전 참여와 경영진의 안전 리더십이다. 노동자는 매뉴얼만 수행하는 객체여선 안된다. 현장의 안전 문제를 소상히 알고 있는 노동자가 능동적 주체로 참여할 때 조직이 바뀌고 안전은 강화된다. 아울러 관료와 경영진은 안전 리더십을 위해 진보적 안전 철학을 학습해야 한다.

안전은 모두의 문제이며, 누구나 참여해야 할 의제가 되었다. 관료, 경영진들은 기꺼이 안전 영역의 문턱을 낮추어 노동자, 시민이 정책 생산과 안전 모니터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들이 안전 문제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 역시 주체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처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안전은 민주주의에서 시작되며, 사회적으로 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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