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성범죄 사건과 관련 여전히 수사단계부터 가해자 변명이 반영되거나 법원에서 감형되는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 양형기준을 정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양형 기준을 정비해달라고 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같이 답변했다.

이번 청원은 성범죄 피해자가 지난해 11월15일 글을 올려 한 달간 총 26만4000여명의 청원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자신이 피해자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는데 수사기관이 가해자 혐의가 인정되고 사안이 중하다면서도 가해자의 부당한 변명을 받아들여 선처했다고 밝혔다. 이 청원인은 △현재 성범죄는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개정이 필요하고 △수사·재판에서 가해자의 일방 주장이 받아들여져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을 지적하면서 양형기준 정비 등을 촉구했다.

이에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14일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 재정비’를 요구한 청원 답변에서 현재 성범죄 처벌 기준에서 강간·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강 센터장은 폭행‧협박, 위계‧위력 이용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 처벌하도록 강간죄 성립 범위를 넓히는,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고자 다수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입법부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성범죄 수사, 처벌 및 양형과 관련 강 센터장은 현재도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강간죄의 경우 구속수사 원칙, 강제추행도 징역형 구형을 원칙으로 하는 등 엄정한 사건처리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8년 5월 피해자의 고소에 가해자의 무고와 맞고소가 있을 경우 최종 처분 때까지 무고 명예훼손 등은 수사를 중단하는 수사매뉴얼을 개정했고, 업무상 위계·위력간음 및 추행죄 등의 법정형을 상향했고, 절대 복종관계 하의 성범죄 사건처리 기준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디지털성범죄 관련 ‘성폭력 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을 통해 불법촬영, 유포, 촬영동의 비동의 유포행위의 법정형을 상향했다.

그러나 강 센터장은 이런 노력에도 중대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았고, 여전히 수사·재판에서 가해자의 부당한 변명이 받아들여져 감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에 강 센터장은 앞으로도 성범죄 엄정 대응 기조를 강화하고, 수사·재판에서 피해자 입장이 충분히 반영돼, 죄에 맞는 형벌이 선고되도록 제도를 정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우선 강 센터장은 학계, 시민사회와 연계해 비동의 간음죄, 강간, 강제추행죄를 비롯한 성범죄 개념이 합리적으로 정립되는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했다. 강 센터장은 기존에 양형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던 디지털 성범죄의 합리적 양형기준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성범죄 피해자가 청와대에 가해자 중심 성범죄 수사 및 양형 기준 재정비를 청원하자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14일 영상을 통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한 성범죄 피해자가 청와대에 가해자 중심 성범죄 수사 및 양형 기준 재정비를 청원하자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14일 영상을 통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강 센터장은 나아가 성폭력 수사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 전국 11개 검찰청에 설치된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전담 검사, 수사관을 중심으로 성폭력 전담 수사체계 확립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을 실시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 센터장은 “성폭력 피해와 수사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신 청원인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성범죄자들의 부당한 변명이 받아들여져 선처, 감형받는 일이 없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청원인은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란에 올린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에서 자신의 성범죄 피해 경찰 수사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아직도 가해가 중심적”이라며 “성범죄의 성립조건이 ‘비동의’가 아닌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으로 이를 피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청원인은 “그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수사기관들의 인식이 많이 남아있다”며 “‘호감 사이니까’ ‘뽀뽀했으니까’ 그 이상 싫다고 소리를 지르고 반항해도 정상참작, 이게 모두 ‘여자의 NO를 NO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여자도 좋으면서 튕기는 거 아니야’라는 가해자 중심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청원인은 “항상 가해자의 미래만을 걱정하고 가해자 입장에 감정 이입해온 인식이 바뀔 때가 됐다”며 “가해자 중심적 성범죄 양형기준의 재정비를 바란다”고 청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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