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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통신망 민영화가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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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계약직노조 결성 20년을 돌아보며

2002년 5월12일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 한국통신계약직노조가 조합원 242명이 모여 눈물의 해산 총회를 열었다. 공기업 한국통신(지금의 KT)의 비정규직이었던 이들은 노조결성과 함께 시작된 탄압에도 2000년 12월13일부터 517일을 싸웠지만 도급업체 취업 보장과 민형사상 책임 면제, 노조 해산, 위로금만 적힌 초라한 합의서를 받아들고 싸움을 끝냈다. 

한국통신에서 전화가설과 고장수리, 선로를 보수하던 계약직 1490명이 2000년 10월14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조를 만들었다. 1999년 한국통신 정규직과 계약직 월급은 219만원대 85만원으로 3배 가량 차이 났다. 여성노동자는 월 58만원을 받았다. 회사 내 차별도 양반과 상놈 만큼 심했다. 노조를 만들자 회사는 두 달 뒤 8000여명의 계약직 모두를 계약해지하겠다고 했고,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다. 

쫓겨난 한국통신 비정규직노조는 극한 투쟁을 이어갔다. 영하 20도 노숙, 한강대교 고공 시위, 목동전화국 점거, 국회 본회의장 농성, 광케이블 고공시위 등을 이어갔지만 거대공룡 한국통신과 김대중 정권의 탄압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28명이 구속되고 100명이 불구속기소 됐고, 200명이 즉심에 넘겨지고, 10억원의 손해배상이 떨어졌다.

이동구 조합원은 2001년 1월15일 영하 18.5도에 분당 본사 앞 노숙농성 중 가만히 앉은 채 뇌경색을 맞았다. 어렵게 재활했지만 오른쪽 마비와 언어장애를 얻었다. 한승훈 조합원은 2001년 5월 겨우내 노숙농성을 마치고 다섯 달만에 집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 면도하다 쓰러져 사흘 뒤 숨졌다. 고작 41살이었다. 

회사와 정부의 탄압보다는 등 돌린 정규직이 더 큰 걸림돌이었다. 한국통신 정규직노조는 이들을 노조원으로 받지도 않았고, 독자노조를 설립하도록 규약도 개정해주지 않았다. 2001년 3월29일 새벽 3시에 단행한 목동전화국 점거가 단적인 예다. 한 달 넘게 준비하면서 안에서 당사자가 싸우면 밖에선 민주노총이 연대키로 했지만 어떤 노조도 목동전화국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점거 5시간 만에 198명 전원 연행됐다. 

▲ 한통계약직노조원들이 지난 8일 부산 가덕도의 한 펜션에서 전국 모임을 얼었다. 홍준표 위원장(오른쪽)이 동료와 20년 전 노조 결성 당시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정호 기자
▲ 한통계약직노조원들이 지난 8일 부산 가덕도의 한 펜션에서 전국 모임을 얼었다. 홍준표 위원장(오른쪽)이 동료와 20년 전 노조 결성 당시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정호 기자

정규직노조는 철저히 이들은 외면했다. 당시 공공연맹(지금의 공공운수노조) 최대 노조였던 한통 정규직노조는 “계약직노조가 참여하면 우린 불참하겠다”고 협박했다. ‘민영화가 맞다’며 정부의 국가기간통신사 민영화에 맞장구를 쳤던 한국통신 정규직노조는 1995년 7만명이던 노조원이 3만명으로 떨어졌다. 2002년 한통계약직노조를 깬 정부와 자본은 이후 한 번에 5000명, 2000명씩 수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제 회사 비정규직을 외면했던 정규직은 이제 KT 자회사로, 손자회사로 구조조정 당해 쫓겨났다. 몇 해 전 충북에서 인터넷 설치기사가 고객이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그도 원래 KT 정규직이었다가 구조조정돼 자회사 KTcs로 옮겼다. 

그러나 한국통신 비정규직은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마중물이 됐다.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이 이들을 보며 노조를 만들었고, 대우차 비정규직도 곧 따라왔다. 근로복지공단, 하이닉스, 현대하이스코, 기륭전자, KTX승무원 등 수많은 비정규직이 한통계약직노조 뒤를 이어 목소리를 냈다. 정신을 차린 민주노총은 50억원의 미조직 기금을 마련하고 비정규직 조직화에 나섰다. 

한통계약직노조 홍준표 위원장은 목동전화국 점거 때 구속됐다. 장마로 강릉교도소 통신선이 마비됐을 때 홍 위원장은 관리계장을 면담해 수리해줬다. 구식 전화를 몇 달 공사로 키폰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기간통신망의 중요성은 이렇게 돋보였다. 이런 걸 민영화가 맞다고 우겼으니. 

한통계약직 노조원들은 지난 8일 부산 가덕도의 한 펜션에 모였다. 지금도 이들은 모임은 이어가고 있다. 이날 만난 홍 위원장은 “조합원 80% 이상이 지금도 KT 손자회사에서 일하는 등 국가통신망의 중추를 담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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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2-16 14:29:55
개인적으로 국가핵심시설을 민영화하면 그 피해는 대부분 취약계층이 본다. 일본과 칠레 공공기관 민영화를 보라. 공공요금이 상상을 초월한다. 칠레는 최저요금이 우리나라보다 1/3이 적은데, 지하철 요금은 우리나라와 거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