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의원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원통하고 서러워서 피를 토하고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먹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지난 9일 정 전 의원에게 총선 예비후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정 전 의원은 “정봉주를 꼭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고, 일부 지지자는 그를 응원했고, 취재진이 몰린 현장이 수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정 전 의원 주장이 어느 정도 전해진 만큼 그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들을 살펴봤다.

입장문 요지는 이렇다.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다스’와 ‘BBK’ 의혹을 파헤치다 억울하게 정치보복을 당했고, 2년 전엔 성추행 의혹으로 “정치적 처벌”을 당했으나 이 역시 억울한 일이며, 그럼에도 당이 자신에게 ‘감정 처벌’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저는 또 이렇게 잘려나간다. 처음엔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그리고 이번에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왔던 동료들의 손에 의해서. 저는 영원한 민주당 당원”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두 사안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우선 정 전 의원은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의혹’을 제기했다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2012년 만기출소했다.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출직에 나설 수 없었으나,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당시 ‘서민 생계형 민생사면’ 대상자 6444명 중에서 정치인은 정 전 의원이 유일했다.

▲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명예훼손 재판으로 인해 4·15 총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명예훼손 재판으로 인해 4·15 총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정 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2018년 3월, 그가 과거(2011년 12월23일) 한 호텔에서 A씨를 성추행한 의혹을 프레시안이 보도했다. 정 전 의원은 이를 보도한 기자들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고, 프레시안은 정 전 의원을 맞고소했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중 ‘해당 호텔에 간 적 없다’던 정 전 의원은 당일 호텔에서의 카드결제 내역이 확인됐다며 고소를 취하했다. 정계 은퇴 선언도 했다. 남은 건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을 무고·명예훼손·공직선거법위반으로 고소한 사건이었는데,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정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요컨대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 당사자와 직접 법정싸움을 벌인 일이 없다.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공방하며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다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결과에 검찰이 항소해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정 전 의원 변호인은 기자들에게 “정 전 의원을 언급할 때 ‘미투’, ‘성추문’ 혹은 ‘성추행’ 의혹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분명히 사실을 바로잡고자 한다. 정 전 의원은 프레시안과 소송 했으며 주 사건은 ‘명예훼손’”이라고 설명했다. “사실과 다르게 표현될 경우 ‘법적 문제제기’나 ‘언중위(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음을 양지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정 전 의원은 또 피해 의혹에 ‘미투 아님’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는) 검사가 ‘미투 가해자’라고 명시한 것에도 ‘예단을 형성시킬 우려가 있는 상당히 부적절한 기재’라며 ‘미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실제 판결 취지와 다르다. 정 전 의원 측은 검찰이 공소장에 A씨를 이른바 ‘미투’ 피해여성이라 쓴 것이 ‘공소장 일본주의’ 즉, 공소장 외에 편견·선입관을 가지게 할만한 자료를 첨부해선 안 되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보면 “(공소사실 기재가) 예단을 형성시킬 우려가 있는 상당히 부적절한 기재”라는 대목이 있지만, 이 판단은 “보도가 미투운동 물결이 거세던 와중에 이뤄진 것으로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중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법관에게 유죄의 예단을 실제로 생기게 해 범죄사실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또 정 전 의원은 “형사합의 21부 김미리 여성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성추행 주장의 유일한 증거인 여성의 이메일’을 언급하며 ‘작성자 스스로 이미 거짓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며 ‘성추행 사실도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고 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생략된 게 있다.

▲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위해서 정론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위해서 정론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재판부는 판결문에 A씨와 그 지인들(기자 1인 포함) 진술의 일관성·신빙성, 구체적 행위에 대한 판단 등을 항목별로 서술했다. 그중 하나가 ‘이메일’이다. A씨가 교제했던 연인에게 보낸 이메일에 ‘크리스마스이브에 피고인(정봉주)이 피해자 A에게 입을 맞추었다’고 돼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A씨가 인정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선 A씨가 ‘나는 날짜를 번복한 적은 없다. 다만 이메일에는 사건 시기를 크리스마스이브로 회상해 적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프레시안이 성추행 추정일로 처음 보도한 날짜, 정 전 의원이 A씨와 만남을 부인한 날짜, 정 전 의원이 카드결제 내역을 확인해 고소 취하에 이른 날짜는 일관되게 2011년 12월23일이다.

피해자 A씨 법률대리인은 미디어오늘에 “선거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게 곤혹스럽다. 2011년에 있었던 객관적 진실을 정 전 의원이 인정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받길 원한다”며 “만약 정 전 의원이 프레시안이 아닌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더라면 법정에서 성추행 성립 여부를 따졌을 것이다. 지금은 피해자가 제3자처럼 돼 버렸다. 프레시안과 정 전 의원의 싸움이 됐다. 법원이 성추행 자체에 면죄부를 준 것처럼 얘기하는 건 매우 비겁하다”고 했다.

현재로서 공관위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다. 공관위는 앞서 정 전 의원의 부적격 판정 이유로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어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해왔으나 국민적 눈높이와 기대를 우선하는 공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적격 판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간 총선 (예비)후보자 심사에서 성추문 의혹이나 부동산 문제 ‘무관용 원칙’을 밝혔다. 정 전 의원은 “법원 결과를 제시하고 판결문을 꼼꼼히 살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지만, 당내에서도 본안 사건 재판은 아니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를 모르지 않을 정 전 의원이 공관위 판정 수용도, 불복도, 총선 출마도, 불출마도 밝히지 않는 기자회견은 왜 한 걸까. 그는 기자들에게 “국회의원 한번 더 하려고 (서울) 강서에 간 게 아니다. 이 시기에 민주당의 시대 정신이 묻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관위 분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정치를 잘 이해하는 분들과 서로 해석을 할 거다. 분란이나 혼란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우려가 있다면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거나 “정봉주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주요 당원과 어떻게 풀어가는 게 열혈 당원들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줄 건지 해법을 줘야 한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정 전 의원의 눈물과 호소가 당원들에게 어떻게 가닿았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치를 잘 이해하는 분들’이나 알아들을 메시지를 흘리면서, 예비후보 부적격 판정 기준을 호도하는 기자회견이 정 전 의원이 말하려는 ‘시대정신’을 뒷받침할지는 의문이다. 정 전 의원은 공관위 결정에 “납득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규정은 없지만 ‘국민적 눈높이와 기대’라는 정무적 판단 아래 ‘감정 처벌’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그 주장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상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저를 모함하거나 음해하는 세력이 더 이상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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