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고용 연장을 본격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계속고용제도’ 정책과도 맥이 같다. 이 제도는 60세인 법정 정년 이후에도 기업들에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고, 기업에게는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중 선택지를 준다. 처벌은 하지 않되 차등적으로 지원을 해 정년연장을 유도한다. ‘정년연장’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세대갈등이 예상되는 문제이고 일부 언론에서는 ‘4월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언론은 이 이슈가 세대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사안이기 때문에 ‘총선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지나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총선용’이라는 비판보다 살펴봐야 할 것은 그 혜택이 대기업·공공기관 노동자에게만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공통되게 지적했다. 다만 일부 언론은 이런 ‘혜택 쏠림’을 이야기하면서 ‘노동 유연화’나 ‘임금 피크제’ 등 노동 시장 개편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주요 언론은 고용 연장 이슈에 대해 사설을 통해 각 신문사의 논조를 드러냈다. 다음은 13일 주요 종합 일간지의 ‘고용 연장’에 관한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고용연장, 방향 맞지만 넘어야 할 산 많다”
국민일보 “고용 연장하려면 노동경직성부터 완화해야”
동아일보 “대통령이 깃발 든 ‘고용 연장’, 노동시장 개혁이 우선이다”
서울신문 “고용연장 취지 공감, 청년 취업난 해소도 동반해야”
세계일보 “세금으로 노인 일자리 늘리면서 고용연장 하겠다니”
조선일보 “안 될 것 뻔히 알면서 거짓 선심 쓰는 ‘정년 연장’”
중앙일보 “‘고용 연장’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한겨레 “‘고용 연장’, 혼란 막을 치밀한 준비 필요하다”
한국일보 관련 사설 없음

▲13일 동아일보 3면.
▲13일 동아일보 3면.

가장 흔한 것은 ‘4월 총선용’이라는 비판이다. 정치권에서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그랬다. 동아일보는 3면에서 정치권에서의 비판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고용연장을 아예 정년 연장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중·장년층 표를 겨냥한 선심 선거”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년 연장이 힘든 현실은 문 대통령도 모를 리 없다”며 “그런데도 이런 비현실적인 말을 하는 것은 표를 얻는 데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했다. 이어 “비판이 나오더라도 어찌 됐든 정년 연장을 반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실제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심이 선거에 먹히기만 하면 그만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13일 조선일보 사설.
▲13일 조선일보 사설.

중앙일보 역시 “이 발언의 시기는 적절치 않다. 마침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다”라며 “고령 인력 활용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몇 가지 중대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생산성 향상과 임금구조 개편”이라고 썼다. 중앙일보가 말하는 임금구조 개편은 노동 유연성 확대, 임금피크제 등이다.

국민일보 사설은 “총선을 앞둔 시기에 대통령이 이 사안을 거론한 것은 적절치 않다. 당장 자유한국당에서는 ‘총선용 매표발언’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조짐”이라고 썼다. 세계일보 사설도 “지난해 9월 거론됐던 고용연장 문제를 총선을 앞두고 다시 끄집어낸 것”이라며 “모든 정책은 때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기업 활동이 움츠러든 지금은 거론할 때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총선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총선 이후 실행해야 한다는 사설도 있다. 서울신문은 13일 사설에서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상황이라 청년 취업난 해소 없는 정년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 지시라고 무턱대고 서둘렀다가는 노사 모두에 많은 부작용을 안겼던 2013년의 ‘60세 정년 의무화’ 전철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총선용’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만큼 4월 총선 이후 추진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13일 한겨레 사설.
▲13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일부 야당에선 이를 두고 ‘4월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지나친 반응이다”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 사안은 세대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어 정치적 유불리가 뚜렷하지 않다”며 “이번에 갑자기 꺼낸 것도 아니다. 정부가 계속고용제도 방안을 내놓기에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0살에서 65살로 높이는 판결을 내놓았다”고 썼다.

한겨레는 이 정책이 기업 부담이라는 비판도 너무 나갔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아니라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 다양한 방식을 택하도록 하고 여기에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라며“ 정규직 위주의 고용 구조와 연공서열 임금 체계를 손질하면 기업의 부담이나 세대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13일 경향신문 사설.
▲13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고용 연장 문제가 건강 고용과 산재보험 체계 개편과 묶여있어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이날 사설에서 경향신문은 “고용연장은 시급한 노동인구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65세부터 받는 국민연금과 막대한 정부·기업 돈이 들어가는 건강·고용·산재보험 체계가 함께 개편되고, 필연적으로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상향하는 문제와 얽힐 수밖에 없다”며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적자폭이 서울에서만 한 해 4000억원에 달한다. ‘지공거사’ 기준에 따라 전국에서 무임승차 논쟁이 재연될 소지도 있다”고 봤다.

이어 “무엇보다 정부는 세대 갈등이 없도록 청년 고용에 미칠 여파를 세밀히 살피고 추진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정규직 위주 연공급 임금체계를 둔 채 정년만 늘리면 그 혜택이 대기업·공공기관 노동자에게만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다만 어떤 해결책을 통해 혜택을 고루 나눌 수 있는지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국민일보 사설 역시 “혜택이 노후 준비가 부족한 저소득 노동자들보다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동아일보 사설도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게 될 사람들은 베이비 부머와 586으로 비교적 좋은 일자리를 가졌던 사람들”이라며 “강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직원들은 고용 연장 혜택을 누리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직원들, 사회에 나가보지도 못한 청년들은 소외되어 세대별 계층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동아일보 사설.
▲13일 동아일보 사설.

일부 언론은 이러한 ‘혜택 쏠림’의 해결방안으로 ‘노동 시장 개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고용 연장은 대기업·금융권·공기업을 포함한 200만 양대 노총 소속 근로자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공무원의 철밥통만 강화할 공산이 크다”라며 “기업은 기업대로 신규 고용을 줄이고 나설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노동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선행돼야 한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고용 연장을 검토하더라도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줄이는 고용규제 개혁, 산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이 먼저 추진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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